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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성 찾아 삼만리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진상의 집에서 나온지 5분도 되지 않아 나는 길을 잃어 버렸다. 어젯밤 분명히 진상이 추천 코스를 자세히 설명해줬는데도 이곳이 어디인지 도통 길을 알 수 없었다. 오늘따라 나의 내비게이션 기능이 작동불능인 걸까? 지도를 들여다 봐도 그 길이 그 길 같았다.

어젯밤 진상과 오사카 여행코스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성(城)'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안나씨, 일본 성 본적 있어요?"
"아, 수원 화성은 많이 봤어요. 그리고 경복궁, 창경궁, 자금성…이정도 보고 다녔어요. 뭐 일본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궁' 말고 '성'이요. 화성은 오사카 성이랑 많이 다른 느낌이니까 패스! 이 참에 일본 성 한번 보고 가세요. 오사카성 어때요?"
"아… 그래요? 가볼까? 어떻게 가요?"
"지하철을 타는 게 제일 쉽겠지만, 뭐… 걷는 걸 좋아하신다니. 그런데 내일은 무척 더울 텐데, 그냥 지하철 타세요."
"가진게 체력밖에 없는데, 지하철이라뇨. 걸으면서 일본 파악도 하고, 당연히 도보로 가야해요"
"더울텐데, 그럼 이렇게 가세요. …"

라고 어젯밤 진상에게 자신 있게 말하고 구체적인 정보까지 얻었던 나인데, 집에서 나온뒤 20분째 길을 헤매고 있었다. 여긴 어디인가? 나는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가. 더위 아래 정신이 혼란해 질 때 즈음 교차로 반대편에서 두 명의 외국 청년을 발견했다. 등에 맨 배낭가방과 등산화, 그리고 초췌한 행색까지 전형적인 장기 여행자의 모습이었다. 여행자들끼리의 정보교환은 새로운 기회이자 정보가 아니었던가? 나는 그들에게 말을 붙여 보기로 결심했다.

"저, 안녕하세요. 혹시 오사카 성 어디 있는지 아세요?"
"아… 저희도 사실 오사카 성에 가는 중인데 같이 가실래요?"
나는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나는 두명의 프랑스 꽃미남 동행자를 얻게 되었다.

야니스와 티보 한국 여행 당시 사진
▲ 야니스와 티보 야니스와 티보 한국 여행 당시 사진
ⓒ 이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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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온 티보와 야니스

"혼자 여행오신 거예요?"
그들의 눈에도 작은 동양 여행자가 신기해 보였나 보다. 타국에서 만난 이국적인 여행자를 만난 탓일까, 그들과 나는 쉽게 말을 터놓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온 그들의 이름은 티보와 야니스. 티보와 야니스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고 아시아 문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행을 시작했다고 했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이미 한국에서 2달간 여행을 마치고 부산에서 배를 타고 오사카 1주일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다. 서울, 속초(설악산 등반이 특히 인상 깊었다고), 부산, 상하이, 현재 오사카까지 바쁜 한-중-일 여행 일정이란다. 그들과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오사카 성 입구에 도착하였다.

"저기, 여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었다죠?"

대답이 없었다. 팸플릿을 들고 주위를 둘러보니 티보와 야니스는 보이지 않았다. 뭐야. 오사카 성 탐구에 들어간 나와 달리 그들은 저멀리에서 뒷짐을 지고 성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있었다. 입구가 코앞에 있는데 왜 요지부동이람?

"자, 그럼 우리 들어갈까요?"
"잠깐만요, 우리 한 바퀴 돌아볼까요?"
인터넷 정보에 다르면 오사카 성은 약 1시간~1시간 반 코스였다. 만약 주변의 모든 풍경을 감상하기로 작정한다면(이 더운 날씨에) 시간은 더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시간은 금이오, 이 금을 잘 쪼개서 현명하게 여행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잠시 그들의 여행스타일을 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나는 그들의 의견에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야니스~ 거기 뭐 있어?"
"응. 여기서 시내 전경이 보여. 빨리 와봐."

오사카성
 오사카성
ⓒ 이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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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느긋하게 바라보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심하게 느긋했다. 큼지막한 DSLR 사진기를 갖고 있는 티보는 항상 깊이 생각하고 사진기를 들었다. 발이 빠른 야니스는 구석 구석을 뛰어다니며 새로운 경치나 풍경을 발견했고 그럴 때마다 우리를 불러 함께 공유하려고 했다.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오사카 성 주변을 관광하는 데만 1시간 반이 걸렸다. 시간이 걸렸지만 천천히 여유롭게 둘러보는 오사카 성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정말 좋았다. 돌의 색과 연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소풍 온 꼬마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었다. 작은 신전 하나하나에 기도 드리고 나무 하나 하나를 소중이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여행의 여유

티보, 야니스와 총 3시간 동안 오사카 성을 구경한 후에 우린 근처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을 하면서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음… 정말 많은데, 작은 것을 찾아가는 것? Detail을 발견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Detail?(세부 사항, 세세한 모든 것들)"
"예를 들면 건축물의 선 같은 것들이 비슷하다던지, 사람들의 술 마시는 행동이 비슷하다던지… 그런거요.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내 친구랑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재밌었요… 하하하"
"아… 그럼 어느 지역이 제일 좋았나요?"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 한국에서 2달, 중국에서 1주일 그리고 일본여행은 지금 막 시작한 거라 뭐라고 말할 순 없고… 한국에서 가장 오래 보낸 편인데도, 사실 2달을 보낸 걸로 한 나라를 이해할 순 없어요. 한국에서 인상 깊었던 건 도시에서도 지역별로 정말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는 거랑, 사람들이 각 계층 별로 구분이 되게 옷을 입고 다닌 다는 거예요."
"계층별로 옷을 입고 다닌다고요?"

