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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7일 변웅전 의원이 대표발의한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은 국민건강 및 보건산업 증진에 이바지한다는 취지와는 달리 우회적인 의료민영화라는 비난을 사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그려본 것입니다. [편집자말]
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도 남자 몰라요. 오늘은 남녀 건강관리 비법을 탐구해보아요.

[男] 비정규직 남자편

남자는 집 근처 내과의원에서 상담 중이에요. 의사는 무뚝뚝한 얼굴로 지방간이 심하니 계속 과음을 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해줘요. 남자가 어느 정도냐고 묻자 의사는 남자가 '건강주의군'에 포함되었다고 말해줘요. 남자는 화들짝 놀라요. 젊은 나이에 죽기엔 억울해요. 남자가 걱정을 하자 의사는 조금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위로를 해요.

"간 질환은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질병입니다. 간(肝) 전문관리업체에 등록하시고 관리를 받으세요."

남자는 돈 들어갈 일부터 걱정이에요. 파견업체 직원인 남자는 정규직 동료들보다 월급을 반도 못 받고 있어요. 남자는 그냥 이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진단 받고 상담 받으면 안 되느냐고 물어요. 의사는 정색을 하며 이제 치료행위가 아닌 건강관리는 건강관리업체에서 받아야 한다고 말해요. 남자는 그제야 병원 내부에 걸려 있는 신문기사가 눈에 들어와요.

'건강관리서비스법안 통과… 이제 건강관리는 건강관리업체에서 받아야'

남자는 할 수 없이 의사에게 믿을 만한 업체를 추천해달라고 해요. 의사는 또 정색을 하고 자신이 특정업체를 소개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간호사에게 물어보라고 해요.

남자는 간호사가 '개인적으로' 소개해 준 업체에 찾아가요. '간 건강 토털 케어'라는 멋들어진 간판이 붙어 있어요. 등록비가 백만 원, 월 회비가 삼십만 원이래요. 남자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요. 도저히 남자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에요. 이를 눈치 챈 점장이 오늘 하루만 등록비 50% 할인이라고 좋은 정보를 주어요. 남자는 가입을 결심해요. 의사가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장가도 못 가보고 죽는다고 했어요. 남자는 의사가 써준 건강관리의뢰서를 내밀어요. 병원 이름을 확인한 점장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요.

간 전문업체에 다니면서 남자는 많은 사실을 알게 되어요. 점장의 말로는 남자가 40세 이전에 간암에 걸려 죽을 확률이 70%가 넘는다고 해요. 점장은 남자에게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해 주어요. 남자는 자신이 살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무언지 궁금해져요. 점장은 헛개나무 추출물과 결명자와 타우린과 우루소데옥시콜린산과 기타 신비로운 성분이 포함된 간 건강식품 '간 튼튼 해리포터 엑기스'를 추천해 주어요. 남자는 '간 튼튼 해리포터 엑기스'를 구입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점장은 건강식품을 판매하거나 홍보할 수 없다고 말해주어요. 하지만 정 구입하고 싶다면 판매업자를 소개해주겠다며 명함을 한 장 건네주어요.

지병이 있는 사람은 건강식품을 섭취할 때 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지병이 있는 사람은 건강식품을 섭취할 때 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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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간 건강 토털 케어'에 다니면서 이런 식으로 다양한 건강보조식품을 구입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간 튼튼 해리포터 엑기스' 한 포를 쪽쪽 빨아 마시고 점심에는 청계천 심층수로 만든 '간 보호 녹조 워터'를 마셔요. 자기 전에는 어뢰 알루미늄 성분이 들어간 무기질 종합비타민 '스모킹건 넘버원 추어블정'을 오독오독 씹어 먹어요.

남자는 이번 달 수입·지출을 머릿속으로 계산해보아요. 삼백만 원 적자예요. 이것저것 건강보조식품을 사들이다보니 카드 값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게다가 건강관리업체에서 때때로 요구하는 '특별관리비'도 만만치 않아요. 남자는 그래도 건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간 건강 토털 케어'에 다닌 지 육개월이 지났어요. 남자는 간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니까 건강해졌을 거라고 믿어요. 하지만 이게 웬걸. 병원에 가서 간 기능 검사를 했더니 간이 더 나빠졌다고 해요. 남자는 그동안 얼마나 정성껏 간을 보필했는지 하소연해요. 하지만 의사는 이상한 건강보조식품을 너무 많이 먹어서 간이 상했다고 도리어 화를 내요. 남자는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뭐가 문제인지 혼란스러워요.

남자는 정말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어요. 건강도 나빠진데다 그동안 건강관리비에 지출이 너무 심했어요. 카드 연체대금에 마이너스 통장까지 겹쳐 파산지경이에요. 남자가 돈 걱정을 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대부업체에서 전화를 했어요. 상담원은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 전세 보증금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준대요. 남자는 살인적인 이자율에 망설이지만 돈 나올 구멍이 없는 상황이라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기로 마음먹어요.

