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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출출하지 않아요?"
Djin상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아! 근데 아직 방학 아니잖아요. 내일 학교 안가요?"
Djin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노트북을 덮었다.
"괜찮아요. 수업 없어요."

밥? 음,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픈 것도 같고, 똘망똘망한 Djin상의 눈동자를 보자니  거절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정말 괜찮으려나? 오늘 너무 무리하게 수다떨어서 Djin상의 내일을(이미 12시가 넘었으므로 오늘이지만) 망치고 싶진 않은데...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1시 반.

"시간이 이런데, 뭐 만들어 먹게요...?"
Djin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전 원래 집에서 요리 안해 먹어요. 나가요~"

일본 규동을 맛보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집 근처에 위치한 24시간 규동(소고기 덮밥) 전문점 스키야(すき家). 스키야는 일본 전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규동 체인점이다. Djin상은 대부분의 식사를 이런 체인점에서 해결한다고 했다.

"맛있죠,  싸죠. 어디에나 있죠."

스키야에서 규동의 기본 가격은 250엔. 그는 규동 라지사이즈, 나는 스몰 사이즈를 주문했다.

"이타다끼마스~ (いただきます:잘멋겠습니다.)"
"아, 진짜 치사하다. 그냥 반찬 좀 공짜로 주지."
Djin상은 젓가락을 들면서 말했다.
"일본은 원래 이래요. 워낙 음식 재료비도 비싸고 그러니까, 이게 더 합리적일 수도 있겠죠. 이정도 가격에 이정도 질의 밥, 고기를 먹는건 진짜 괜찮은 거라니깐요."

식재료비가 워낙 비싼 탓일까. 스키야의 메뉴판에는 미소 된장국, 샐러드, 김치 등 다양한 사진과 그 아래 칼같이 매겨진 가격표가 있다. 테이블에는 잘게 썬 생강과 조미료만 놓여져 있을 뿐, 계란 한 개, 손가락 두 개 크기만한 두부도 돈을 지불해야 했다. 하긴 자장면도 노란 단무지 반찬 만으로 먹지 않던가. 처음 맛보는 스키야의 규동은 정말 맛잇었다.

Djin상의 일본 규동 이야기. 원래 '동'이란게 '돈부리 메시의 준말이다. 가츠동은 돼지고기 돈까스를 얹어 먹는 밥, 오야코동은  닭고기와 계란을 얹어 먹는 밥, 그리고 규동은 소고기를 얹어먹는 밥을 뜻한다.

요시노야스키야마츠야
 요시노야스키야마츠야
ⓒ 이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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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3대 규동 체인점은 요시노야, 스키야, 그리고 마츠야라고 한다. 이 중에서도 요시노야와 스키야의 경쟁구도가 재미있다. 요사노야에선 특별 할인 기간동안 규동 가격을 280엔으로 내렸는데, 스키야에서 바로 규동 정가를 270엔으로, 그리고 250엔까지 내렸다고 한다(참고로 마츠야에선 미소 된장국을 무료로 준다).

항간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요시노야 사장과 스키야 사장은 원래 형제 지간이었는데 요시노야에서 '형'만 잘 나가다 보니 동생이 화가 나서 나와 시작한 것이 '스키야'라는 설도 있고 또 현 스키야의 사장은 요시노야의 간부중 한 명이었다는 설도 있다고 했다. 무엇이 진실이든 간에 요시노야와 스키야 그리고 마츠야까지 이 규동 체인점들은 현재 높은 질과 낮은 가격을 앞세워 서로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  이런 경쟁 세상이라면 정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맛있는 음식가격을 자꾸 자꾸 내려 주시니, 여행자는 행복할 따름이다.

행복의 조건?

Djin상
▲ Djin상 Djin상
ⓒ 이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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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4개 국어를 구사하는 한국인을 직접 대면한 것은 처음이었다. 왜 일본에 왔을까? 무엇을 얻고 싶을까? 나는 Djin상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여기서 뭘 배우는 거예요?"
"에또, 전공은 미학이라고. 간단히 말하면 예술을 공부하는 학문이에요."
"재밌어요?"
"재밌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그렇죠 뭐. 지금은 앙리 베르그송의 지성의 발생이란 부분에 대해 논문을 쓰고 있어요. 한 단원 정도 인데 주제 자체가 심오하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서 진도가 잘 안나가네요~. 졸업하려면 빨리 마무리 져야 하는데……."
"그럼 나중에 어느 쪽으로 나가요?"

