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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불볕더위와 함께 피서철이 시작되었던 1972년 7월 30일은 일요일이었는데요. 동생하고 대천해수욕장에 갔다가 우연히 서수남·하청일 콤비를 만나 기념촬영도 하고 담소도 나눴던 추억들이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는군요.

서수남씨와 찍은 기념사진(1972년7월30일), 하청일씨가 숙소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후 아쉬운 마음으로 취한 포즈라서 표정이 그리 밝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서수남씨와 찍은 기념사진(1972년7월30일), 하청일씨가 숙소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후 아쉬운 마음으로 취한 포즈라서 표정이 그리 밝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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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고속도로 1,2차 구간이 완전히 개통되던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천해수욕장은 해마다 여름이면 부산 해운대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찾았습니다. 가난했던 시절이었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서울 사람들이나 다니는 피서지로 인식되어 한 번 다녀온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중앙로 시외버스 터미널 앞 가게를 정리하고 72년 4월부터 평화동에 있는 큰 가게를 인수해서 '총각 사장' 소리를 듣던 때여서 호주머니 사정이 그런대로 괜찮은데다, 남들이 '피서, 피서'하니까 분위기에 휩쓸려 대천까지 갔는데요. 몇 시간 쉬다가 당일 밤차로 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스물 세 살이던 제가 전문대학에 다니던 동생과 동행한 이유는 온갖 사기꾼과 도둑, 깡패들이 모여든다는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해수욕장으로 놀러 갔던 남학생들이 깡패들에게 돈을 빼앗기거나, 사춘기 여성들이 인신매매단에게 걸려들어 술집으로 팔려가는 사건이 종종 발생했으니까요.

대천해수욕장에 도착해서 은빛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가슴에 품으니까 기분이 상쾌하더군요. 비키니 차림으로 오가는 아가씨들과 연탄불 위의 오징어처럼 트위스트를 추는 젊은이들이 피서지임을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해수욕장은 낭만과 젊음의 열기가 넘치는 곳이니까요.

한여름 햇볕이 작열하는 모래사장을 맨발로 거닐었는데요. 발바닥이 따가웠습니다. 그래도 좋더군요. 몸이 아파서 물속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자리를 잡고 앉아 요지경 같은 피서지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낯익은 얼굴이 보이더군요. 장다리와 꺼꾸리로 불리던 서수남·하청일 콤비였습니다.

하청일씨 외면했던 게 지금도 마음에 걸려

대부분 스타들은 출연료나 광고료 액수가 동료 연예인보다 적을 때 자존심이 상한다고 하는데요. 거리를 걸어갈 때 사람들이 자신을 몰라볼 때도 개런티가 작은 만큼이나 자존심이 상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연예인들의 자존심은 인기가 곧 재산이고, 돈이 우선시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김혜수와 고소영이 함께 있을 때, 사람들이 한 사람에게만 몰려가 사인을 부탁한다면 다른 한 사람은 죽고 싶을 정도로 모멸감을 느낄 것이니까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38년 전 대천 해수욕장에서 서수남·하청일 콤비를 만났을 때 두 사람 모두에게 인사도 하고 기념사진도 함께 찍자고 해야 하는데 하청일씨를 외면했던 것이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마음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모래사장 비치파라솔 아래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반가움에 달려가 "가수 서수남씨 아니십니까? 만나보고 싶었는데 반갑습니다.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싶은데요"라고 부탁하니까 서수남씨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있던 하청일씨는 표정이 변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군요.

마침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목에 멘 아저씨가 다가와 사진을 찍으라고 권하기에 얼마냐고 물었더니 1천5백 원이라고 하더군요. 당시 목욕비가 60원이었으니 적잖은 금액이었고, 카메라도 휴대하고 있었지만, 사진을 컬러로 즉석에서 빼준다고 하니까 서수남씨도 포즈를 취했습니다.

하청일씨는 사진사와 이야기하는 중에도 자꾸 숙소로 돌아가자고 조르더군요. 결국, 하청일씨는 서수남씨가 "어이, 잠깐, 잠깐만 기다려!"라고 하는데도 사진촬영 하는 모습도 보기 싫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조금 불쾌한 기분이 들더군요. 

