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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야생초 수업은 소위 '잡초'라고 불리는 식물에 대해서 배웠다. 풀들 모두가 이름을 갖고 있다. 우리가 이름을 모를 뿐, 이름 없는 풀은 없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세상에 '잡초'란 없다고 말한다. 낮게 땅에 포복하고 있는 풀도 있고 나무처럼 크는 풀도 있다.

제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정붙이며 사는 풀들도 많다.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묻어 들어왔지만 토종의 생태계와 잘 조화되어 옮겨온 산야를 아름답게 하는 풀들도 있고,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듯이' 생태계를 교란 시키는 유해귀화식물들도 있다. 그것들의 번식력은 어찌나 왕성한지 토종의 생태계를 위협한다.

야생풀은 현장으로 나가야 제 맛이다. 해서 교실에서 이론을 배우고 동네 근처 길을 돌았다. 눈에 밟히는 모든 것이 거의 풀인 관계로 사진 찍으랴, 설명 받아 적으랴 눈과 손이 바쁘다.

메꽃, 메꽃과의 여러해살이 덩굴성식물이다. 잎이 열십자에 가깝다.
 메꽃, 메꽃과의 여러해살이 덩굴성식물이다. 잎이 열십자에 가깝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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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꽃같이 예쁜 이내 딸년
시집살이 삼년 만에
미나리꽃이 다 피었네

오래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읽은 민요다. 그때 처음으로 '메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메꽃만 보면 민요가 함께 떠오른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잊혀 지지 않는다. 나팔꽃하고 너무 비슷해서 사람들 열에 아홉은 나팔꽃이라고 한다. 그러나 땡볕 여름 한 낮의 들길에서 분홍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것들은 대게 메꽃이다.

나팔꽃은 오히려 메꽃과에 속한다. 동네 중랑천을 걷다보면 정말 딸아이의 복숭아 뺨처럼 보들보들한 연분홍의 꽃을 늘 만난다. 꽃이 나팔꽃하고 비슷해서 잎을 보고 구분한다. 둥그스름한 나팔꽃잎과 달리 거의 십자가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다.

중랑천 산책길에서 만난 달개비, 보라색의 꽃이 나비 같다.
 중랑천 산책길에서 만난 달개비, 보라색의 꽃이 나비 같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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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장풀'은 '달개비'란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한해살이 풀이다. 주로 닭장 옆에서 자란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지만, 달개비는 들 어디에서도 볼 수 있다. 보라색의 나비가 비상을 하는 듯 조그만 꽃이 도전적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생명력이 매우 질긴 잡초로 기억한다. 뽑아서 돌이나 나무 같은데 걸쳐 놓으면 "오히려 더 좋다고 다시 살아난다니까" 한다. 반드시 땅에 묻어야 한다고 했던가. 풀은 야생화를 돌아보는 이들에게는 존재의 가치가 있어 보이나 농사를 짓는 곳에서는 성가신 잡초일 뿐이다.

괭이밥, 사람들에게 괭이밥만 보이면 토끼풀인가 하다가 토끼풀과 괭이밥을 같이 보이면 토끼풀을 알아본다.
 괭이밥, 사람들에게 괭이밥만 보이면 토끼풀인가 하다가 토끼풀과 괭이밥을 같이 보이면 토끼풀을 알아본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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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풀'은 클로버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개항 이후 도자기 같은 그릇을 수입할 때 깨지지 않게 완충역할 용도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우리나라 들판에 퍼지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동물들의 먹이와 토양을 좋게 만드는 식물에 속한단다. 유익한 귀화식물인 셈이다.

토끼풀만 보면 사람들은 네 잎의 클로버를 찾느라 허리를 구부린다. 영화 <기적>의 한 장면처럼. 이 또한 너무 오래된 영화라 제목조차 가물거리지만, 전쟁터에서 나폴레옹이 네 잎의 클로버를 보고 엎드리는 순간 총알이 그의 등을 스쳐 지나가고, 순간 그 모습을 목도한 수녀님이던가? "기적이다" 하고 외치던 장면만 기억에 얼핏 남아있다.

요즘 이런 토끼풀과 매우 유사한 풀이 아파트 화단이나 보도블록 틈새로 자라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처음에는 토끼풀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달리 보였는데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괭이밥'.

정확한 하트모양의 잎 3장이 모여 마주 나고 5장의 노란 꽃잎이 앙증맞게 숨어 핀다. 관심 있게 보는 사람에게만 보일 만치 작다. 토끼풀은 공 같은 모양으로 몽실몽실 모여 주로 흰색의 꽃이 잎에서 쭉 올라와 피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맛을 보세요" 새콤하다고 하니 그것도 토끼풀하고의 다른 점인데 "고양이가 생선 같은 것을 먹고 입가심(?)용으로 잘 먹기 때문에 괭이밥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한다.

