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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군 벌교읍에서 한 평 남짓한 열쇠, 구두수선집을 하고 있는 김지수씨
 보성군 벌교읍에서 한 평 남짓한 열쇠, 구두수선집을 하고 있는 김지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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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군 벌교읍에서 구두수선집을 하고 있는 김지수(56)씨, 28세때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하반신 마비로 살아가고 있다. 삶의 절반 이상을 평범하게 살다가 당한 장애였기에 훨씬 더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됐지만 그는 이미 달관한 듯 보였다.

"우리 모두는 크거나 작거나 고통과 장애를 안고 사는 장애인이지요. 단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죠" 김씨는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다소 재미난 농담까지 던졌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장애인인거나 예비 장애인인데 보이지 않기에 챙겨주지 않죠. 그런 면에서 보이는 장애를 갖고 있는 우리가 더 행복한지도 모르죠"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중도 장애로 인해 삶이 많이 달라지셨겠죠?"라고 질문하니 김씨는 그동안 있었던 웃지 못 할 해프닝 두 가지를 말하면서 선천성 장애인에 비해 중도 장애인은 좀 색다른 어려움이 있다고 푸념하듯 말했다. '생각은 비장애인인데 몸은 장애인으로 문득 자신의 상태를 망각할 때가 있다'고 한다.

올해 56세인 김씨는 28세때 사고를 당해 한 쪽 다리를 절단하고 하반신 척추 장애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
 올해 56세인 김씨는 28세때 사고를 당해 한 쪽 다리를 절단하고 하반신 척추 장애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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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해프닝이 바로 휠체어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김씨가 트럭 열쇠를 열어주러 갔던 얘기며, 아파트 열쇠를 열어주러 갔던 얘기다. 수년 전, 트럭 문이 잠겼다는 전화를 받고 자신의 상황을 망각한 채 "예, 알겠습니다", 아파트 키가 잠겼어요라는 전화에 "예, 곧 가겠습니다"라고 말해버렸던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니 비로소 자신은 움직이기 힘든 중증장애인임을 알고 아차 했다는데, 그래도 손님과 약속이라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갔었다고 한다.

하지만, 도착해서도 높다란 트럭에 올라갈 수 없어 작업을 못하고 그저 공구통을 기사에게 주면서 옆에서 말로 지시했다는 것, 어찌어찌 작업을 마치고나니 운전기사가 농담 반, "작업은 내가 했으니 돈은 안 드려도 되겠네요?" 그래서 "공구는 사용했으니 공구사용료는 주셔야죠?"하면서 웃고 말았다는데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듯 허전했다고 한다.

"사고를 당한 지 거의 20년이 가까운데도 그런 일이 가능한가요?"라는 질문에 김씨는 물론이라면서 "꿈을 꾸면 장애를 입은 현재의 상태가 나타나야 하는데 이상하게 아직도 사고 나기 전, 정상적으로 활동하던 모습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래서 더 헷갈린다고 한다.

김씨의 가게에 걸린 열쇠들, 대형마트의 카트처럼 주렁주렁 연결 돼 있다
 김씨의 가게에 걸린 열쇠들, 대형마트의 카트처럼 주렁주렁 연결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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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필자는 한 평 남짓한 김씨의 가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선풍기 한 대로 후덥지근한 오후 날씨를 견디면서 일에 몰두하고 있는 김씨의 가게에는 도장을 새기는 기구, 구두수선을 할 수 있는 재봉틀과 재료 등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그리고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열쇠꾸러미는 대형마트의 카트처럼 연결 지어 서 있다.

휠체어 하나 돌리기 힘든 공간임을 발견하고 "불편이나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것입니까?"라고 질문하니 김씨는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지만 이렇게 좁고 또 움직이기 힘든 장애인이기에 한 가지 안타까웠던 것은 있다고 운을 뗀다.

얼마 전에 한 할머니가 오셔서 신발을 수선해 가면서 만원을 내밀어, 잔돈을 거슬러 드렸는데 잠시 후, 펴보니 2만원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장애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곧바로 뛰어나가서 할머니를 불러 돈을 돌려 드렸을 텐데 움직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에 그렇게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그러면서 할머니들이 돈을 들고 다니실 때 꼭 펴서 다녔으면 한다는 조언의 말도 남긴다. 자식들이 돈을 드리면 할머니들은 그 돈을 꼭 몇 번 접어서 들고 다니기에 나중에 쓸 때 자칫 그것이 한 장인지 두 장인지 모르고 지불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언제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가게 밖으로 마이크와 스피커 장치를 해 볼까도 생각 중이라고 한다.

김씨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라고 말한다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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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나 꿈을 갖게 계시냐"는 질문에 단호히 '없다'고 말하는 김씨,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꿈으로 나타나 현실에서는 착각을 일으키기기에 그것을 경계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면서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라고 답한다.

장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선청성 장애가 있는가 하면 김씨처럼 중도장애가 있다. 일반적으로 선천성 장애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15:85 정도로 중도장애가 압도적으로 많다. 김씨가 비장애인이 더 불행하다고 던진 농담 속에는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속담이 포함돼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보성군, #벌교읍, #김지수, #장애인, #구두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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