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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5월말쯤이었다. 지방선거를 불과 2~3일 앞두고 저녁 먹으면서 들은 남편 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심상정씨가 유시민 후보와의 연대를 위해 후보에서 물러난다는 뉴스가 이슈였던 날이었다.

한껏 기분이 들떠 전한 내 말에 "발악을 하는 군!"이라는 남편 말이 의외였다. 일전에도  한명숙 후보와의 후보단일화를 생각지 않는 노회찬씨를 두고 내가 비판적인 투로 이야기하자 '왜 단일화해야 하는데? 각자의 노선이 있는데…'라고 응수하던 남편이었다.

생각이 많이 비슷하다 여기던 남편이 이렇게 나와 다른 면이 있었나란 생각이 들었고, 그 때문인지 저녁 먹는 내내 내 말투가 꽤 까칠했나보다.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부지불식간에 들린 "오마이뉴스 다니더니 짜증이 늘었네!"란 남편의 말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번에도 한 번 얘기하려고 했는데, 확실히 시각이 많이 비판적으로 변했어."

희년토지정의실천운동 공동대표인 김경호 들꽃향린교회 목사가 24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진보와 빈곤> 강독회에서 '성경의 토지 평등법'을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희년토지정의실천운동 공동대표인 김경호 들꽃향린교회 목사가 24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진보와 빈곤> 강독회에서 '성경의 토지 평등법'을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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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작년 노무현 강독회에 참여한 이후로, 10만인클럽 강연이나 몇 번의 기획 시리즈강의와 특별취재활동에도 참여하면서 난 <오마이뉴스>와 부쩍 친해졌다. 그러면서 나는 '이제야 객관적인 시민의 눈을 떠가고 있구나'라고 여기던 중이었다.

그런데 남편 말을 듣는 순간,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과 벽을 쌓고 자기 세계로만 빠져드는 모습이 바로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든 것이었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의 겉그림.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의 겉그림.
ⓒ 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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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시작된 한명숙 전 총리의 검찰조사부터 4대강 사업과 천안함 사건까지…. 뉴스 대부분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그나마 어떻게 소식을 전하나 하고 열심히 보았던 TV뉴스도 천안함 사건 보도 이후로는 시청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 서서히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때때로 감정실린 비평을 쏟아내는 내 모습이, 남편 눈에는 중도를 넘어 또 다른 한쪽으로 쏠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법도 했다.

마침 그때 나는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라는 책의 칼뱅과 카스텔리오의 이야기에 빠져 있던 중이었다. 일반적으로 종교개혁가로만 알고 있던 칼뱅이 실상은 엄청난 독재체제를 구축했었고, 그에 맞서 이성의 이름으로 도전한 것이 카스텔리오라는 신학자였다는 것. 그리고 그 독재체제가 구축되었던 곳이 스위스의 제네바였다는 사실. 그리고 현재의 다양성과 관용의 정신의 뿌리가 칼뱅과 죽음으로 맞섰던 카스텔리오에 기원하고 있다는 것들이 현재의 우리사회와 비교되며 무척 흥미로웠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보며 나의 일상적인 모습이 칼뱅의 일방주의와 겹치는 부분은 없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내 논리가 확실하다 해서 상대적으로 약한 아이들에게 내 의견을 강권한 경우는 없었는가? 내 취향과 다르다는 이유로 오락, 개그 프로그램을 폄하하지 않았는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볼륨을 줄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날 저녁 때처럼 관심 가는 사회적 이슈에 남편이 같은 의견이 아니라 할 때 얼마나 그것을 객관적으로 인정했던가? 다르게 생각하는 타당한 이유에 귀를 기울이려 했던가? 아니면 성급하게 그냥 배척했던가?

자기 주장이 적극적일수록, 더구나 글이나 언변이 뛰어난 능력자 일수록 칼뱅과 같은 위험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칼뱅 역시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독재적 권위를 꿈꾸진 않았다. 그는 종교개혁가로 역사에 우뚝 설 만큼 논리적 구성 능력이 탁월했다. 다만 그 뛰어남을 뒤돌아볼 겸손과 배려가 타고난 그의 성정에 없었던 점, 그리고 절대로 타협이 없었던 점, 그리고 스스로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하는 충고를 해 줄 가까운 이가 곁에 없었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내가 남편의 일갈을 새삼 고마워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나를 둘러싼 세태와 의견이 내 잣대와 다르다고 가까운 가족에게 나도 모르게 짜증과 비판을 일삼던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책을 읽으며 '다른 의견'에 대한 심층적 인식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좋은 저녁시간을 남편과의 언쟁으로 보낼 뻔 했다. 물론 정당한 비판과 지적은 필요하다. 그러나 혹시 나와 비슷한 주변지인의 반응을 경험 한 분들이라면, 좀 더 성숙한 깨어있는 시민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 혹시나 감정적으로 달리진 않았는지 또는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칼뱅의 모습은 없는지 다들 한 번씩 생각해 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다른의견을 가질권리>는 오마이북에서 펴낸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의 2번째 인물인 유시민씨가 지금 우리사회에 횡행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에 관련하여 추천한 책입니다.



태그:#다른의견을 말할권리, #칼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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