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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엔 홀로 산책을 한다. 인근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도 구경하고, 토끼가 얼마나 자랐는지도 보고, 예쁜 꽃향기도 맡으며 잠시나마 행복감에 빠진다.

 

며칠 전이다. 여느 때처럼 길을 걷던 중 어르신 두 분과 마주쳤다. 백발의 할아버지는 손수레를 끌고 할머니는 뒤에서 밀고 계셨다. 손수레 안에는 아주 오래된 저울이 실려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30년이 넘은 저울이었다.

 

두 분의 뒷모습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으려고 구도를 잡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손수레를 면사무소 앞에 내려놓고 가신다. 부부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할머니가 힘겨워하며 손수레를 끌고 가시는 걸 길을 지나던 할아버지가 도와주신 것이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할머니의 손수레를 면사무소 주차장까지 끌고 가서 검사장 옆에 놓아두었다.

 

그날은 우리 동네 면사무소에서 '3톤 미만 계량기 정기검사'가 있는 날이었다. 검사 대상은 식육점이나 상가, 떡 방앗간, 정미소 등에서 사용하는 저울이다.

 

계량기검사는 2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데 미 검사나 불합격판정 받은 저울을 사용하다 적발되면 계량에 관한 법률 제51조의 규정에 의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오후 1시부터 검사가 시작되는데 할머니는 30분이나 일찍 오셨다. 왜 이렇게 빨리 오셨느냐고 여쭸더니 "내가 1등할라고 빨리 왔지"하며 웃으셨다.

 

때가 되어 할머니의 저울검사가 끝나니 남자들이 손수레에 저울을 실어 넘어지지 않도록 밧줄로 묶어주었다.

 

할머니는 인근 마을에서 오셨다. 내가 손수레를 집까지 끌어주겠다고 하니 뒤에서 밀어주신다. 혼자 끌 수 있으니 앞서서 길을 알려달라고 했다. 뒤에서 보니 할머니가 다리를 약간 저신다.

 

"할머니, 다리도 불편하신데 어떻게 저렇게 무거운 저울을 혼자 갖고 오셨어요?"

"젊은 사람들은 다들 일하러 갔다 아이가. 우리 아들이 멀리서 온다는 걸 됐다고 했다. 뭐 이까짓 거 가지고 회사 빼고 오느냐고…."

 

"마을에도 젊은 사람 없어요?"

"지금 한창 농사철 아이가. 다들 못자리한다고 바빠서 논에 나가고 없다."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서 복대도 하고 계신다고 했다. 마음이 아팠다. 내리막길을 걸을 땐 저울의 무게 때문에 손수레의 속도가 절로 빨라지니 팔에 힘을 꽉 주어야했다. 또 오르막길에 다다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의 집 앞에 손수레를 내려놓고 근무처로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이면 계량기 검사를 바쁜 농사철에 해야 하는지…. 다음부터는 농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때'를 잘 정했으면 한다.  


태그:#계량기 정기검사 , #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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