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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24일 오전10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천안함 관련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오전10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천안함 관련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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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180도 바뀌었다. 없다던 물기둥이 갑작스레 솟아났으며, 역시 없다던 북한군 특이동향이 어디선가에서 포착되었다.

사건 발생 초기만 해도 한미 군사-정보 책임자는 "북한군에 의한 어떤 특이동향도 탐지하지 못했다"(3월 28일,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거나 "구체적으로 체크한 바로는 (북한이 공격했다는) 특이동향이 없었다"(4월 6일 원세훈 국정원장)고 했다. 그런데 없었던 특이동향이 한 달여 만에 어떻게 포착된 것인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

생존병사 기자회견 때만 해도 버블제트형 폭발일 경우 100m까지 치솟는다는 물기둥을 목격한 초병도, 물벼락을 뒤집어쓴 병사도 없었다. 그런데 20일 민군 합조단의 천안함 사건 조사발표에서는 없다던 물기둥이 갑자기 생겨났으며 물방울이 튀었다는 사병도 나타났다.

'조중동' 지면에서만 솔솔 연기를 피우던 '연기 나는 총'과 '1번' 어뢰

합조단 발표 전에 '조중동'의 지면에서만 솔솔 연기를 피우던 '연기 나는 총'(smoking gun), 즉 '결정적 물증'도 이날 제시되었다. 마치 대간첩작전의 노획장비 전시를 연상케 하는 이 '결정적 물증'에는 공교롭게도 한나라당 선거 기호(1번)를 떠올리게 하는, '1번'이라는 파란색 아라비아 숫자와 한글이 적혀 있었다.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와 관련해 민.군 합동조사단이 발표를 하는 가운데 인양된 어뢰에 '1번'이라고 적혀 있다.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와 관련해 민.군 합동조사단이 발표를 하는 가운데 인양된 어뢰에 '1번'이라고 적혀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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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m까지 치솟은 33층 높이의 고층 빌딩만한 물기둥에 비하면 한 사병의 얼굴에 튄 물방울은 너무 '약소'하고, 연어급이라는 '듣보잡'의 130t급 소형 잠수정이 무게 1.7t의 중어뢰를 발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발표 닷새 전에 '천운'으로 건져 올린 '결정적 물증'은 너무나 선명하고 친절하지만, 그래도 믿기로 하자. 그리고 사실이라면 북한은 사죄해야 마땅하다.

사실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론은 누구나 예상했던 바이다. 정부당국이 북한이라는 용의자의 피의사실을 한 달 넘게 공표해 이미 국민의 머릿속에는 '북한=범인'으로 기억된 지금, 북한을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그러나 모든 사건에는 원인(原因)과 결과(結果)가 있기 마련이다. 인과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또 대개의 모든 원인(原因)에는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이 있다.

천안함 사건의 '근인'은 지난해 11월 한국 해군이 북한군을 퇴패시킨 '대청해전'이다. 지난 10년 동안 서해 NLL(북방한계선)에서 일어난 1, 2차 '연평해전'의 교전 양상을 보면, 대청해전에서 패한 북한은 충분히 복수의 칼을 갈아왔을 법하다. 실제로 북한 군부는 지난 1월부터 공공연하게 '보복성전'을 다짐해왔다. 그런 점에서 천안함 사건은 대청해전에서 대패한 북한의 '복수혈전'이다. 보복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군이 정보-경계-작전에 실패한 것은 군통수권자의 직무유기이자 안보무능을 드러낸 것이다.

천안함 사건의 원인(遠因)은 이명박 정부가 집권 이후 기존의 남북관계를 파탄내고 남북 대결상황을 고조시키면서 발생한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정부가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퍼주기'로 폄하하고, 남북관계의 이정표가 된 6.15공동선언과 10.3선언을 서해 바다에 수장시켜 놓고선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며 줄곧 대북강경책을 고수해 남북관계를 파탄내지 않았어도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런 의문은 천안함 침몰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의 과학적-논리적 귀결만큼이나 합리적 의심이다.

문제는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 발표 이후의 '냉전 회귀'

문제는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 발표 이후다. 정보-경계-작전의 실패로 46명의 생때같은 젊은 병사들을 수장시킨 군지휘부와 안보무능을 책임져야 할 정권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오히려 내부의 심판의 화살을 '외부의 적'으로 돌리기 위해 한반도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 이미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 교역-교류의 전면 중단과 군사적 보복응징이 공공연하게 검토된다. 전방의 확성기 방송을 다시 틀어놓은 것 같은 이런 현상은 '냉전 회귀'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이를테면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서거 1주년 전야인 22일 밤에 공영방송은 '천안함 사건발표 앞으로의 과제는?'이라는 주제로 특별기획 프로그램을 긴급 편성해 전문가 토론회를 방영했다. 그런데 국정원 유관 국책연구기관 책임자,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 연구원, 전 해군 작전사령관 등 토론자가 모두 보수우익 일색이다.

