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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 여아 초등학교 납치 성폭행 사건'의 악몽이 잊혀지기도 전에 또다시 7세 여아의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주택가에서 혼자 놀고 있던 아이가 대상이었다. 그런데 '8세 여아 초등학교 납치 성폭행 사건'과 이번 사건은 약간 다른 점이 있다. 그 중에서도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 사건의 가해자가 협박이나 위협이 아닌 친절함을 통해 피해 아동의 집까지 들어가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아동에겐 '모르는 사람'이란 개념이 없다

아동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 <오로라공주>의 한 장면.
 아동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 <오로라공주>의 한 장면.
ⓒ 이스트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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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력 예방 전문강사인 필자는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을 따르지 말라"고 가르치는 교육을 비판해 왔다. 김성천 교수(중앙대 아동학)에 따르면, 아동은 10분 전에 만나도 금방 아는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조금만 친절해도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또한 조금만 잘 생기거나 매력을 보여도 좋은 사람이라 여긴다. 즉, 이는 아이들에게는 '모르는 사람'이란 개념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낯선 사람'을 별 의심 없이 따라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을 다시 잘 복기해 보면 이런 특징을 더욱 잘 파악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 아동에게 가해자가 다가갔다. 이 가해자는 8세 여아 성폭행범과는 달리 친절했다. '모르는 사람'이었던 가해자가 '아는 사람' 또는 '좋은 사람'이 돼 아동의 신뢰를 이끌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후, 그는 이 어린이에게 '집에서 놀자'고 했고 결국 피해 아동은 가해자를 집으로 데려가게 된다.

우리 교육의 세 가지 맹점

물론 이러한 아동의 심리적 특성도 교육을 통해 보완·수정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고, 어른에 대한 막연한 신뢰를 갖는 아이들이 (아는 사람이든 낯선 사람이든) 내게 누가, 어떻게 하는 것이 나쁜 행동이고, 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필자는 그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아이들은 애정표현과 성폭력을 구분하는 교육을 못 받아 왔다. 가령 "어~우리 누구누구 고추 얼마나 컸나 보자"라고 말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어른 입장에서는 아이가 너무 예뻐 그런 것일 수 있다. 우리 정서 역시 이 정도는 애정 표현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동이 어느 순간 거부감이나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면 이는 아동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행위로 '성폭력'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의 개념이 없다 보니 어느 순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초중고는 일정 시간 성교육을 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의 교육시간과 횟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한번에 양성평등과 성폭력예방교육 등 두가지 이상의 주제를 교육해야 할 때도 있다. 이는 학교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성폭력예방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걸림돌이 된다.

둘째, (아이들은) 어른에게 복종하는 것이 좋다고 배우는 데 반해 어른의 잘못된 행동을 거부하는 것의 중요성은 배우지 못했다. 예를 들어, 지난 2월에 13세짜리 아들에게 차량털이를 시킨 아버지가 있었다. 아들은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고 했다.

물론 부모에게 대드는 아이를 만들라는 게 아니다. 여기서 필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아이들의 의견이 표출될 기회 자체도 거의 없고, 자신의 요구를 말하거나 항의를 하면 자칫 '말대답'하는 나쁜 어린이로 찍힐 수도 있는 게 우리네 교육의 현실이란 점이다.

셋째, 모든 어른이 나를 보호해 주는 것은 아님을 배우지 못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있고, 이것을 이용하는 게 아동 성폭행범의 특징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어른이 나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님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조금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나) 친부나 친족에 의해 성폭행 피해를 입었음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그들이 자신을 지켜줄 존재 또는 내가 의지할 존재라고 믿고 있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친부나 친족이라 해도 아이를 폭행하거나 성적 학대를 가한다면 이들은 더이상 신뢰할 수 없는 존재이다.

아동을 탓하지 말고, 구체적인 교육을 하라

이번 7세여아 성폭행 사건의 경우, 피해 아이에게 '모르는 사람을 (집으로) 왜 데려갔어!'라고 하거나 '왜 혼자 있었어!' 등 다양한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아동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소산일 뿐이며, 이 사건의 원인 또는 책임이 피해 아동에게 있다고 하는 2차 가해의 우려까지 발생시킬 수 있다. 우리는 결코 아동을 탓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란 뭔가를 어리숙하게 판단하기에 '어린이'이다. 또한 그러기에 아동 성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은 늘 구체적이어야 한다.

항상 구체적인 상황과 대상을 가정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줘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함께 연습해봐야 한다. 아이들은 그 상황을 모면하거나 부모님 내지 선생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 정확히 이해 못 했는데도 알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끝으로 반복적인 재확인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반복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린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라이프]하늘바람몰이(http://kkuks8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임정혁 기자는 아동 성폭력 예방전문강사입니다.



태그:#아동성폭력, #아동성폭력예방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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