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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겨울, 몹시 추웠던 어느 날로 기억됩니다. 제가 노동운동으로 두 번째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 구로공단의 노동인권회관서 일할 때였지요. 진보정당인 민중당의 노동위원장을 하고 있던 김문수형이 먼저 밥을 먹자고 연락이 왔기에 나간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형은 너무나 놀라운, 뜻밖의 말을 하더군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밖에서 싸워서 이룬 게 뭐가 있느냐? 권력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저는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투쟁으로 얻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전제부터가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유월항쟁으로 민주화의 대약진을 이뤘고 87년 대파업으로 노동자의 권리도 급격히 신장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호랑이굴에 들어가자는 말은 곧 '보수 세력에 붙자'는 충격적인 제안이었습니다. 민중당의 정치실험이 실패한 데 대한 한탄까지는 이해되었지만 현직 민중당 노동위원장이 공공연히 집권여당에 함께 가자고 제안하다니 기가 막히더군요.

 

"형은 그럼 다수 대중이 민주주의를 누리고 복지를 누리게 되더라도 자기 자신이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건가요?"

 

대충 그런 항변을 한 듯합니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 마구 싫은 소리를 퍼붓다가 밥도 먹다 말고 추운 거리로 나와 버린 기억이 납니다.

 

김문수의 민자당 입당, 전향이 아니라 '배신'

 

얼마 후 노동인권회관이 운영난으로 문을 닫게 되었을 때, 이사들 사이에 구로공단 사무실은 폐쇄하되 김문수씨에게 명목상의 소장을 맡기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그때만 해도 형이 마음 고쳐먹고 다시 노동운동을 하려는가 보다 생각하며 찬성했지요. 그런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당시 정부여당이던 민자당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노동인권회관 소장이라는 직함을 단 채로.

 

사람들은 놀라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했지만 이미 호랑이굴에 들어가겠다는 의향을 들었던 저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전향했다고 비판했지만, 나는 당신을 제대로 된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배신이란 말은 맞아도 전향이란 표현은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노동인권회관 소장이라는 직함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궁금할 따름이었습니다.

 

일단 호랑이 굴에 들어간 당신은 너무나 잘 했습니다. 쟁쟁한 호랑이들을 다 제치고 3선 의원에 도지사 자리까지 차지했습니다. 당신의 말대로 이제 호랑이들을 몽땅 때려잡을 때가 온 걸까요?

 

개인적으로 형은 제게 고마운 사람입니다. 노동운동을 할 때 대학서점을 통해 유인물을 만드는 등 도움을 받기도 했거니와, 제가 공장에 다니며 쓴 글을 높이 평가해 작가로 등단하게 만들어준 은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호랑이 잡으러 간 당신에 대해 가끔씩 들려오는 보도들은 참으로 복잡한 소회를 불러일으킵니다.

 

당신은 전면 무상급식을 '북한식 사회주의'라고 비난합니다. 촛불집회가 열리자 '누가 미국산 소고기 먹고 배탈 난 사람 있느냐, 왜들 저러냐?'고 냉소합니다. 광화문에 이승만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쌍용차 농성을 폭력으로 진압한 경찰관들을 표창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하는 단체 뉴라이트가 지지하는 대표적인 정치인입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을 거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적도 있습니다. 4대강 죽이기 사업에 대해서도 적극 찬성합니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구요? 호랑이를 잡기 위해 너무나 비상식적인 행동과 주장을 해대다니, 정말 놀라운 위장술이라고 말입니다. 이제 진짜 호랑이를 때려잡겠구나, 이 땅의 보수기득권 세력들이 속았다고 개탄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나름 기대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 말은 농담입니다. 저는 진실로 형이 걱정됩니다. 호랑이를 잡으러 간 사람이 거꾸로 호랑이에게 동화되어 굴에서 나오지를 않으니 말입니다. 아니, 호랑이들처럼 잔인하게 변해 약자를 억누르고 상식을 외면하고 궤변을 늘어놓으니 말입니다.

