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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내게 있어 막걸리는 술이라기보다 옛 생각을 먼저 떠오르게 하는 음식이다. 아버지는 꼭 막걸리만 드셨다. 오래되어 약간 울퉁불퉁해지고 색도 회색이 되어버린 양은 주전자를 들고 100원 어치의 막걸리 심부름을 자주 했었다. 그렇게 사들인 막걸리는 아주 가끔 남을 때가 있다. 먹을 것이 궁했던 때, 남은 막걸리를 밀가루에 넣어 부풀려 빵을 해 먹었다. 그래서 지금도 막걸리를 보면 아버지와 빵 생각이 먼저 난다.

내가 직접 빵을 만들어 먹기 시작 했던 때가 아마도 중학교 시절이었던 같다. 그때 엄마는 장사를 하셨고, 웬만한 것들은 우리들 스스로 해먹었다. 언감생심 팥앙금이 들어가는 찐빵의 개념은 아예 없었다. 한참 먹을 나이라 궁금한 입에 무엇이든지 넣어 주는 것이 최선이었던 시기였다. 당시에는 국수와 밀가루를 거의 주식에 가깝게 먹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래서 집에는 늘 국수와 밀가루가 있었다. 그러니 '남는 막걸리'에 '있는 밀가루'로 반죽만 해서 발효시켜 쪄 내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만든 빵은 의외로 맛이 있었다. 소쿠리에 넣어 놓고 오며가며 먹었다. 아침에 밥을 먹기 전부터 야금야금 뜯어 먹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더 이상 막걸리 빵을 만들지 않았다. 남는 막걸리가 없었기에. 그리고 막걸리 빵을 야금거릴 나이도 지나가고 있었기에.

먹다 남은 막걸리에 설탕, 소금, 식소다를 넣고 잘 저어 준다. 반죽 농도는 수제비보다 약간 묽게 한다.
 먹다 남은 막걸리에 설탕, 소금, 식소다를 넣고 잘 저어 준다. 반죽 농도는 수제비보다 약간 묽게 한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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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로 덮어 놓고 한나절을 보낸, 1차로 발효된 막걸리 빵 반죽.
 이불로 덮어 놓고 한나절을 보낸, 1차로 발효된 막걸리 빵 반죽.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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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였다. 우연찮게 집에 막걸리가 남는 일이 생겼다. 막걸리를 보면 아버지가 생각나는 아픈 마음이 무뎌져 있는 것을 느끼며, 세월이 많이도 흘렀구나 싶은 게 막걸리 빵을 만들고 싶어졌다. 물론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다는 것보다는 내가 먹고 싶었다. 단 빵에 맛들인 아이들에게는 천덕꾸러기가 될 확률이 많았으므로 기대도 하지 않았다. 옛 생각이 나서 소쿠리에 담아놓고 들며 나며 먹을 생각이었다. 하도 오랜만에 했더니 헷갈렸다. 친정엄마께 물었다.

"설탕과 소금을 적당히 넣고, 식소다를 약간 넣어야한다."
"식소다?"

생각난다. 막걸리 빵을 발효시키는데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재료에 식소다가 있다. 그래야 쓴 맛이 나지 않는다. 설마 괜찮겠지 하고 그냥 했다가는 써서 먹을 수 없다. 이것도 어렸을 때 해본 경험이다. 식소다는 은수저의 더러운 때나 탄 냄비 등을 닦을 때 유용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늘 상비되어 있는 것이다.

원래 빵을 만들 때 베이킹파우더 역할도 하는 것인데 막걸리 빵에서는 '넣고 안 넣고'가 '쓰고 안 쓰고'의 차이를 만든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렇게 만든 것을 아이들한테 먹였다. 의외로 잘 먹는다. 그래서 아주 가끔 남는 막걸리가 생기면 빵도 만들고 더 나가 호떡도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막걸리를 마실 때면 조금만 남겨 놓으라고 부탁까지 할 정도였다. 어렸을 때의 습관 때문인지 빵을 만들겠다고 일부러 막걸리를 사본 적은 없다. 꼭 먹다 남을 때만 해먹는다. 그러다보니 자주 먹게 되지는 않았다.

1차 발효된 반죽을 한두 번 치댄 후 다시 한두 시간을 덮어둔다.
 1차 발효된 반죽을 한두 번 치댄 후 다시 한두 시간을 덮어둔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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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발효된 반죽. 푹 꺼져 있던 반죽이 한두 시간 후 열어 보면 다시 부풀어 있다.
 2차 발효된 반죽. 푹 꺼져 있던 반죽이 한두 시간 후 열어 보면 다시 부풀어 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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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주말농장에서 잡초와 씨름을 하고 났더니 목이 칼칼했다. 막걸리 한 병을 샀는데, 남편은 치과 치료 때문에 못 마시고 나만 한 잔을 마시고 났더니 남았다. 오랜 만에 빵을 만들었다. 막걸리 빵은 어떤 계량의 세심함도 없다. 막걸리가 많이 남아 있으면 밀가루를 많이 넣고, 적게 남았으면 적게 넣으면 된다.

약 2컵의 막걸리라면 티스푼으로 푹 떠서 소금 1, 식소다 1(절대 많이 넣지 않는다), 설탕은 조금 넉넉히(큰 수저로 2)넣어 밀가루와 섞는다. 수제비 할 때보다 조금 묽게 반죽하면 된다. 이것을 겨울에는 따뜻한 방에 이불로 싸두고, 요즘 같은 여름에는 실온에서 대충 싸서 한나절을 보낸다. 그런 뒤 열어 보아 부풀어 올랐으면 거품이 빠지게 한두 번 치댄 뒤에 또 한두 시간 덮어 두면 다시 부푼다. 그러면 동글동글 대충 찐빵모양을 내서 찌면 된다.

모양도 없고, 팥 앙금도 없지만, 자꾸 먹게 되는 막걸리 찐빵.
 모양도 없고, 팥 앙금도 없지만, 자꾸 먹게 되는 막걸리 찐빵.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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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실에 넣어 두고 먹을 때마다 빵 위에 물을 한번 묻힌 다음 랩을 씌워 1분 간 데우면 새로 한 빵처럼 말랑거린다. 또는 빵을 찌자마자 한 김만 내보낸 후 냉동실에 넣어두고 먹을 때마다 잠시 실온에 꺼내두면 다시 말랑거린다.

시큼한 막걸리의 텁텁함도 곁들어진 맛은 거칠지만 고소하고 담백해서 자꾸 손이 가게 한다. 에이 그게 맛있을까 싶겠지만, 막걸리에 충분히 일궈진 빵을 한 겹 한 겹 돌려가며 뜯어먹는 맛은 시중의 달달한 찐빵이나 베이글보다 더 당긴다. 내게는.


태그:#막걸리, #찐빵, #발효 음식, #식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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