현인택 통일부장관,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2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천안함 사건 관련 합동기자회견을 열고, 유엔 안보리 회부·북한 선박의 남측해역 운항 전면불허·개성공단과 금강산지구를 제외한 남측인력 방북불허·남북교역중단·한미연합잠수함 훈련·심리전 재개 등의 대북 강경 조치를 24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현인택 통일부장관,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2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천안함 사건 관련 합동기자회견을 열고, 유엔 안보리 회부·북한 선박의 남측해역 운항 전면불허·개성공단과 금강산지구를 제외한 남측인력 방북불허·남북교역중단·한미연합잠수함 훈련·심리전 재개 등의 대북 강경 조치를 24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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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외교-안보라는 분야만 다를 뿐, 보수우익 일색의 논객과 학자들에게서 다른 목소리가 나올 리 없다. 이들은 한결같이 대북 경제제재와 무력시위 같은 군사적 압박은 물론, 북한 잠수함 기지에 대한 미사일 공격 같은 군사적 응징수단을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군사적 옵션의 정당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직 의지와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공공재인 전파를 이용해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서 이런 일방적인 여론몰이가 버젓이 이뤄진다.

일요일 아침(23일자)에 배달된 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은 '천안함 전(前)과 후(後), 대한민국은 다르다'였다. 이 신문은 '9.11 테러 전과 후'로 나뉜 미국의 안보환경에 비유한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천안함 사태라는 엄중한 사건이 나기 이전과 이후,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은 다르다는 기조가 바탕에 깔려 있다"고 월요일에 발표될 대통령 담화의 내용을 전했다. 4면에서는 전-현직 함장과 전단장 4인의 견해를 담아 "북 잠수함 길목 지키다 쫓아가 때려라"라는 제목으로 군사적 응징을 권고했다.

적어도 이건 아니다. 9.11 테러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집단적 자살특공대의 소행이다. 천안함 사건이 <조선>이 보도한 것처럼 북한의 '인간어뢰'에 의한 것이라면 혹시 몰라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한 전대미문의 9.11 동시다발 테러는 다르다.

전대미문의 9.11 테러와 치욕스런 패배인 천안함 사건은 다르다

천안함 사건은 차라리 지난 1987년 KAL 858기 폭파 사건과 닮아 보인다. 소행의 주체와 그 사건의 양상과 영향 등이 그렇다.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론, 북한의 군사모험주의와 테러가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열기와 희망에 찬물을 끼얹은 점 등이 그렇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과 KAL기 폭파 사건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초계함(哨戒艦)은 대잠수함전과 경계 임무활동이 목적인 배이다. 특히 천안함 같은 포항급 후기형 초계함은 소나(음향탐지기), 어뢰, 폭뢰가 탑재된 대잠 공격형이다. 그런데 대잠전과 경계활동이 주임무인 초계함이 회피 기동 한 번 못해본 채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이 쏜 어뢰에 맞아 영문도 모르고서 당했다는 것은 세계 해전사에서 보기 드물게 치욕스런 패배를 당한 것이다.

20일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국방부는 19일 오후 3시 10분경 평택2함대 사령부에서 내외신기자들을 대상으로 인양된 천안함을 30분동안 공개했다. 사진은 민관조사단 박정수 해군 준장.
 20일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국방부는 19일 오후 3시 10분경 평택2함대 사령부에서 내외신기자들을 대상으로 인양된 천안함을 30분동안 공개했다. 사진은 민관조사단 박정수 해군 준장.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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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정부와 군은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마치 개선장군처럼 당당하다. 정부와 군은 감사원 감사결과 때까지는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9.11 테러 때처럼 '테러와의 전쟁'을 주문하고, 이 정부는 KAL기 폭파 때처럼 국민의 비극을 정치와 선거에 활용할 조짐이다.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띤 6.2동시지방선거를 '안보선거'로 이끌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정황증거는 풍부하다.

이를테면 '결정적 물증'이 나온 것은 조사 결과 발표 닷새 전인 5월 15일이다. 이번 조사 발표에서도 확인되었지만 폭발 시뮬레이션은 결정적 물증이 수거되기 전에 이뤄진 것이다. 이것이 '결정적인 물증'이라면 면밀한 과학적 분석 등을 통해 다른 증거들과 정밀한 연계 조사가 필요했지만, 군은 시뮬레이션을 늦추지도, 발표일정을 재조정하지도 않았다.

