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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쯤 핸드폰 알람소리를 듣고 단잠을 깼다. 안동으로 떠나는 기차는 8시 35분이라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엄청나게 오래된 시골집인 단양역 관사 안에는, 이름 모를 (아주 커다란) 곤충들이 돌아다녔는데 이게 다 자연이 훼손되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걸 앎에도 막상 눈앞에 보이면 무섭고 싫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갑자기 엊그제 영월에서 곤충박물관을 가지 못해 아쉬웠던 게 전혀 아무렇지 않게, 아니 오히려 다행인 걸로 여겨졌다.

환한 아침은 늘 경이롭다. 125볼트 콘센트까지 달려 있는, 족히 삼십 년은 된 듯한 구식 관사에서 보낸 을씨년스럽고 까만 밤. 다른 여행자들은 오지 않는걸까 기다리다 피곤에 지쳐 홀로 잠들었더랬다. 시골 사람들이 도시인들보다 일찍 자는 건 밤이 무서워서 그런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도시에는 좀처럼 진짜 밤, 까만 밤이라는 게 찾아오지 않으니까. 완전한 암흑에 갇히는 게 무서워 얼른 잠을 청해 버리는 거다.

대강 씻고 짐을 챙겨 역사로 나왔다. 숙소가 역에서 가까우니 참 편했다. 낡은 건물을 빠져나오니 햇살이 더 눈부시게 쏟아졌고 단양역 직원분의 환송을 받으며 기분 좋게 열차에 올랐다. 오늘 하루도 힘차게.

단양에서 안동까지는 한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어제 미리 사둔 과자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조금 매너 없나, 생각하면서도 미처 말리지 못한 수건 빨래를 앞좌석에 걸쳐 널었다. 객차가 한가해서 다행이었다.

읽으려고 가져온 책 <몰타의 매>를 꺼냈다. 여행을 할 때 꼭 책을 가지고 다니기는 하는데 사실 읽을 시간은 많지 않다. 그 때 그 때 있었던 일과 떠오르는 생각들을 노트에 쓰고 일정도 계속 조정하고 안내책자와 지도도 들여다봐야 되니까. 산과 강도 바라보고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맞아야하고 길 위의 햇살도 쬐어야하니까. 하지만 동네 도서관에서 문자메시지로 '도서 연체 통보'를 보내왔기 때문에 오늘은 몇 장이라도 책을 읽기로 했다.

안동에 도착하긴 했는데, 하회마을은 어디에?

선비의 고장 안동은 생각보다 큰 도시고 구경할 것도 정말 많다. 잘 알려진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병산서원 외에도 국보를 두 기나 보유한 봉정사가 있고 이육사문학관, 안동민속박물관, 월영교 안동댐 등등. 문제는 모든 관광지가 아주 띄엄띄엄 있고 버스도 자주 없기 때문에 하루에 이 모든 걸 볼 수는 없다는 거다.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면 효율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나는 급하게 구경하다 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두 군데를 덜 보고 만다.

안동에 처음 오는 이들이라면 대개 그렇겠지만 지난 겨울 안동에 첫 방문한(저녁에 내려와서 안동찜닭만 먹고 다음날 아침 서울로 가버렸던 짧은 여정이었다) 나 역시 역에서 내리기만 하면 바로 거기가 그냥 하회마을일 줄 알았다. 하지만 안동 시내에서 하회마을에 들어가는 버스는 하루에 8번밖에 없고 그나마도 45분이나 걸린다.

안동역에 배낭을 맡기고 노트와 펜, 마실 물만 챙겨 나왔다. 역 앞의 관광안내소에서 이런 저런 안내책자들을 챙기다 보니 이내 한짐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두 어깨가 비게 되니 훨씬 편했다. 마음까지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하회마을 가는 버스 안에서
 하회마을 가는 버스 안에서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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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 가는 46번 버스. 전부 내 또래일, 나이가 많아 봤자 스물다섯일 내일로 여행객들이 우르르 탑승했다. 새파란 내일로 유저들을 제외하고는 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안동시내를 지나 한적한 시골길로 접어들자 할머니들은 한 분씩 내리신다. 미리 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서울의 버스와는 달리 안동의 버스는 선비의 고장답게 인내심이 있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룸미러로 뒷문 쪽을 보면서 천천히 문을 닫고 출발한다.

논에서는 벼가 춤을 춘다. 햇빛 받고 반짝반짝 정수리 끝을 빛내면서 문자 그대로 휘적휘적 선비들의 풍류인 양 어깨춤을 추고 있다.

하회마을 가는 방향이라는 표지판을 몇 개나 지나서 거의 다 왔을까 싶었을 즈음 운전기사 아저씨가 내리란다. 매표소 앞이다. 여행객들은 우르르 내려서 표를 끊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매표소에서 하회마을 입구까지의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잖으면 따로 500원을 내고 순환하는 버스를 타거나 1.2km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 2000원을 내고 하회마을 입장권을 샀다.

