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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유러피언드림 세 번째 이야기는 바로 볼로냐 경제모델의 비밀이다. 인구 40만이 채 안 되는 이탈리아 북동부 중소도시 볼로냐. 1970년대 경제위기와 불황 속에 한때 빈민의 도시로 전락하기도 했던 곳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삭막하고 치열한 경쟁 대신 협동과 연대의 정신이 오늘날 볼로냐를 이끌었다. 일부 소수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경제에도 볼로냐가 던지는 시사점은 많다.

경제전문가와 협동조합 연구자 등으로 구성된 볼로냐 취재팀은 농업을 비롯해 소비자, 건설 등 각 분야 협동조합과 기업 등을 방문한다. 또 사회경제의 권위자인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볼로냐 대학) 등 주요 전문가들의 심층 인터뷰도 진행할 예정이다. [편집자말]
1929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발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한 장인에게 시작된 테스토니. 테스토니는 세계에서 소수 부유층만이 경험할수 있는 가장 계급적인 상품이다. 이 상품이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사회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도시 볼로냐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1929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발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한 장인에게 시작된 테스토니. 테스토니는 세계에서 소수 부유층만이 경험할수 있는 가장 계급적인 상품이다. 이 상품이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사회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도시 볼로냐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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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정리 : 김종철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 이탈리아편> 특별취재팀

지난달 26일 오후.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주(州)의 볼로냐 프라텔리 거리. 회색빛 2층 단촐한 건물 앞에 섰다. 세계적인 구두 브랜드인 아 테스토니(a.testoni)다. 하지만 건물 외벽 어느 한곳에서도 테스토니를 알리는 표시 하나 찾기 어려웠다. 

건물 내부 역시 소박하긴 마찬가지다. 1층 입구에 손으로 직접 신발을 다듬는 큰 사진 한장이 걸려있을 뿐이다. 언론이나 외부인사의 방문을 위해 따로 제품을 전시해 놓는 공간도 없다. 서구 다른 유명 패션브랜드 업체들이 화려한 마케팅과 보여주기로 자신들을 알리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사실 기자도 내심 적잖게 당황스러웠다.

이들의 소박함은 1층 신발 제조라인에서도 그대로 이어져있다. 공장 내부는 국내 여느 중소기업의 작업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장 안에 들어서자, 가죽 특유의 냄새가 콧등을 자극했다. 공장 한 켠에 마련돼 있는 가죽 원단 저장고에는 이탈리아 현지에서 생산된 다양한 종류의 가죽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테스토니에서 15년 넘게 일하고 있다는 지오바니 갈라씨는 "테스토니 제품에 사용되는 가죽은 이탈리아에서 생산되는 가죽 원단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 12세기부터 볼로냐는 밀라노와 피렌체 사이를 오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면서 "이곳에 가죽을 다루는 장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고, 구두를 만드는 장인들이 생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너무나 소박한 그들, 600년 볼로냐 공법을 유지해온 장인들

'볼로냐 공법'은 볼로냐의 신발 장인기술자들이 600년 전부터 썼던 구두제조 방식이다. 굳이 우리말로 표현하면 주머니 공법이라고도 한다. 신발 안쪽에 부드러운 염소가죽을 하나같이 손으로 직접 꿰매서 주머니 모양을 만들어 신발 밑창에 집어 넣는 방법이다.
 '볼로냐 공법'은 볼로냐의 신발 장인기술자들이 600년 전부터 썼던 구두제조 방식이다. 굳이 우리말로 표현하면 주머니 공법이라고도 한다. 신발 안쪽에 부드러운 염소가죽을 하나같이 손으로 직접 꿰매서 주머니 모양을 만들어 신발 밑창에 집어 넣는 방법이다.
ⓒ 테스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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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씨와 함께 가죽 저장실 옆으로 발길을 돌렸다. 적어도 50세는 족히 넘어보이는 남녀 장인들이 한 편에선 가죽을 자르고, 또 한 편에선 조그마한 신발 미싱 기계 앞에 앉아 박음질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 회사 커뮤니케이션팀의 에밀리 레지슨씨는 "이들은 주로 최고의 가죽 원단을 가지고, 신발 디자인에 맞는 가죽 부위를 잘라내 만드는 작업을 한다"면서 "여기에서만 신발 한 켤레당 4시간 이상 걸릴 정도"라고 말했다.

이같은 신발 제작 공정에서 일하는 장인들은 적게는 10년에서 많게는 40년이상 테스토니 신발을 만들어온 사람들이다. 동행하던 갈라씨가 어디선가 신발 한 켤레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곤 기자 눈앞에 신발을 선뜻 내놓았다. '볼로냐(Bolognese) 공법'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볼로냐 공법'은 볼로냐의 신발 장인기술자들이 600년 전부터 썼던 구두제조 방식이다. 굳이 우리말로 표현하면 주머니 공법이라고도 한다. 신발 안쪽에 부드러운 염소가죽을 하나같이 손으로 직접 꿰매서 주머니 모양을 만들어 신발 밑창에 집어 넣는 방법이다.

거의 모든 일반적인 구두의 경우 신발 밑창과 윗부분이 따로 떨어져 있다. 반면 볼로냐 공법으로 만들어진 구두는 신발 안쪽의 위, 아래쪽 가죽이 박음질없이 하나로 돼 있다는 것이다.

