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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끝에 잡은 대형 혹돔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입을 벌리고 있다.
 사투끝에 잡은 대형 혹돔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입을 벌리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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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고향인 나는 어릴 적 아버지가 낚아 올린 '대물' 혹돔의 유혹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음력 5월경 보리타작이 끝나고 잠시 농한기가 찾아오면 아버지는 종종 낚시를 가시곤 했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가장 깊고 위험하다고 소문이 난 낚시 포인트에서 손가락 크기 정도의 대형 혹돔낚싯대에 참게를 묶은 뒤 컴퓨터 마우스 선처럼 굵은 원줄을 갯바위에 묶어 놓고 낚시를 펼치셨다. 그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어린 송아지처럼 큰 대물 혹돔을 낚아 바지게에 지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단두리한 고기를 지게에 지고 낑낑거리며 고개를 넘어 여객선을 이용해 여수 어판장에 보내는 일은 형님들과 나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참 재주가 많으셨다. 여름철이면 대형 작살을 들고 바다 굴속에 들어가 혹돔과 돌돔 등 대형어종을 잡아 올리시곤 했다. 당시 아버지의 헌팅실력은 동네 어르신들 사이에 자주 오르내리셨고 당신은 가셨지만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그 피를 이어받았을까? 다이빙을 배운지 어느덧 6년이 넘었다. 그동안 바닷속에서 마신 많은 공기 덕에 이제는 자타가 공인 수준급 다이버의 경지에 오른 지 오래다.

바다는 우리에게 낭만과 아름다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론 두려움도 준다. 어촌 사람들은 바다가 정말 무섭다는 것을 잘 안다. 엄마 품속처럼 평온하고 따뜻했던 바다도 별안간 돌풍을 일으키기도 하고 어느 땐가는 태풍으로 변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 때도 있다. 그래서 바다 위에 뜬 배들은 한 조각 일엽편주에 지나지 않으니 늘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바다에서 인간의 오만과 자만은 절대 금물이다.

고향을 찾은날 일행은 다이빙 투어전 고기를 잡기위해 바다에 나갔으나 비바람이 몰아쳐 기상악화에 시달렸다.
 고향을 찾은날 일행은 다이빙 투어전 고기를 잡기위해 바다에 나갔으나 비바람이 몰아쳐 기상악화에 시달렸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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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철을 맞아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떠났다. 바다는 나의 영원한 고향이자 레저의 장이다. 고향을 찾은 날 일행은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에 나갔는데 비가 오고 바람이 거칠어 포구로 돌아와야만 했다. 하지만 다음날은 날이 밝은대로 다이빙을 떠나기로 했다.

간여로 떠난 다이빙 투어!

낚시도 마찬가지겠지만 다이빙 전 장비 점검은 필수다. 레저로 즐기는 스쿠버 다이빙 역시 집에서 준비하는 시간이 제일 즐겁다. 레귤레이터(호흡기)와 BC(부력조절기)를 점검하고 슈트 등 15가지 이상의 다이빙 장비를 빠짐없이 챙겨야 한다. 만에 하나 장비가 하나라도 빠지면 그날 다이빙은 무산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다에선 다이버가 작살만 소지해도 현행법상 불법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어촌계의 단속이 특히 심하다. 그래서 마나아들은 배를 타고 어촌계와 무관한 저 멀리 공해상으로 다이빙을 떠난다. 낚시꾼의 신고로 단속을 피하기 위해 이곳 다이빙숍들이 주로 찾는 포인트가 간여와 작도투어다.

여수의 최남단 간여는 남해 먼바다 끝자락에 위치해 평균수심은 8m∼20m안팎으로 혹돔과 돌돔 등이 서식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여수의 최남단 간여는 남해 먼바다 끝자락에 위치해 평균수심은 8m∼20m안팎으로 혹돔과 돌돔 등이 서식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 바다낚시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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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여는 여수의 최남단 무인도로 여수 여객선 터미널에서 배로 약 50km 거리에 있다. 남해 먼바다 끝자락에 위치한 간여의 평균수심은 8m∼20m안팎으로 혹돔과 돌돔 등이 서식하기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여름은 뭐니 뭐니 해도 돌돔과 혹돔이 주어종이기 때문에 다른 어종은 성에 차지 않는다. 이날은 평일이라 다행히 낚시꾼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바다에 들어갈 차례다. 낭만과 동경이 교차하는 바다지만, 막상 깊숙한 바닷속에 혼자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되면 항상 긴장과 두려움이 밀려온다. 인간 심리가 다 그런 것이듯 도전 없이 그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다이빙 수칙상 바다에 2인1조로 가야하는 수중 다이빙은 물속에 들어가면 흩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모든것을 해결해야 한다.
 다이빙 수칙상 바다에 2인1조로 가야하는 수중 다이빙은 물속에 들어가면 흩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모든것을 해결해야 한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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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동안 다이빙을 통해 깨달은 내공이 하나 있다.

"두려움을 버리던가? 아니면 다이빙을 그만 접어라!"

둘 중 하나를 버려야 비로소 다이빙의 고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난 전자를 택해 두려움을 극복했다.