 

무상급식 반대하고 일제식민지배 옹호하는 당신에게

 

우선 전면 무상급식 문제를 봅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북한이 대학생까지 모든 학생을 무료로 가르치고 또한 무상으로 급식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결코 북한을 찬양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가난한 정부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하는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교육비나 급식비는 국외로 유출되거나 소모되어 사라지는 비용이 아니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라도 실현이 가능한 것입니다. 나라 돈으로 무상 교육과 급식을 한다 해도 그 돈은 농민에게 가고 교수에게 갈 것이요, 그들이 돈을 쓰는 대로 다시 순환되고 세금이 되어 국가로 귀속될 것입니다. 해외여행이나 사치품 수입과는 다른 경우지요. 가난한 북한도 하는 일을 이 부자나라 남한이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한나라당은 부자들에게 혜택을 주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역차별을 막기 위해 전면 무상급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부자들이야말로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세력이란 점을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공부하기가 어려워야 부자들이 좀 더 특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한나라당의 궤변에 당신이 앞장서 동조하는 모습, 정말 보기 좋지 않습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아니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다고요? 이 문제의 대답은 더욱 간단합니다. 그러면 영국과 미국은, 그리고 일본은 어느 나라의 식민지였기에 부자가 되었나요? 또한 최근의 중국은 어느 나라의 식민지이기에 불과 십여 년 만에 세계 초강대국으로 발전했나요?

 

봉건 독재체제에서 자본주의로 변화할 때 생산력이 급격히 발전한다는 사실은 세계적인 경험입니다. 선진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는 경우 발전이 극히 더디다는 사실 역시 공통된 경험입니다. 조선이 일제 식민지에 편입되어 폭압적인 지배를 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자본주의가 도입되었다면 우리 경제는 적어도 이삼십 년은 앞서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기초적인 경제이론이자 실제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지배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이 부자가 된 거라고요? 정말 진심입니까? 아니면 친일, 친미파가 주류인 저 수구보수 한나라당에게 잘 보이기 위한 접대성 발언입니까?

 

이승만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요?

 

이승만 문제도 봅시다. 한국이 분단된 것은 미국과 소련 때문이며 이승만은 책임이 없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건국대통령으로 대접받아야 한다고요? 광화문이나 경기도에 이승만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요?

 

제 생각에는 이런 말 역시 당신의 본심이라기보다 보수우익을 위한 접대성 발언 같은데, 만일 진심이라면 정말 너무나 황당합니다. 한국현대사에 대해 너무나 무식한 발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 십 년 가까이 한국현대사를 집중 공부하여 여러 권의 책을 썼습니다만, 김일성이나 이승만에게 분단의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습니다. 처음 남북을 나눈 것은 미국과 소련인 것이 확실하고, 두 사람 모두 통일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는 사람들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국 스스로 외국군을 불러들여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이를 이용했다는 사실은 숨길 수 없습니다.

 

특히 이승만은 전쟁이 터지자 최소 수십만에 이르는 무저항의 사상범들을 살육합니다. 종전 후에는 경제개발 따위는 무시한 채 오로지 권력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나라를 피폐하게 만듭니다. 이승만이 좀 더 젊었거나, 4·19혁명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훨씬 오랫동안 혼란과 가난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국부라고 숭배하여 광화문 한복판에 동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변하고 다니는 당신, 참 훌륭하십니다.

 

쌍용자동차 사태도 그렇습니다. 회사 운영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도 없는 9백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졸지에 해고되어 이에 항의하는 데 대해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냉소적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일일이 나열할 순 없지만, 누가 쌍용차에 투자를 하겠냐고 말했다거나 진압에 앞장선 경찰관을 표창한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쌍용차 농성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저는 거의 빠짐없이 농성장 주변에서 밤낮을 지샜습니다. 무자비한 진압으로 수많은 노동자가 부상을 입는 전 과정을 농성장 안의 노동자들과의 전화를 통해 들으며 함께 분노하고 고함쳤습니다. 함께 최루탄을 맞으며 분루를 흘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고위직 관료가 된 당신은 경기도가 쌍용차에 무슨 책임이 있느냐며 냉소하고, 무자비한 폭행으로 노동자들을 짓밟은 경찰관들에게 스스로 표창을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유와 과정이 어찌 되었든 궁지에 몰린 약자들이 최후의 저항을 하는 비참한 상황을 이처럼 무자비하게 냉소할 수 있는 당신, 이것이 본래 당신의 모습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습니다. 김문수 형, 이제 그만 호랑이 껍질을 버리고 우리에게 돌아오세요.

