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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레를 벗고 운명을 넘어선 한 여인의 거대한 신화’를 보여주겠다고 표방하고 나선 MBC 드라마 <동이>.
 ‘굴레를 벗고 운명을 넘어선 한 여인의 거대한 신화’를 보여주겠다고 표방하고 나선 MBC 드라마 <동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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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방영된 MBC 드라마 <동이> 제22부에서는, 폐위에 이어 폐서인까지 당한 인현왕후(박하선 분)가 초라한 집에서 하얀 소복을 입고 텃밭을 관리하다가 동이(한효주 분)의 방문을 받는 장면이 나왔다. 드라마 속의 폐비 인현왕후는 마음을 완전히 비운 신선처럼 "내가 키운 나물로 밥이나 함께 먹고 가라"며 동이를 붙들었다.

최 숙빈·장 희빈·인현왕후 3인방의 숙종시대 여인천하를 다루고 있는 드라마 <동이>는, 위와 같이 인현왕후가 궐 밖으로 쫓겨남에 따라 앞으로는 최 숙빈(숙빈 최씨, '동이'는 실명 아님) 대 장 희빈의 대결구도를 본격적으로 그려나가게 될 것이다.

실제로 장 희빈 대 인현왕후 구도로 전개되던 숙종시대 여인천하에서는 왕후의 폐위를 계기로 최 숙빈이라는 제3의 다크호스가 전격 출현해 여인천하를 말끔히 정리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김만중이 <사씨남정기>에서 장 희빈과 인현왕후만으로 이야기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결코 최 숙빈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최 숙빈의 등장을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만중이 죽은 숙종 18년(1692)에 최 숙빈은 비로소 역사무대에 등장했다. 최 숙빈의 등장 이전에 <사씨남정기>는 이미 세상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김만중이 좀 더 오래 살았다면, 그는 자신의 소설을 2자 구도에서 3자 구도로 확 뜯어고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인천하에 뛰어들기 이전에 최 숙빈은 어떻게 살았을까?

숙종을 만나기까지 16년... 참 오래 견뎌냈네

최숙빈의 무덤인 소령원(昭寧園).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다.
 최숙빈의 무덤인 소령원(昭寧園).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발행 <숙빈최씨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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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 폐위 이전의 최 숙빈과 관련해, 사료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주요 정보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천민 출신의 최 숙빈이 5세 이전에 부모를 모두 잃고 나이 7세에 궁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최 숙빈이 어렸을 때에 가족이 모두 죽었다는 드라마 내용과 달리 오빠와 언니를 포함한 최 숙빈 삼남매가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궐에 들어간 최 숙빈이 침방나인을 거쳐 인현왕후의 시녀가 되었다가 왕후의 폐위를 계기로 침방으로 도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위의 프로필에서 알 수 있듯이, 인현왕후 폐위 이전의 최 숙빈은 오래도록 하급 궁녀 생활을 지냈다. 그는 궁녀 생활의 대부분을 침방에서 바느질하는 데에 바쳤다. 궁녀 시절에 관한 자료가 이처럼 일천하기 때문에, 왕후 폐위 이전의 최 숙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았는지를 정확히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인현왕후 폐위 이후의 최 숙빈의 행적을 통해 그 이전의 최 숙빈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대략적이나마 추론할 수 있다.

가난한 고아 청년이 나이 서른에 야간대학에 입학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우리는 그가 그 이전에 힘겨운 고학 생활을 했으리라고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피겨스케이팅의 불모지에서 태어난 어느 소녀가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우리는 그가 그 이전에 피나는 훈련생활을 했으리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마찬가지다. 최 숙빈의 삶에서도 그와 유사한 추론을 가능케 하는 대목들이 있다. 어떤 것들일까?

숙종 18년(1692)의 어느 날 한밤중에, 스물세 살의 최 숙빈은 완전히 깜깜해진 궁궐 안에서 홀로 등불을 환하게 밝힌 채 폐비 인현왕후의 생일을 혼자 기념하다가, 때마침 궐내를 배회하던 숙종의 눈에 띄어 그와 우연히 조우하게 된다. 숙종 2년(1676)에 입궁했으므로, 최 숙빈은 무려 16년 만에 숙종과 대면한 셈이다. 

