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보강 : 4일 오전 9시 50분]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동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 위해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호국추모실 복도 양 옆으로는 6·25 전쟁영웅 21명의 흉상이 놓여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동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 위해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호국추모실 복도 양 옆으로는 6·25 전쟁영웅 21명의 흉상이 놓여있다.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보수세력은 '안보불감증이 극에 달했다"고 불평을 토하겠지만, 'MB발 북풍'은 역풍으로 끝났다.

정부는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를 지난달 20일에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인 5월 23일을 3일 앞둔 시점이었다. 다음 날인 24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했다. 그는 대북교역 중단, 대북심리전 재개 등의 대북조치를 선언했고, 곧바로 국방·외교·통일 장관이 합동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뒷받침하고 나섰다.

대국민담화 장소를 전쟁기념관으로 한 것은 전쟁불사 의지를 '과시'한 것이라는 점에서 '북풍 드라이브'의 정점이었다.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를 지방선거 이전에 발표한 것 자체가 이미 천안함 사건을 선거쟁점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었다.

이 대통령이 깔아준 판을 한나라당은 최대한 활용했다. 정몽준 대표는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 발표 내용에 대한 의혹 제기를 "북한에서 발표하는 것과 비슷한 얘기들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김문수 후보도 경기지사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유시민 후보를 향해 "김정일과 유시민만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를 안 믿는다"고 맹공했다. 이것이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기조였고, 공공연히 전쟁을 언급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았던 북풍

역대 선거의 단골손님이었던 '북풍'(북한 변수)은 보수세력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

1967년 5월 대선을 앞두고 무장간첩 사건을 포함해 간첩사건 5건이 잇달아 발표됐다. 박정희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혈투를 벌였던 1971년 대선 때는 선거 1주일을 앞두고 보안사령부가 서준식씨 등이 포함된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을 터뜨렸다.

'KAL기 폭파사건'은 그 정점이었다. 1987년 13대 대선을 한달여 앞두고 'KAL 858기 폭파사건'이 터졌고, 투표일 전날인 12월 15일 폭파범 김현희가 서울로 압송되었다. 이는 양김(김영삼-김대중) 분열 속에 노태우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정부와 안기부는 이 사건을 노 후보의 당선에 이용하기 위한  '무지개 공작'을 범정부적으로 벌였다.

1992년에는 대선 선거일을 두 달 앞두고 중부지역당 사건이 터졌고, 1996년 4월 15대 총선때는 '판문점 무력시위 사건'이 일어나 나중에 '총풍사건'으로 연결됐다.

그러나 북풍이 거듭될수록 대처 방식도 진화했고 전반적으로 '약발'은 떨어졌다. 1997년 12월 11일 재미 사업가 윤홍준이 중국 베이징에서 "김대중 후보가 북한의 김정일에게서 자금을 받았다"고 기자회견을 했으나, 당시 조세형 국민회의 총재대행은 대북한 특별경고 성명으로 맞섰다. 북풍에 '면역'된 국민은 집권여당의 '용공' 낙인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을 선택했다.

2000년 4·13 총선 때는 김대중 정부가 투표를 사흘 앞두고 전격적으로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 사실을 발표했으나,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북풍'이었으나 선거에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는 점에서, 북풍이 더 이상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리고 천안함 사건이 터졌다. 사건 초기 중심을 잡던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가 가까워지자 노골적으로 선거에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방선거의 핵심인 서울과 경기에서 야당 후보들의 추격세가 꺾였고, 야권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들과의 지지율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중앙일보>, SBS, 동아시아연구원의 지난 4월 24일~26일 조사(전국 5개 지역 2천288명을 대상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4.1%가 '천안함 사태가 이번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대답한 것에서 보이듯, 사건이 최대 선거이슈로 등장했다.

'한반도리스크' 10년만에 재등장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원달러 환율이 어제보다 3원30전 오른 1253원30전에 거래를 마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5거래일 연속 상승을 기록했고 주가는 반등에 성공해 21.29포인트 오른 1582.12를 기록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원달러 환율이 어제보다 3원30전 오른 1253원30전에 거래를 마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5거래일 연속 상승을 기록했고 주가는 반등에 성공해 21.29포인트 오른 1582.12를 기록했다.
ⓒ 뉴시스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달 26일 외국인들의 투매로 주식이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한 것은 정부로서는 뜻밖의 충격이었다. 단 하루만에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29조 원이 빠져나갔다. 북풍과 함께 동반퇴진했다고 인식됐던 '한반도리스크'가 10년만에 재등장한 것이다. 직접 주식투자자 400만, 주식펀드 가입자가 1000만 명 등 사실상 전 국민이 주식시장을 주시하는 상황은 이전 북풍 때는 없는 일이었다. 민주당 등 야당과 시민사회는 '전쟁이냐, 평화냐'는 구도를 만들었다. 