개쑥갓, 꽃이 활짝 핀 모습이다.
 개쑥갓, 꽃이 활짝 핀 모습이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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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쑥갓' 꽃은 피다 만 것 같았다. "애는 꽃이 왜이래요?" "그것이 다 핀 거예요" 잎은 식용 쑥갓하고 많이도 닮아 있다. 주말농장에 심었다가 채 거두지 못한 쑥갓은 코스모스처럼 하늘하늘 꽃대를 키우더니 또 그만한 크기의 노란 꽃을 활짝 피웠었다. 예뻤다. 개쑥갓의 꽃이 쑥갓하고 너무 다른 차이에 놀랐다.

주름잎, 잎과 풀이 아주 작다. 위의 부분이 꽃의 뒷부분, 서너 개의 줄이 있다.
 주름잎, 잎과 풀이 아주 작다. 위의 부분이 꽃의 뒷부분, 서너 개의 줄이 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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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쟁이의 마른 씨, 바람에 흔들리면 요령 같은 소리를 낸다고 한다.
 소리쟁이의 마른 씨, 바람에 흔들리면 요령 같은 소리를 낸다고 한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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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꽃 우산 만들어 놀던 풀의 이름이 '바랭이풀', 낮게 얼크러져 있는 풀들 속에서 귀족처럼 풀대를 올리고 있는 '방동사니', 꽃잎 뒤에 두 세 개의 주름이 져 있다고 해서 '주름잎', "눈도 좋아요. 어떻게 그 꽃을 찾아냈어요?" 누군가 찾아낸 주름잎을 보고 강사가 한 소리다. 꽃이 정말 작다.

씨가 마르면 바람에 흔들리며 요령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은 '소리쟁이', 열매가 까맣게 익는다고 해서 '까마중', 그리고 진짜 민망한 이름 '중대가리풀'을 만났다. 속설 이름인줄 알았다. 그러나 사전에 등재되어 있어서 한 번 더 놀랐다.

봄에 나와 있던 잎은 말라버리고 꽃대만 올라와 꽃이 피어 있는 '무릇'과 '독말풀'도 처음 만났다. 천지사방에 제 종족을 퍼트리고 있는 '털별꽃아재비'가 땅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그래서인가 일명 쓰레기풀이라고도 한단다.

민망한 이름의 중대가리풀. 주변을 둘러보니 곳곳에 보인다.
 민망한 이름의 중대가리풀. 주변을 둘러보니 곳곳에 보인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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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별꽃아재비, 화단이고 길이고 간에 안 보이는 곳 없이 퍼지고 있다.
 털별꽃아재비, 화단이고 길이고 간에 안 보이는 곳 없이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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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잎돼지풀'은 뽑아내야할 유해귀화식물이다. 잎도 무성하고 꼭 해바라기처럼 키가 컸다. 생태계 교란 야생식물로 지정되어 있는 '돼지풀3종' 세트 중 하나란다. 잘 모르니 그냥 키우고 있는 것 같다. 잎이 탐스럽고 시원해 보였다.

키와 잎이 무성하게 자란 둥근잎돼지풀, 유해식물이란 것을 모른 체로는 절대 뽑을 수 없게 생겼다.
 키와 잎이 무성하게 자란 둥근잎돼지풀, 유해식물이란 것을 모른 체로는 절대 뽑을 수 없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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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 주변에 봉숭아꽃을 심는 이유가 있어요. 바로 뱀의 접근을 막을 수 있거든요."

봉숭아꽃의 잎자루에는 꿀샘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꿀샘을 개미가 찾고, 떼로 몰려다니는 개미를 뱀이 싫어해서 접근을 피한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들은 어떻게 그런 지혜들을 알아내 실천하며 사셨을까.

엊그제 농촌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둑에 자라고 있는 박주가리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쓸데없이 풀에 코 박고 있다"고 지나가시는 어른께 퉁바리를 맞았다. 부지깽이도 일군이 되어야할 농번기인 거다. 이름을 말해드리니 "그냥 풀이지 뭐"하신다.

오지게 예쁜 꽃을 피워도 농작물이 자라는 밭에서는 성가신 잡초일 뿐이다. 그러나 당장에 뽑힐지언정 이름을 알고 만나는 풀은 눈에 쏙 들어온다. 그러기에 김춘수 시인의 <꽃>을 빌려 말하자면, '그들은 내게로 와, 하나의 의미 있는 꽃'이 되었다.


태그:#마들꽃사랑회, #야생초교실, #중랑천, #메꽃, #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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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가 되어 기사를 올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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