갈라씨는 "마치 딱 맞는 장갑을 낀 것처럼 신발을 신었을 때 착용감이 다른 제품과는 확실히 다르다"면서 "기술자들이 직접 손으로 꿰매야 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고, 정성이 들어간다"고 소개했다. 현재 이같은 방식으로 신발을 제작하고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 테스토니가 거의 유일하다.

신발 한 켤레에 200여 번의 공정... 협동과 믿음의 장인정신

테스토니에서 15년넘게 일하고 있다는 지오바니 갈라씨. 그는 "제대로 된 구두 하나를 만들어내는데 길게는 14시간이 걸린다"면서 "200여번에 달하는 공정을 이곳에 있는 기술자들이 하나하나 꼼꼼하게 손으로 직접 만들고, 다듬고 있다"고 말했다.
 테스토니에서 15년넘게 일하고 있다는 지오바니 갈라씨. 그는 "제대로 된 구두 하나를 만들어내는데 길게는 14시간이 걸린다"면서 "200여번에 달하는 공정을 이곳에 있는 기술자들이 하나하나 꼼꼼하게 손으로 직접 만들고, 다듬고 있다"고 말했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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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볼로냐 공법으로 신발을 만드는 한 장인 기술자는 "다른 신발들과 달리 인체공학적으로도 가죽이 발을 편안하게 감싸주기 때문에, 발 건강에도 좋다"고 말했다.

볼로냐 공법 이외에도 테스토니에선 옛 신발제조 방식을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다. 갈라씨는 "제대로 된 구두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길게는 14시간이 걸린다"면서 "200여 번에 달하는 공정을 이곳에 있는 기술자들이 하나 하나 꼼꼼하게 손으로 직접 만들고, 다듬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테스토니에서 생산되는 모든 신발이 '볼로냐 공법'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에밀리씨는 "현재 테스토니 제품라인 가운데 '블랙 라벨(Black Label)' 신발에 볼로냐 공법이 적용되고 있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들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 역시 가장 높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볼로냐산 신발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무엇보다 예전부터 내려 온 철저한 협동과 믿음을 통한 장인정신 때문이다.

볼로냐에서 신발을 만드는 기술은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 북서부 교통의 요충지였던 볼로냐에는 당시부터 신발을 만드는 가죽공들의 길드조직이 만들어졌다. 이후 수천 명에 달하는 회원이 속해 있는 신발공 길드는 1600년에 가서는 볼로냐에서 중요한 산업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 이후 150여 개 넘는 공방들이 도심 중심부에 자리를 잡아 상권을 만들었다.

현재도 볼로냐 시내 중심가를 지나다 보면, 여전히 가죽장인과 신발장인들이 운영하는 업체를 볼 수 있다. 30년 넘게 수제 구두를 만들어 온 에르 리몬디(R. Rimondi) 상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50년대 모습의 상점 입구를 그대로 유지해 놓고 있는 이곳 역시 150여 가지 넘는 신발 공정을 모두 손으로 직접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기업 매출 신경쓰기보다 이탈리아 정신 지닌 제품으로 승부

브루노 판테키 테스토니 CEO는 "기업입장에선 매출을 크게 늘려가는 것도 중요할수 있지만, 제품에서 이탈리아적인 정신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브루노 판테키 테스토니 CEO는 "기업입장에선 매출을 크게 늘려가는 것도 중요할수 있지만, 제품에서 이탈리아적인 정신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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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도 볼로냐 공법의 신발을 만드냐'는 질문에 상점 주인인 리몬디씨는 살짝 웃으면서 "우리 역시 우리만의 기술로 신발을 만들기 때문에 이것 역시 '볼로냐 공법'"이라고 말했다.

테스토니의 지오반니 갈라씨는 "볼로냐 신발의 강점은 수세기 전부터 내려온 길드조직 등을 통한 장인들 간의 협동과 네트워크, 기술에서 나온다"면서 "이같은 장인들의 기술이 사라지지 않고, 그 가치를 보전해 나가려는 정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테스토니의 이같은 경쟁력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오히려 테스토니 신발을 찾는 구매층이 세계적으로 꾸준히 늘어가는 추세다. 국내에도 이미 92년부터 들어와 있으며, 작년 한국지사 매출만 150억 원에 달한다.

브루노 판테키 테스토니 CEO는 "테스토니는 그동안 경제위기와 상관없이 제품을 꾸준히 생산해왔다"면서 "철저한 수공업 제품생산이다 보니 생산 물량을 크게 늘리지 않고 있지만,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물량 주문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업으로선 매출을 크게 늘리는 것도 중요할 수 있지만, 제품에서 이탈리아의 정신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가장 이탈리아다운 제품만이 글로벌화된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수 있는 경쟁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 시장에 대해선, "한국소비자들의 경우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제품에 민감하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면서 "현재의 제품 구성면에서도 좀더 다양화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1929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발을 만들겠다'는 꿈을 지닌 한 장인이 시작한 테스토니. 테스토니는 스스로 '예술가'라는 철저한 장인의 자부심을 가지고 만든 세계에서 소수 부유층만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계급적인 상품이다. 이 상품이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사회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도시 볼로냐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 이탈리아편> 특별취재팀: 현지 취재 : 김종철 기자(팀장) 이승훈 기자, 편집 자문 : 정태인 경제평론가, 신성식 경영대표(아이쿱 생협), 정원각 사무국장(아이쿱 생협연구소)


태그:#유러피언드림, #볼로냐, #에밀리아로마냐, #테스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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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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