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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네팔 출신 이주문화 활동가 미누의 강제추방 소식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미누 석방을 위한 공대위'가 꾸려졌다. 이후 출입국 앞에서의 시위와 각계의 탄원이 이어지며,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었다. 반면 비슷한 시기 미누와 똑같이 92년도에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했던 또 한 사람이 강제 출국됐지만,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18년... 그는 아직도 김치가 그립다

 

필리핀 출신 앤디(45)의 이야기다.

 

"한국 사장님들 다 똑같아요. 그냥 일만 할 때는, '너 없으면 누가 일하냐, 니가 제일 일 잘한다'고 말하던 사장님께 월급 올려 달라고 하면, '돈 없어, 인마, 이 새끼 돈만 아는 나쁜 놈 아냐, 이거'라고 말해요."

 

눈을 감고 있으면, 외국인이 말하고 있다고 느끼기 쉽지 않을 만큼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블랑카'도 그만큼 우리말을 잘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국식당에서 된장찌개를 앞에 두고 앤디는 젓가락으로 김치를 쪼개서 먹을 만큼, 젓가락질이 능숙했는데, 김치가 아직도 그립다고 했다.

 

마흔 다섯의 앤디는 1992년에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했다가 지난 2009년 7월에 강제 출국됐다. 한국에서 해수로 18년을 살았던 셈이다.

 

한국을 떠난 지 일 년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김치가 그립다는 앤디는 자신이 강제 출국되고 난 후, 한국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한국사회가 '다문화'라고 하면서 자신처럼 한국인이 다 된 사람들을 잡아서 돌려보내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다.

 

필리핀인이 마약한다?... 강제출국 당한 앤디

 

대화를 나누던 중 그가 강제 출국된 사연을 듣는 순간, 유쾌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나 듣는 이들이나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동두천, 양주, 마장동, 의정부. 그가 일했었다는 지역들이다. 18년 동안 짧게는 몇 개월부터 길게는 5년간 일했던 회사도 있고, 마지막 회사는 9년을 일했다. 아스팔트 건설 컨설턴트였던 앤디는 세 명의 아이들을 둔 가장이었다. 그런 그가 한국행을 선택했던 것은 월급이 많다는 친구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녹록지 않았지만, 앤디는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다고 했다. 그런 그를 만만하게 봤는지, 18년 동안 월급을 떼어먹힌 경우가 스무 번은 된다고 한다. 그래도 마지막 두 회사는 각각 5년, 9년을 일했고, 월급만큼은 꼬박 꼬박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정육점에서도 일을 했던 앤디는 오전에는 고기를 자르고, 오후에는 배달을, 밤에는 물건 들어오는 것을 받는 등 밤낮없이 일을 해야 했고, 끝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앤디는 힘들게 번 돈의 80%를 송금하며 아이들을 키웠고, 지금은 필리핀 대중 교통 수단인 지프니를 사서 운전을 하고 있다.

 

앤디는 밤낮없이 일하던 자신이 강제출국하게 된 것이 사장의 농간 때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오전에 일을 하고 있을 때 경찰이 들이닥쳐서 자신을 체포했는데, 정육점에서 필리핀인이 마약을 한다는 신고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물론 경찰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앤디는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의정부 출입국으로 넘겨졌고, 3일 후 강제출국 조치됐다.

 

"18년이면 한국사람 다 된 거예요. 그런데 내쫓아요. 미국에서는 불법사람 10년 넘으면 영주권 주잖아요. 제가 나쁜 일 한 거 아니에요. 일만 했어요. 왜 그렇게 못 해요?"

 

아무리 외국인이라도... 헤어질 때 슬픈 거 아닌가요

 

귀국하기 전에 마지막 달 급여만 받았다는 앤디는 보너스 한 번 받아본 적 없고, 퇴직금 역시 받아본 적이 없다. 매월 220만 원을 받았던 앤디가 만일 퇴직금을 받았다면, 2천만 원 가까운 금액이었을 것이다.

 

"가족처럼 생각하고 일했는데, 추방될 때, 비행기 값도 안 보태주는데 섭섭했다"는 앤디에게 오해가 있을 것 같아, 5인 미만인 경우 퇴직금이 없다는 퇴직금 관련 규정을 설명해 주었다. 그는 그런 규정을 알고 있다고 했다.

 

"퇴직금을 계산해 달라는 것이 아니에요. 9년을 같이 일하고 가족처럼 생활했으면, 잘 가라고 작은 선물이라도 줬으면 했어요. 사람이 헤어지는데 슬픈 거 아닌가요? 그런데 사장님은 외국 사람에게 그런 거 없는 것 같았어요. 사장님도 외국 가면 다 외국 사람이에요."

 

앤디는 사람의 도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한국 사람에게 들으라는 훈계처럼 들렸다. 그를 섭섭하게 한 걸로 치면 어디 사장 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명색이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을 한다는 이들조차, 문화 활동가를 위해서는 추방하지 말라고 너나없이 소리를 높였던 반면, 밤낮없이 일만 했던 사람을 위해서는 귀를 열어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2010.6.14-25일까지 필리핀 이주과정 전반에 관한, 한국으로의 이주노동을 중심으로 한 실태 조사 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은 단순히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주와 관련하여 출국 전, 이주노동 현장, 귀국 후까지 이주과정 전반을 살펴보고, 아시아에서 이주노동이 차지하는 위치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향후 어떤 정책이 개발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

이번 실태 조사는 기자 외에 아산외국인노동자센터 우삼열 소장, 박종우 활동가, 결혼이주여성인 안나, 의정부 엑소더스 이인화 간사가 동행했다. 


태그:#불법체류, #강제추방, #필리핀, #미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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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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