그의 고개가 다시 한쪽으로 기울어 졌다.
"음, 어느 쪽이라……. 계속 공부를 해서 교수가 될 수도 있고 관련 분야를 자~알 찾아봐서 취업을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다른 분야로 가려고요."
에엑? 이렇게 일본어까지 공부해가며 배운 학문인데?
"아니 아깝잖아요. 왜요? 왜요?"
나는 황당한 마음에 얼음물을 벌컥 벌컥 마셔 버렸다.

"전 아직도 제가 원하는 것을 찾으려고 매일 고민하고 있어요."
"아니 지금까지 충분히 하신 거 아녜요...?"
Djin상은 미간을 조금 찡그렸다가 다시 웃었다.
"네. 어떤 관점에서는, 뭐 그런 셈이죠. 충동적인 부분도 있고 관심사도 다양해서인지 아직 이거다! 라는 걸 못 찾았어요."
"흠, Djin상. 제가 손금 관상 이런걸. 정말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공부한다던가 이런 건 아니고 혼자 책보면서 즐기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잘 모르는 제가 봐도 Djin상은 관상이 좋은 것 같아요. 뭔가 잘 되실 것 같아요! 다 잘 될 거예요."
"하하 아리가또 고자이마스(ありがとう ございます: 감사합니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로 나왔다. 새벽 3시. 여름밤의 무더위는 가라앉지 않았으나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을 생각하면 이 정도 더위는 애교스러웠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일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겠죠. 둘 중 적어도 한 가지라도 해낸다면, 지금보단 훨씬 행복해 질 수 있을 거예요. 다양한 곳을 여행한 이유도, 카우치 서핑을 하는 이유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이죠. 그러면 내 인생에 중요한 누군가를 만날 수도,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랑도 일도.  모두 행복해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일적으로 만족할만한 회사가 있을지 모르겠어서 나~중에 정 안 되면 회사를 차려버릴까. 생각중이에요. 막상 자금은 없지만 하하하. "

"아, 그런데 부모님이 걱정은 안하세요? 저희 부모님은 무지 걱정하세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뛰어노는 망아지 같다고. Djin상은 망아지 같진 않겠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타지 생활을 한 거니까 가족이 그리울 수도 그리고 가족들이 걱정할 수도 있잖아요. 어떻게 설득하신 거예요?"

"저라도 안나씨 부모님이었으면 걱정했을 것 같아요. 하하. 농담이구요. 사실 저희 부모님도 걱정하시긴 하시지만, 제 인생에서 제가 행복한 길은 제가 선택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설명을 드렸고, 이젠 많이 이해해 주시는 편이죠. 분명히, 부모님이 분명히 저보다 오랫동안 인생을 살아 오셨고 그래서 세상을 더 잘, 많이 아시죠.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좋고 나쁜지를 경험을 통해 알아차릴 수 있으세요. 그래서 부모님께서 이 길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분명히 그 길이 제 인생에 좋은 길인걸 저도 알아요. 하지만 이건 객관적으로 좋은 길이지 주관적으론 제게 좋은 길이 아닐 수도 있어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그니깐, 객관적으로 남들이 보기에 아, 행복하겠다 이거랑 주관적으로 아, 행복하다 .이거랑 다르다는 거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을 열고 그리고 많이 경험하다 보면 제 주관적 잣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Djin상의 사진
 Djin상의 사진
ⓒ 이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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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듯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객관적인 행복과 주관적 행복. 나는, Djin상은 일본 열도에 무얼 얻으러 왔을까? 실마리를 찾은 듯 하다. 내일은 어떤 일이 생길지 자꾸만 행복해진다. 그 행복은 객관적 행복일까 주관적 행복일까?

계속됩니다.


태그:#카우치 서핑, #오사카 , #DJIN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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