"음… 학생은 학생처럼, 직장인은 직장인처럼, 구별할 수 있게 입었어요."
"에이 그건 어느 나라나 그렇지 않나요?"
"그건 사실이지만 한국은 유난히 눈에 띄게 보여서 신기했어요. 다들 비슷하게 입지만 자신을 나타내는 계층이 뚜렷하다고나 할까. "
"그럼 여행을 통해서 뭘 배운 것 같아요?"

티보와 야니스는 한참 동안 고민하더니 서로 눈빛을 주고 받았다.

"그건, 모르겠어요. 뭘 배웠는지 ㅎㅎㅎ. 뭘 배운 것 같긴 한데… 문화를 체험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사실, 내(티보) 전공은 미술이고 야니스는 건축이에요. 나는 졸업한 상태이고 야니스는 1학기가 남았죠. 우리는 일을 갖기 전에 동양 문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었고 넓은 세상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려고 했어요. 3달 여행일정을 잡고 왔는데,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고민에 답을 할 만큼 충분한 것 같진 않아요. 여행을 끝내고 다시 돈을 모아서 오려 구요."

새로운 교훈, 그리고 새로운 동행자
"티보, 야니스 지금까지 이렇게 구경하고 다녔어요? 처언~ 처언~ 히이~?"
티보와 야니스가 어깨를 들썩이며 씽긋 웃었다.
"그럼요. 기차도 일부러 느린 것들만 골라 탔어요."
이런, 성인군자들.
"일부러? 왜?"
"발견하고 생각해야 하니까."

티보와 야니스의 메모장
 티보와 야니스의 메모장
ⓒ 이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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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하고 생각한다고? 충분할 만큼 신중해 보이던 그들에겐 3개월은 부족했었나? 하지만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세심히 관찰하고 발견하고 나누던 그들의 모습에 나도 여행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발견한 것 같았다. 하긴 여행의 목적 중 하나인 '생각하기' 혹은 '고민하기'는 헐레벌떡 여행일정에 쫓겨 뒷전에 밀려나는 것이 다반사였지. '발견'은 '새로운 시각'을 '새로운 시각'은 '생각'을 '생각은 '고민해결'을 가져다 주지 않던가. 멋쟁이 푸른눈의 사나들에게 커다란 교훈을 얻었다.

나는 그들과 블로그 아이디를 교환하고 친구로 지내기로 약속하였다. 그들에게 배운대로 천천히 일본거리를 거닐다 보니 평범한 거리에서도 새롭고 신기한 것들이 뿅 뿅 튀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프랑스 친구들의 방식대로 느긋이 걷다 보니 적은 이동거리에도 많은 것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거리는 어둑어둑해지고 나는 진상의 숙소에 다시 돌아갔다.

"아, 진상. 진상 전공이 프랑스어였죠? 나 오늘 프랑스 친구들 만났는데."
"정말요? 아, 그런데 안나씨 할말이..."
"잠깐 잠깐, 진짜 그 친구들 대박이예요. 완전 여행자 마인드. 좀 신기해요."
"아 안나씨 저기… 저 생각해 봤는데."
"네? 저녁?"
"아니요! 저 안나씨랑 같이 여행해도 될까요? 저, 여행 파트너 어때요?"
"네?? "

"아… 제가 좀 즉흥적이죠. 근데 같이 여행하면 재밌을 것도 같고, 제가 인생의 활력소가 필요했는데 왠지 이번 여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지금 교토에 제 노르웨이 친구도 여행중이고 친구도 볼겸, 그리고 동경도 한번 가볼겸… 일본에 오랫동안 있었지만 동경은 한번도 안가봤거든요. 안나씨 일정이랑 비슷해서 같이 다니면 재밌을 것 같아요. 괜찮으면 내일부터 함께 할까요?"
"아니, 근데 학교는요?"
"시험이 남아있긴 하지만 레포트 제출이라서 괜찮을 것 같아요. 공식적으로 학교 일정은 안끝났지만 제 수업들은 다 끝난 상태예요."
"아니, 그런데 이렇게 여행을 결정해도 되요?"

"제가 즉흥적이긴 해도 신중한 편이예요. 그동안 많이 무기력했고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카우치 서핑도 시작한 거였는데, 이번 여행이 왠지 제 인생에 새로운 자극이 될 것만 같아요. 같이 하시는 거죠?"
"근데, 너무 갑작스럽네요. 정말 여행하시고 싶으세요? 하루만에?"
"네! 당황스럽다는 건 알겠지만 진심이예요."
"그럼… 내일 아침까지 생각해 보시고 그때도 마음이 안 변한다면, 그럼 같이 여행하기로 해요!"
"콜!"

진상의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스러웠다. 또 다른 여행동료를 얻게 되는 걸까 아니면 다시 홀로 여행을 시작하는 걸까? 여유롭게 거닐며 정리했던 생각들이 다시 엉켜버리는 밤이었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지려나?


태그:#오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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