2일 투표함이 열리면서 이 역풍이 사실은 태풍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북한과 접경지역인 인천, 강원, 경기지역의 선거결과가 완전히 예상을 벗어났다.

한나라당에서 "천안함 사고가 인천 앞바다서 일어나 다행"(이윤성 의원)이라는 말이 나왔던 바로 그 인천에서 송영길 민주당 후보가 안상수 한나라당 후보를 8%p 차이로 이겼다. 이뿐만 아니라 인천의 10개 기초단체장 중에 민주당이 6곳에서 승리하고,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민주노동당의 배진교 후보와 조택상 후보가 각각 남동구청장과 동구청장에 당선되는 등 야권이 인천을 휩쓸었다. 배 후보와 조 후보는 진보정당이 배출한 수도권의 첫 기초단체장이기도 하다.

보수의 또 다른 아성인 강원도도 마찬가지다. 초기에는 이계진 후보에게 20%p 이상 뒤져있던 민주당 이광재 후보가 최종적으로 8.6%p 차이로 이 후보를 이겼다. 진보개혁 진영이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천안함 북풍'에 가장 적극적으로 맞섰던 유시민 후보가 김문수 후보에게 4.4%p 차이로 패배한 것도 눈길을 끈다. 선거전에는 대체적으로 10%p 이상의 차이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으나 그 차이가 크게 줄었다.

한나라당의 텃밭인 경남지사 선거에서 김두관 후보가 당선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충남지사에 당선된 안희정 후보측 관계자는 "충청지역은 세종시 문제가 워낙 컸기 때문에 천안함 사건이 별 이슈가 되지 못했다"면서 "그런데 시종 접전이었던 경남은 보통은 천안함 사건 같은 게 터지면 바로 한나라당 쪽으로 기울었어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교안보팀 교체 포함해 대북정책 전반 재검토해야"

천안함 침몰원인을 조사해온 민.군 합동조사단이 지난달 20일 오전 10시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조사결과를 공식 발표하는 가운데 과학수사 분과장인 윤종성 준장이 결정적 증거물인 어뢰 추진체 실물을 설명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원인을 조사해온 민.군 합동조사단이 지난달 20일 오전 10시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조사결과를 공식 발표하는 가운데 과학수사 분과장인 윤종성 준장이 결정적 증거물인 어뢰 추진체 실물을 설명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북풍을 앞세웠던 이명박 정부는 지방선거 완패에 따라 대북정책를 바꾸라는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리스크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재확인됐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악화된 남북관계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이번 선거는 사실 북풍 밖에 없었고, 이는 이명박 정부가 '전쟁의 공포'라는 한국 사람들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라며 "정부가 북풍이라는 전 근대적인 수단을 동원했음에도 국민들이 합리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이어 "국민들이 정부에 대해 국정 운영의 기조 자체를 바꾸라고 요구한 것이며 대북정책도 마찬가지"라면서 "외교안보팀의 교체를 포함해 대북정책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신종대 교수는 "권위주의 정권들도 KAL기 사건 등에 대응할 때 북한을 비난하고 남한 내부를 결속하는 수준이었지 이번처럼 '전쟁불사'까지 언급하지는 않았다" 면서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직접 당사자가 될 수 있는 20, 30대 그리고 이들의 부모세대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번 선거에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북풍만 놓고 보면 역풍이 불었다고 본다"면서 "통제수준에 있는 북풍은 (주체에게) 훈풍이 될 수 있지만, 그 선을 넘어서면 역효과가 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휘두른 북풍이라는 양날의 칼에 베인 셈이다. 이번 선거는 북풍이 더 이상 보수세력에게 '전가의 보도'가 될 수 없는, 낡은 무기라는 점을 입증했다.


태그:#천안함, #이명박, #북풍, #송영길, #이광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