2분쯤 기다리니까 사진이 나왔는데요, 딱 한 장만 인화되어 나오더군요. 해서 저만 소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수남씨도 사진을 요리조리 만져보면서 이렇게 즉석에서 나오는 카메라가 있었느냐며 신기해하더군요. 그도 한 장 가지고 싶은 모양인데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진사 아저씨의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그렇게 신기하게 보일 수가 없었는데요. 사진을 처음 받을 때는 10년만 지나도 탈색되고 변색되어 보기 흉할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40년이 되어가도록 신기할 정도로 색감을 유지하고 있네요. 서수남씨도 봤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반가움에 정신이 팔려 하청일씨에게 관심을 표시할 여유가 없었는데요. 서수남씨와 헤어지고 나니까, 자존심이 무척 상했을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너무나 경솔했던 것 같아 자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1972년 여름의 대천해수욕장 풍경, 튜브를 가지고 노는 귀여운 꼬마들도 이제는 뒤에서 사진 찍는 아빠?보다 더 늙은 아빠가 되었겠네요.
 1972년 여름의 대천해수욕장 풍경, 튜브를 가지고 노는 귀여운 꼬마들도 이제는 뒤에서 사진 찍는 아빠?보다 더 늙은 아빠가 되었겠네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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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야구장에서 만났던 하청일씨 

70년대 초 대중음악계는 포크송이 주름잡았던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낡은 청바지, 장발, 통기타가 청년문화의 상징으로 퍼져 나갔지요. 음악 감상실이 밀집한 대학가와 도심지는 물론, 야유회 가는 버스에서도 포크송이 물결을 이루었으니까요.

대부분 고학력자로 구성된 포크 가수들은 자작곡을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대부분 외국 번안곡으로 등산이나 야유회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즐겨 부르던 서수남·하청일 콤비 노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늘 풍자적이면서 해학적이었지요.

닮은 데라고는 하나도 없는 장다리 서수남과 꺼꾸리 하청일 콤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글을 쓰는 지금도 모니터에 아른거리는데요. 카우보이 모자에 통기타, 개구쟁이를 연상시키는 둥근 모자를 쓰고 하모니카를 불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지요.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누렸던 꺼꾸리 하청일은 82년 4월에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방송 리포터로 활동하면서 야구 박사가 되었는데요. 그의 활발한 활동에도 마음은 늘 안타까웠습니다. 경쾌한 노래와 귀여운 장난기를 자주 볼 수 없기 때문이었지요.  

그는 10년 넘게 프로야구 리포터로 활약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프로야구 원년(1982년)에 해태 경기가 열렸던 전주 야구장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청일씨가 너무 바빠 손목만 잡았지 대천에서의 실수를 사과하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그분이야 잊었겠지만, 저는 손톱 끝 티눈처럼 항상 마음에 걸렸으니까요.  

서수남·하청일은 1969년에 콤비로 출발해서 '동물농장', '팔도유람', '과수원 길', '한번 만나줘요', '벙글벙글 웃어주세요' 등으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는데요. 통기타 리듬의 부드럽고 경쾌한 그들의 노래도 세월과 함께 흘러 이제는 아련한 향수로 다가옵니다.

서수남씨는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하청일과 헤어진 지 20년 정도 됐는데 소식을 모른다고 밝혔더군요. 사업에 실패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소식이 없다는 보도도 접했는데요. 38년 전 그날처럼 서수남·하청일 콤비를 또 만나면 함께 부르고 싶은 노래 '벙글벙글 웃어주세요' 첫마디를 올려봅니다.

"벙글~벙글 벙글 벙글벙글 웃어주세요/ 화~내지 말고/ 상냥스럽게 웃어주는~/ 그 얼굴이~/ 언제나 나는 좋아요··· 예쁜 그 얼굴 찡그리면 나는 싫어요/ 살며시 웃어주세요···."

덧붙이는 글 | '2010 이 여름을 화끈하게! 응모'



태그:#서수남, #하청일, #대천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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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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