또한 군은 3~5m 근접거리에서 어뢰의 직접적 타격을 받아 파공과 화약 흔적 같은 '스모킹 건'(결정적 물증)을 무더기로 발견할 수 있는 가스터빈실을 진작 찾아 놓고서도 이를 조사발표 하루 전에 인양했다. 당연히 가스터빈실은 조사 결과에 포함되지 않았다. 조사단은 20일 조사 결과 발표에서 "가스터빈실을 조사 결과에 포함시켜야 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까지 조사만으로 충분히 사고 원인을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천안함 선거 활용은 1987년 대선 KAL기 '무지개 공작'과 닮은꼴

이미 정부와 군은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6.2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0일에 민군합조단의 발표를 맞춤으로써 4대강과 무상급식 같은 선거 쟁점과 이슈를 잠재워 버렸다. 24일에는 북한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담은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외교-통일-국방장관의 합동대응책 발표라는 '쌍끌이 회견'이 안보 이슈를 확대 재생산했다. 결국 천안함과 관련된 모든 일정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해진 결론과 지방선거라는 시계에 맞춘 흔적이 역력하다.

대통령 선거일 하루 전인 1987년 12월 15일 김포공항으로 압송되던 당시의 김현희.
 대통령 선거일 하루 전인 1987년 12월 15일 김포공항으로 압송되던 당시의 김현희.
이와 같은 일련의 행위는 1987년 대통령 선거 직전인 11월 29일에 발생한 KAL 858기 폭파 사건을 선거에 활용한 전두환 정권을 떠올리게 한다. KAL 858기 폭파 사건은 1988년 1월15일 국가안전기획부의 수사 결과 발표 직후부터 안기부의 '기획 조작' 또는 '사전 인지' 의혹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지속되어 왔다. 이에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는 지난 2005년부터 조사를 벌여 2007년 10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진실위는 이 사건의 실체가 북한에 의해 자행된 사건이며 안기부의 '기획 조작'과 '사전 인지' 의혹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단서가 전혀 없는 점으로 보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진실위는 아울러 당시 정부와 안기부가 집권당 대선후보(노태우)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정치공작(무지개 공작)을 범정부적으로 시행했으며, 전국적인 '북괴 만행 규탄' 분위기 조성을 위해 내무부 등 10개 기관이 합동으로 '태스크 포스(Task Force)'를 운영하는 등 범정부 차원에서 KAL기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테면 안기부의 '무지개 공작' 문건과 '북괴 만행 규탄' 행사계획을 보면 ▲야당 후보의 안보 위해(危害) 발언의 허구성을 입증하는 동시에 ▲대선 막바지 과열된 선거 분위기를 냉각, 야당의 바람전략을 선제공격하여 대선에 유리한 국면 조장 ▲범인(김현희) 인도 등으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된 시점부터 집회 개시 같은 표현이 눈길을 끈다. 이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보여준 유시민 경기지사 후보에 대한 친북 공세와 천안함 사건을 이용한 신문광고, 보수우익 단체들의 규탄집회 등과 놀랍게도 일치한다.

방정맞은 말이 씨가 되어 '어뢰'로 돌아온 것은 아닐까?

안기부는 1987년 당시 KAL 858기 폭파 사건을 "대선사업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하는 데 활용하기 위한 '무지개 공작'을 수행했다.
▲ '무지개 공작' 문건 안기부는 1987년 당시 KAL 858기 폭파 사건을 "대선사업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하는 데 활용하기 위한 '무지개 공작'을 수행했다.
진실위는 이런 조사결과를 토대로 정부와 국정원에 이렇게 조언했다.

"'KAL 858기 폭파 사건'처럼 실체가 명백한 사건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경우 오히려 그 진정성이 훼손되고 사건의 실체에까지 불필요한 오해와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뼈아픈 교훈으로 새기고 다시는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어떠한 활동도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반성과 각오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이 정권은 "지난 정부의 대북 '퍼주기'가 어뢰로 돌아왔다"는 단세포적 구호를 되뇌면서 천안함 사건을 선거에 활용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 그런 식의 단세포적 접근이라면 천안함 사태에 대한 이런 원인 진단도 가능하지 않을까?

MB정부가 정권 인수단계부터 국민에게 영어 조기학습과 원어민 발음을 강조하며 '어뢴지'(오렌지) 노래를 부르고, 대북압박정책을 구사하면서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며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기만을 기다리더니, 이 방정맞은 말이 씨가 되어 '어뢰'로 돌아왔다는.


태그:#천안함, #KAL기 폭파, #전두환, #김현희, #무지개 공작, #금년안에 박근혜 의원님과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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