'간 건강 토털 케어'에 다닌 지 일 년이 지났어요. 이제 남자는 더 이상 '케어'를 받지 않아요. 건강보조식품도 먹지 않아요. 돈이 없기 때문이에요. 남자는 건강보조식품 대신 농약을 마시려고 해요. 농약을 마시려는 순간 갑자기 상조업체에서 전화가 와요. 상조업체 직원은 죽기 전에 주변 정리가 중요하다며 오늘 가입하면 장례비를 50% 할인해주겠다고 해요. 남자는 상조업체 직원에게 육두문자를 유언으로 남겨요.

이상 남자의 건강생활이었어요.

[女] 강남주부 여자편

여자는 강남의 건강관리서비스 '하이클래스 뷰티 케어'에 다녀요. 남자가 다니던 사이비 건강관리업체와는 차원이 달라요. 등록비만 오천만 원이 넘고 매달 기본 회비만 백만 원씩 내야해요. 하지만 여자는 2년 전에 돈 많은 신랑감을 잡았기 때문에 이 정도 지출은 감당할 수 있어요. 여자는 소중하니까요.

여자는 회원으로 등록할 때 약관을 꼼꼼하게 읽어보았어요. '하이클래스 뷰티 케어'는 혈압이나 혈당 같은 기본 건강관리는 물론이고 몸매와 피부를 관리하는 미용 서비스를 함께 제공해요. 약관에는 개인건강정보 제공에 동의하느냐는 문구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는데 여자는 별 생각 없이 허락을 했어요. 

여자는 대체적으로 건강한 편이지만 매일같이 나와서 향기로운 아로마 테라피를 받거나 주름 없애는 안티에이징 젤을 바르거나 강풍으로 지방을 분해하는 제트슬림을 받아요. 가끔 특별이용료를 내고 숙변제거를 하는데 여자는 유리관으로 시커먼 숙변이 꾸물꾸물 빠져나가는 걸 보며 즐거워해요. 여자의 장(腸)은 소중하니까요.

뷰티코디네이션과 학생들이 발맛사지 시연을 하고 있다.
▲ 발맛사지 광경. 뷰티코디네이션과 학생들이 발맛사지 시연을 하고 있다.
ⓒ 김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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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데 이달부터 알레르기 전문 치료를 시작했어요. 미국 유수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존스 홉킨스 대학 박사코스에 도전했던 유학파 의료전문가에게 삼십 분씩 타로카드 치료를 받아요. 유학파 의료전문가에 따르면 모든 알레르기는 환자의 불행한 과거와 심리상태에서 오는 거래요.

여자는 어느날 성형외과 코디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아요. 코디는 '하이클래스 뷰티 케어'의 회원 얼굴 정보를 분석한 결과 여자의 얼굴이 미인의 원형(原形)에서 65%이상 벗어난 상태라고 말해주어요. 여자는 무슨 소린지 몰라 어리둥절해요.

"통계적으로 미인의 원형에서 50% 이상 벗어난 얼굴은 결혼 5년 내에 부부관계가 소원해지고 10년 내에 이혼할 확률이 90% 이상입니다."

여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요. 그러고 보니 요즘 잠자리가 뜸해진 것 같아요. 코디는 턱을 조금 깎고 코를 살짝 높이면 미인의 원형에 30% 포인트 이상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해주어요. 여자는 수술을 결심해요. 남편의 사랑은 소중하니까요. 코디는 기뻐하며 '이쁜이 수술' 할인쿠폰을 서비스로 주겠다고 말해요.

여자는 얼굴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어요. 퇴근한 남편이 방에 들어오더니 쳐다보지도 않아요. 여자는 마음이 상하지만 참기로 해요. 붕대를 풀고 예뻐진 모습을 보면 남편의 사랑도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남편이 넥타이를 풀고 나서 대뜸 이혼을 하자고 말해요. 여자는 이혼이라는 말에 쇼크를 받아 벌떡 일어나요. '당신도 자연산만 찾는 촌스러운 남자였느냐'며 '연애시절 쿨했던 남편은 어디 갔느냐'고 대들어요. 그러자 남편이 결혼 전에 중절수술한 걸 왜 숨겼느냐고 물어요. 여자는 잠시 멍해져요.

다음날 여자는 '하이클래스 뷰티 케어'에서 정기적으로 산부인과 검사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요. 여자는 건강관리서비스업체가 개인정보를 유출하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여자는 '하이클래스 뷰티 케어'로 달려가 점장의 멱살을 잡아요. 점장은 여자가 개인정보제공에 동의했다는 약관을 보여주며 개인정보를 흥신소에 흘린 회사는 별개의 회사라고 설명해주요.

여자는 개인정보를 팔아먹는 악질적인 회사에 직접 찾아가서 따지려고 해요. 하지만 본사는 미국에 있고 한국지사는 독도에 있다는 말을 들어요. 여자는 독도로 가는 항공편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요.

이상 여자의 건강생활이었어요.


태그:#건강관리서비스법, #의료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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