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왼쪽은 2009년 포스터, 오른쪽은 2010년 포스터
▲ <수업> 포스터 왼쪽은 2009년 포스터, 오른쪽은 2010년 포스터
ⓒ 극단 노을

관련사진보기


상식을 깨는 부조리극으로 유명한 외젠느 이오네스코. 세계적으로 널리 공연되고 한국에서도 공연된 적이 있는 그의 문제작 <수업>이 극단 노을에 의해 8월 19일부터 29일까지 대학로 동숭무대소극장에서 재연된다. 극단 노을의 이번 공연은 작품 자체에 몰입하기 좋게 깔끔하게 연출되었다.

극은 관객이 무대로 들어서는 순간 이미 시작된다. 무대에는 책상과 의자가 마치 제단처럼 놓여 있고, 학생 가방과 찢기고 구겨진 노트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그리고 잔잔한 클래식 선율을 방해하는 망치질 소리가 들린다. 배우들이 무대 뒤에서 망치질을 하는 것이다. 눈치 있는 관객이라면 어지러운 무대와 망치질 소리에 의문을 품게 된다.

하녀가 수업을 받기 위해 찾아온 학생을 맞이하며 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박사 학위를 받고 싶어 하는 여학생은 교수에게서 수학과 언어학 수업을 받는다. 학생은 3주 후에 박사 시험을 보게 해 달라고 하고, 교수는 해 보자고 응답한다. 그런데 수업이 심상치 않다.

교수는 여러 차례 설명하나 학생을 이해시키는 데 실패한다.
▲ <수업>의 교수와 학생 교수는 여러 차례 설명하나 학생을 이해시키는 데 실패한다.
ⓒ 극단 노을

관련사진보기


어긋나기만 하는 학생과 선생

수업에 들어가기 전 분위기를 풀기 위해 교수가 "오늘 날씨가 좋죠?" 하고 말하면,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친다. 수업이 쉽게 진행되지 않을 거라는 암시를 주듯. 게다가 학생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조차 힘겹게 기억해 낸다.

먼저 수학을 배우는 시간. 학생은 뺄셈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 애를 먹는다. 선생은 학생을 이해시키기 위해 방법을 바꿔가며 무던히 노력한다. 그렇지만 학생에게 원리를 명쾌하게 납득시키지 못하고, 그저 우스꽝스러운 상황만이 반복해서 연출된다. 그 과정에서 극은 많은 웃음을 낳는다.

작가는 배우는 자를 일방적으로 이해시키려는 수업 방식을 조롱하고 그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문제를 제기하는 걸까? 결국 수학 수업에서 '이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통 부재의 일방적 강의 이루어져

다음은 언어학 시간. 이 수업 전 하녀는 교수에게 '범죄의 지름길로 가고 있다'는 경고를 한다. 하녀는 수학 시간에도 교수에게 경고를 했지만, 교수는 하녀에게 윽박지르며 그 경고를 무시한다.

언어학 시간은 교수의 '준비된 강의'로 이루어진다. 권위를 상징하는 교탁 앞에 선 교수는 이가 아프다는 학생의 말을 무시하며 "계속합시다" 하고 말한다. 즉 소통을 배재한 일방적 강의를 이어간다.

교수는 아픈 학생을 무시하고 강의를 계속한다.
▲ 소통 부재의 강의 교수는 아픈 학생을 무시하고 강의를 계속한다.
ⓒ 극단 노을

관련사진보기


교수의 강의가 열정적일수록 학생의 고통도 더해간다. 아프다는 학생의 신음은 무대에서 크게 울리지만, 그 소리가 교수에게는 입력되지 않는다. 학생의 신음에 교수는 심하게 을러대고 짓눌러 기를 꺾고 강의를 다시 진행하는 일이 반복된다. 그리고 그 과정이 반복될수록 교수는 더욱 폭력적으로 변해 간다.

교탁은 학생의 시체를 넣는 관?

무대는 다시 극이 시작하기 전의 상황과 비슷해진다. 즉 학생의 가방과 찢긴 노트가 바닥에 나뒹군다. 이내 극은 끔찍한 결말을 향해 치닫게 된다. 소통의 부재가 극에 달했을 때 교수는 피 흘리는 학생을 강간하고 칼로 찔러 살해하고 만다. 바닥은 붉은 피로 흥건하다.

학생은 근대적 주체에 의해 파악되지 못하고 파괴되는 '타자'의 상징이다. 그리고 교수는 타자와 소통하지 못하는 근대적 '주체'를 상징한다. 그 주체는 꽉 막혀 외부와 소통할 수 없는 단자와 같다. 강간과 살해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타자에 대한 주체의 '폭력'을 상징한다.

학생이 살해된 후, 교수에게 경고했던 하녀가 다시 등장한다. 하녀는 이번 살해가 40번째임을 알려 준다. 이제 관객은 극이 시작하기 전에 들렸던 망치질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것은 교탁에 학생의 시체를 넣고 뚜껑을 덮어 망치질하는 소리였던 것이다.

학생의 시체는 처리되었지만, 무대는 시작 전처럼 가방과 노트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그리고 다시 다른 학생이 찾아온다. 끔찍한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이 작품은 근대적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섬뜩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작가가 그것을 계몽되고 우월한 권력을 지닌 선생과 계몽되어야 하는 수동적인 학생의 관계로 그린 것은 너무도 적절하다. <수업>에서 학생은 일방적 계몽의 대상이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그 기획의 파괴물이 된다.

학생을 학대하는 '수업', 우리는 다른가

이 작품은 이렇게 근대적 주체에 대한 섬뜩한 비판으로 읽어낼 수도 있겠다. 동시에 수업의 본질에 대한 직접적인 문제 제기로 읽을 수도 있다.

'이미 계몽된 교수'가 '어리석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수업의 본질이란 학생을 학대하는 것이라는 문제 제기다. 이 작품은 그러한 수업에서 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학생의 모습을 눈 크게 뜨고 똑바로 보라는 메시지를 준다. 이 메시지 앞에서 우리네 주입식 수업 방식과 선생과 학생의 관계, 또는 대학에서 권력을 쥔 교수와 일반 학생의 관계는 과연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이오네스코의 <수업>은 기이하고 끔찍해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통렬하다. 수업의 본질을 간파하고 섬뜩한 비판을 처절한 목소리에 담기 때문이다.

한편 극단 노을의 무대는 극의 내용에 어울리는 현대적 연출이라든가 파격적인 형식 실험에 대한 고민이 적어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군더더기 없는 담백하고 깔끔한 연출로 극에 더욱 몰입하게 하고 메시지를 전하는데 수월한 장점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오네스코의 <수업>은 여러 모로 우리를 돌아보게 하여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이다.

'완장 찬 자'의 행태 비꼬기도 해
교수는 학생을 살해하고서 잠시 정신을 차리고 불안해한다. 이때 그에게 힘을 주는 것은 하녀다. 그는 하녀가 입혀 주는 정장과 모자를 차려 입고 다시 힘을 찾는다. 예전에는 새로운 메시지를 더하기 위해 이 장면에서 교수에게 나치 완장을 두르기도 했다고 한다. 극단 노을의 무대에서는 불안해하는 교수에게 'MB 완장'을 두르는 것으로 바꾸어 연출한다. 이 또한 연극의 새로운 재미를 주는 장치라 할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 공연 문의 02)921-9723



태그:#이오네스코, #수업, #극단 노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