마침내 도착한 하회마을 입구. 내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방문 기념 전시관'. 벌써 10년도 더 된 1999년의 일이다. 당시 한창 높은 주가를 올리던 배우 류시원씨가 고향마을에서 직접 여왕을 대접하던 뉴스 화면이 떠올랐다. 나중에 정치학개론 전공 수업 시간에 듣기로는 그게 무슨 국제정치상의 동기가 있어서랬는데. 강의로 배운 것은 흐릿하고 방명록에 남기고 간 여왕의 서명만이 선명하다.

안내소에서 관광안내도를 얻었다. 한 시간이면 족히 돌아볼 수 있을 만큼 하회마을은 크지 않은 동네다. 밀짚모자를 쓴 여행객 무리는 떠들썩하고 나처럼 혼자 조용히 걷는 이들도 몇 보인다. 지도를 보며 마음 가는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낙동강 돌아나가는 명당, 풍산류씨 600년 삶터 하회마을

낙동강물(河)이 마을 주변을 에스(S)자 모양으로 돌며 흘러서(回) 풍수지리상 사람이 살기 좋다는 안동 하회(河回)마을.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대표적 동성마을이다. 애초에 관광지가 아니라 그냥 사람 사는 터전이었는데 국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고 많은 객이 찾게 됐다. 특히 영국 여왕의 방한 이후에는 관광객이 너무 몰려서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로 몸살을 앓기도 했던 모양이다.

높지 않은 담 사이로 난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까치발을 하고 담 너머 집들을 훔쳐보기도 한다.
 높지 않은 담 사이로 난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까치발을 하고 담 너머 집들을 훔쳐보기도 한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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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사는 사람이 있는 집들이기라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말없이 거닐었다. 어쩌면 하회마을은 그냥 시골 할머니댁을 찾아온 느낌일 수도 있다. 이곳의 주민들은 민박이나 고택체험 등으로 수익을 얻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의 특성상 포기하지 못하는 게 땅이고 농사다. 크지 않은 마을, 집과 오솔길이 있는 곳이 아니면 죄 논과 밭의 차지다. 종가 며느리라고 여왕과 사진도 찍은 분이 장화와 몸뻬 차림으로 대문을 여닫는다.

종가의 며느리로 산다는 것. 풍산류씨 종손으로 산다는 것. 영국 여왕으로 산다는 것. 종가의 며느리도 대개는 만만찮은 종가의 딸일 터이니 이들은 그렇게 태어난 모양대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태어날 자리를 선택할 수 없다. 탄생은 제비뽑기 같은 것이라, 제비를 잘 뽑으면 양반이 되고 운이 없으면 노비나 백정이 된다. 무작위의 선택이었다고 하기에 누군가에게는 너무 과분하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비참하게도 하나의 생이 지나간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김연수 작가는 광주 민간인 학살에 대한 386세대들의 분노를 '누구라도 그 때 광주에 있었다면 희생될 수 있었던, 완벽하게 우연적인 죽음에 대한 절규'라고 표현했다. 사회가 진보한다는 것, 민주화된다는 건 그렇게 우연이 아무렇게나 흩뿌려놓은 기회들을 보다 평등하게 나누는 것이다. 현대에는 영국 여왕이라 해도 더 맛있는 코카콜라를 먹을 수 없고 풍산류씨 종손이 아니라 해도 인기 탤런트가 될 수 있다.

하회마을 입구의 정 반대편까지 걸어가보면  커다란 옹이구멍이 뚫려 있는 고목이 한 그루 있다. 고목나무 안에서 바라다본 바깥 풍경.
 하회마을 입구의 정 반대편까지 걸어가보면 커다란 옹이구멍이 뚫려 있는 고목이 한 그루 있다. 고목나무 안에서 바라다본 바깥 풍경.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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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에는 초가도 있지만 대개는 번듯한 기와집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시골 할머니 댁 아궁이에서 불장난하던 기억이 난다.
 하회마을에는 초가도 있지만 대개는 번듯한 기와집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시골 할머니 댁 아궁이에서 불장난하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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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정중앙에 위치하는 삼신당 신목은 수령이 600여 년이라고 하니 풍산류씨 가문이 하회마을에 살기 시작할 즈음 심었던 것일 테다.
 마을의 정중앙에 위치하는 삼신당 신목은 수령이 600여 년이라고 하니 풍산류씨 가문이 하회마을에 살기 시작할 즈음 심었던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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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조그만 종이를 금줄에 묶어두고 왔다. '칙칙폭폭 내일로 미운오리'
 나도 조그만 종이를 금줄에 묶어두고 왔다. '칙칙폭폭 내일로 미운오리'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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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면 부용대에 이를 수 있다.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하회마을 전경을 기대했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뱃사공이 없었다. 이 나룻배는 삿대를 이용하여 움직이는 전통 방식으로 운행된다고 한다.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면 부용대에 이를 수 있다.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하회마을 전경을 기대했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뱃사공이 없었다. 이 나룻배는 삿대를 이용하여 움직이는 전통 방식으로 운행된다고 한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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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下편으로 이어집니다. 더 많은 사진과 정보는 기자의 블로그에 있습니다.



태그:#안동, #안동여행, #하회마을, #안동역, #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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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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