장비를 세팅한후 바닷속에 풍덩 빠지자 컴퓨터 게이지의 수심이 뚝~ 뚝 ~뚝 덜어진다. 5m·8m·12m·15·를 지나자 따뜻하던 바닷물에도 온도차가 생기기 시작한다. 몸에서 차가움이 느껴진다. 여름 어종들은 따뜻한 수온을 좋아하기 때문에 20m이상을 들어가 봤자 허탕이다. 이 시기는 주요 어종들이 15m부근에서 활동하기에 이쯤에서 고기집을 찾아야 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닷속! 이제 세상엔 나 혼자다. 삶과 죽음도 내가 결정하고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완전 자유인이 된 듯한 기분이다. 무중력의 바닷속에서 오리발에 의존해 서서히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무중력의 바닷속에서 완전 자유인이 된 다이버가 수중에서 호흡을 내뱉고 있다.
 무중력의 바닷속에서 완전 자유인이 된 다이버가 수중에서 호흡을 내뱉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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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 혹돔을 찾아서...

혹돔이라는 놈이 원래 바닷속 동굴을 좋아하기 때문에 고기들이 사는 굴을 찾아야 한다. 일명 굴치기다. 바닷속에는 우뚝 솟은 바위도 있고 많은 종류의 고만고만한 바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다이버가 내뱉은 호흡으로 공기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버블을 형성하며 바다위로 솟아 오른다. 이것을 본 고기들이 신기한 듯 다가온다.

오늘의 목표는 혹돔이다. 혹돔이 살만한 굴속 바위틈을 한참 훑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직감이 온다. 아니나 다를까 플래시를 동굴 안으로 비추는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혹돔 녀석이 굴속에 처박혀 어슬렁거리고 있지 않는가? 이내 콩닥콩닥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었다. 이미 몇 번이나 혹돔 사냥에 실패했던 지라,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했다.

'호흡을 진정시켜야 해. 저 녀석을 한방에 보내지 못하면 내가 진다.'

놀래기류에 속하는 혹돔은 5∼10월에 활동하는데 여름철이 최고의 시즌이다. 우리나라 남해안, 제주도 부근 해역에 널리 분포한 혹돔은 연안 암초지대 해초가 무성한 곳에 주로 머물면서 이동을 거의 하지 않고 굴에서 붙어산다. 밤이 되면 사람처럼 잠을 자는데 조류 소통이 좋은 암초지대가 그들의 아지트다.

사투끝에 잡아올린 대물 혹돔

혹돔의 식성은 그 생김새에서 느낄 수 있듯이 육식성과 강한 잡식성이다. 주로 새우·게·작은 고기·조개·성게·전복·홍합 등을 특유의 강한 이빨로 부숴 먹는다. 그래서 힘이 장사다. 보통 낚시장비로는 낚아올릴 엄두도 못 내는 고기다.

"사람에겐 3번의 기회기 찾아온다고 했던가? 하지만 바닷속에서는 1번의 기회를 놓치면 그만이다."

순간 혹돔의 눈이 나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모든 잡념을 버리고 온 정신을 집중시켰다. 이후 방아쇠를 잡아 당겼다.

"탕!"

총에 맞아 놀란 혹돔이 미친 듯이 굴속을 휘저어 주변은 온통 부유물로 범벅이 되었다. 급소를 맞추지 않으면 굴 속에 박혀 샤프트를 놓치기 십상이지만 놈은 얼마 힘을 쓰지 못하고 다이버의 손에 끌려나왔다.

얼마나 정신을 집중했던지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환호와 희열 속에 쾌재를 부르며 혹돔을 꺼내보니 족히 70cm에 가까운 녀석이다.

사투끝에 잡아올린 대물 혹돔은 바닷속에서는 1번의 기회를 놓치면 그만이다.
 사투끝에 잡아올린 대물 혹돔은 바닷속에서는 1번의 기회를 놓치면 그만이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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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밖으로 나갈 차례다. 욕심이 과하면 오히려 화를 입는 법이다. 오늘 사냥은 이것으로 만족한다. 채비를 챙겨 서서히 묻으로 부상하며 감압을 준비한다. 5m에서 충분한 감압을 한 뒤 물 밖으로 나오자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다. 이내 배에서 기다리던 일행들이 소리를 지른다.

"야 바닷속이 훤하다. 혹돔을 잡았네. 야, 오늘 심 봤다."

담백한 맛에 사람과 사람사이에 즐거움이 묻어나고 한 여름밤의 추억은 깊어만 간다.
 담백한 맛에 사람과 사람사이에 즐거움이 묻어나고 한 여름밤의 추억은 깊어만 간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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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일행은 잡은 고기를 썰었다. 어린 혹돔은 살이 연하고 비린내가 나지만 대형 혹돔은 돌돔 못지 않게 살이 쫄깃쫄깃하고 담백하며 비린내도 전혀 없다. 특히 혹돔의 혹맛은 미식가들에게 스테미너식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에 자꾸만 손길이 간다. 소주와 사시미가 만나니 잠시 세상의 시름이 사라진다.

30여년 전 아버도 이 자리에서 많은 얘기를 나눴겠지.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섬의 모습은 그대로다. 깊어지는 여름밤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진다. 혹돔으로 인해 사람과 사람사이에 즐거움이 묻어나고 한 여름밤의 추억은 깊어만 간다.

덧붙이는 글 | 전라도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혹돔, #다이빙, #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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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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