 

유시민이 친북좌파? 그렇게도 권력을 잡고 싶나요

 

 

이번 도지사 선거에서 당신이 유시민 후보에게 퍼붓는 비난 역시 상식을 초월합니다. 특히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유시민 후보를 '친북좌파'라고 비난하는 부분은 저를 다시 분노케 만듭니다.

 

당신은 여러 인터뷰에서 진보운동을 했지만 북한은 싫어했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그 말을 믿고, 동의합니다. 기본적인 민주주의 제도, 즉 거주이전과 언론집회결사의 자유가 없는 북한을 찬양한다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소위 운동권이 북한에 대해 직접적인 비판에 조심하는 것은 북한정권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남북관계가 악화될 경우 이로 인해 남북의 민중들이 입을 피해와 통일이 지연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심정적으로까지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지만 대단히 극소수이고 운동권 내부에서도 배척받고 있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유시민 후보를 포함해 대다수의 운동권 출신들이 친북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당신이 수구보수 세력과 손을 잡고 우리를 친북좌파라 비난하는 것은 정말 몰염치한 짓입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가 있습니까?

 

천안함 사건에 대해 말하자면 저는 그 어떤 증거를 들이대더라도 이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기가 어렵습니다. 이 자리에서 자세한 논쟁을 할 수는 없지만, 이 사건은 역사적 의문으로 남을 것이며,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봅니다.

 

만일, 이명박 대통령의 발표 그대로 북한의 소행이라면 정말 북한은 남한의 민주주의나 진보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불량한 독재국가임에 틀림없겠지요. 거의 매번 큰 투표가 있을 때마다 잠수함이니 간첩단을 보내 민주화에 찬물을 끼얹으니까요.

 

그 어떤 경우라도 상관없이, 당신의 맞수인 유시민 후보나 한명숙, 송영길, 김두관, 안희정 등등 민주파 후보들 그 누구도 친북좌파가 아니란 사실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그들을 북한과 연계시켜 보려는 당신의 의도는 처연한 느낌까지 줍니다. 저렇게까지 해서 권력을 잡고 싶을까 하는.

 

호랑이굴에서 영혼마저 먹혀 버렸군요

 

다시 그 겨울날로 돌아가,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가겠다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이에 대해 당신은 보다 솔직하게 인터뷰를 한 적도 있더군요.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면, 그런 점에서 맞다. 그때 나이는 들어가고 현실적으로 하는 것마다 깨졌다. 만약 현실이 성공했다면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만일 현실이 성공했다면? 그러니까 민중당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면 계속 가난한 서민의 편에 섰을 것이다? 그런데 실패했기 때문에 부자들에게 갔다? 그들이 당신을 인정해 주었기 때문에? 당신을 출세 시켰기 때문에?

 

우리가 민주화니 노동운동을 한다고 굶주리고 매 맞고 감옥에 간 것은 결코 국회의원이 되려고 한 일이 아니라는 것, 세상이 좋아져 국민들이 누구나 자유롭게 정치적 의견을 말하고 두려움 없이 자신의 권익을 위해 집단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그 보상을 받은 것이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는 않겠습니다.

 

김문수형, 이제 그만 돌아오세요.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가 영혼마저 호랑이에게 먹혀버린 비극의 주인공인 당신, 더 이상 역사의 죄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안들을 다 놔두더라도 4대강 죽이기를 강행하는 것만으로도, 제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동네 여주 이천의 강들을 흉칙하게 파헤쳐 놓은 오늘의 죄업만으로도 역사의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형, 이제 그만 하고 돌아오십시오. 진심으로 형을 위한 저와 또 많은 동료들의 진정한 애정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마십시오.

덧붙이는 글 | 안재성님은 <파업> <황금이삭> <경성트로이카> 등을 쓴 소설가입니다. 


태그:#김문수, #안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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