"(이 한밤중에) 너 지금 뭐하는 거냐?"라는 왕의 질문에 대해, 최숙빈은 당돌하게도 "중전(폐비)의 탄신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라고 답변하여 숙종의 호기심과 관심을 끄는 데에 성공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죄인 신분인 폐비의 생일을 기념하는 이 같은 행동은 엄중한 처벌을 초래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폐비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서인 당파의 상소가 숙종의 심경을 어지럽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집권당인 남인 당파에 대한 숙종의 신뢰도 점차 약해지고 있었던지라, 서인 출신의 폐비를 옹호하는 최 숙빈의 행동은 왕의 노여움을 초래하기는커녕 도리어 그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정치적 변화와 국왕의 심경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없었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입궁 16년 동안 동이는 무얼 보고 배웠을까

그뿐 아니라, 훗날 최 숙빈은 아무 물증도 없이 거듭거듭 숙종에게 장 희빈의 허물을 보고하여 희빈을 중전 자리에서 끌어내린 데에 이어 죽음으로까지 몰아넣는 데에 성공했다. 이런 것들은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남인 당파의 힘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을 때에 '때마침' 숙종에게 장 희빈의 허물을 보고한 일이나 서인 당파의 힘에 편승해서 장 희빈을 공격하면서도 결코 당파 색깔을 띠지 않음으로써 끝까지 숙종의 신뢰를 받은 일 등을 보면, 최 숙빈이 제갈공명 못지않은 '고도의 전략가'였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게 된다.

후궁이 된 뒤로 오랫동안의 훈련을 거쳐 정치감각을 익혔다면 모를까, 우연히 왕을 만난 그 순간부터 노련한 정치감각을 발휘하기 시작한 최 숙빈. 그런 최 숙빈의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는 여인천하에 뛰어들기 이전부터 이 여인이 이미 조정의 정치구도와 숙종의 통치스타일을 세밀히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남한테 정치를 배웠을 가능성이 별로 없는 스물세 살의 하급 궁녀가 역사무대에 등장하자마자 고도의 정치적 센스를 발휘해 나갔다면, 그가 그 이전부터 이미 그런 쪽으로 자기 자신을 훈련시켰을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봉제공장'(침방)에서 '기숙사'로 돌아온 뒤에 열심히 서책을 뒤적이는 최 숙빈의 모습. 나이 많은 상궁들 간의 상호관계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그 속에서 궐내 인간관계를 배우는 최 숙빈의 모습. 장희빈과 인현왕후에 관한 궁녀들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면서 두 여인의 스타일을 파악하는 한편, 이 여인들을 다루는 숙종의 행동패턴을 나름대로 궁리하는 최 숙빈의 모습.

여인천하에 뛰어들기 이전의 최 숙빈은 아마 그런 모습을 띠지 않았을까. 구체적인 양상이야 물론 확인할 수 없지만, 우리는 역사에 등장하기 이전의 최 숙빈이 어떤 형태로든 남모르게 열심히 정치적 능력을 계발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드라마 <동이>가 너무 쉽고 밋밋한 이유

소령원을 그린 소령원도(昭寧園圖). 1753년경 제작. 현재 보물 제1535호.
 소령원을 그린 소령원도(昭寧園圖). 1753년경 제작. 현재 보물 제1535호.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발행 <숙빈최씨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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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들을 생각하노라면, 그간 드라마 <동이>에서 보여준 최 숙빈의 성공 과정은 '너무 쉬운 것'이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물론 드라마 속의 동이도 가혹한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실제 최 숙빈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숙종·장 희빈·인현왕후와의 만남이 '너무도 쉽고 빨리' 이루어지는 바람에, 또 드라마 속 동이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무도 쉽고 빨리' 능력을 인정받는 바람에, 시청자들로서는 실제의 최 숙빈이 16년간 남모르게 자신을 연마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가장 결정적이고 드라마틱해야 할 최 숙빈과 숙종의 만남이 너무 싱겁게 일찍 이루어진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 초기인 제6부에서 최 숙빈과 숙종의 만남이 어느 헛간에서 아주 수월하게 이루어지더니, 그 후로는 한밤중에 동이가 바람을 쐬러 나가면 어디선가 숙종이 나타나서 둘 만의 데이트가 이루어지곤 했다. 그뿐 아니라, 드라마 속의 동이는 벌써부터 국정의 중심에 서 있는 VIP가 되어 버렸다.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는 숙종을 만나기 이전의 16년 동안 최숙빈의 삶에 존재했던 기나긴 여정을 깡그리 '말살'하는 것이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숙종을 만나기 이전 최 숙빈의 16년은 드라마 <동이> 속에서 '잃어버린 16년'이 되고 말았다. 

대부분의 성공신화는 남들이 다 자는 동안에 조용하고 묵묵하게 이루어진다. 그런 점을 생각할 때, 드라마 <동이>가 보여주는 최 숙빈의 성공방식은 시청자들의 인생에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요란하게 세상의 주목을 받으면서 성공의 계단을 밟아나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최 숙빈이 실제로 등장한 인현왕후 폐위 뒤의 여인천하를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드라마 <동이>의 이후 방영분에서, '굴레를 벗고 운명을 넘어선 한 여인의 거대한 신화'를 보여주겠다는 드라마 <동이>의 기획의도가 보다 더 충실히 반영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태그:#동이, #최숙빈, #숙빈 최씨, #여인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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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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