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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도 보험회사들의 경영실적 보고서가 발표됐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영업중인 보험회사들이 벌어들인 이익규모는 총 4조1천억 원으로, 생명보험사가 2조5천억 원, 손해보험사가 약 1조6천억 원 가량의 '이문'을 남겼다.

FY'09 보험회사 (잠정)경영실적 by 금융감독원 (2010.5)
▲ 2009 보험회사 당기순이익 현황 FY'09 보험회사 (잠정)경영실적 by 금융감독원 (2010.5)
ⓒ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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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별로 보면, 생명보험의 경우 22개 보험사 중 19개 회사가, 손해보험의 경우 30개 보험사 중 18개 회사가 흑자를 시현했으며 그 외 수입보험료 현황, 수익성 지표, 재무건전성 현황도 동반 상승하는 등 모두 예년 수준을 뛰어넘는 높은 성과를 올렸다. 경기 악화에 따른 일반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과 상관없이 보험사들은 (신용카드 회사와 마찬가지로) 양호한 수익성과 튼실한 재무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금융감독원에 접수되는 소비자들의 금융민원을 기초로 작성되는 '민원발생 평가결과'의 경우 (생명, 손해)보험회사들 대다수가 전년 대비 평가등급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원발생 평가란, 동 기간 중 민원발생 규모, 회사의 해결노력, 영업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여 1등급부터 5등급까지 회사별 등급을 산정함)

2009년도 금융회사 민원발생평가 결과 by 금융감독원 (2010.5)
▲ 2009 금융회사 민원발생평가 등급별 분포 2009년도 금융회사 민원발생평가 결과 by 금융감독원 (2010.5)
ⓒ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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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등급이 하락한 이유는, 생명보험의 경우 보험모집과 관련된 민원증가(45.7% ↑)가 주 원인이고 손해보험의 경우 보험금 지급과 관련된 민원증가(36.2% ↑)가 주 원인이었다. 이른바 '위험' 등급이라 할 수 있는 4등급 이하에 포함된 보험회사 숫자가 전체의 40%가 넘는다. 보험업계의 고질적 병폐(생명보험 모집 과정의 불완전 판매, 손해보험 지급과정의 분쟁)는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회사 내역을 확인하고 싶으면,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위 제목으로 자료를 검색해보면 됨)

모집 과정에서 고객이 알아야 할 사항들을 제대로 알리지 않음으로 인해 부실 판매가 늘어났고, 사고를 당한 고객에게 주어야 할 손해 금액을 가능한 한 '덜' 지급해주려 하다 보니 분쟁 건수가 증가했을 것이다. 바로 (생명보험사의) '실적 지상주의'와 (손해보험사의) '최소 손해율 고수'라는 탁월한(?) 경영 방침에서 비롯한 결과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고객 불만이 많아질수록 이익이 늘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두 개의 성적표를 종합해보면, 작년 한 해 동안 보험회사들은 재미를 봤고 고객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열심히 돈을 벌어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만족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년에는 과연 어떤 결과가 도출될까? 소비자들이 다시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는 언론보도가 그대로 현실화된다면 보험회사들의 순이익은 더 늘어날 것이고, 보험사 경영방침이 갑자기 변할 이유가 없으므로 고객들의 불만족 지수 역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보험회사와 보험소비자 사이에 존재하는 이 질서(만족-불만족)는 변할 수 없는 것일까? 삼성생명 가입자들은 주식 상장을 통해 무려 4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시세차익을 남긴 이건희 회장을 그저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되는 것인가? 승자와 패자가 늘 정해져 있는 이 생태계 안에는 대관절 어떤 '법칙'이 관통되고 있는 것일까?

보험업법 관련 검색 결과
▲ 국회 홈페이지 의안정보시스템 보험업법 관련 검색 결과
ⓒ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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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면은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중인 보험업법 관련 일부개정법률안 목록의 일부분이다. (법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법'을 살펴봐야 한다.) 아래 빨간 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2008년 12월에 정부 입법으로 발의되어 14개월만에 어렵사리 정무위원회를 통과,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이다. (참고로 이 법안은 4월 국회 심의 과정에서 다시 보류되어 통과가 무산되었다. 발의 시점을 기준으로 무려 1년 반 동안 표류중인 셈이다. 국회 도서관에는 이렇듯 수십 개월 동안 방치된 법안들이 부지기수로 존재한다.)

이 개정안은 보험판매 전문회사 설립, 자산운용 규제 완화, 보험상품 개발 간소화, 보험상품 설명의무 등이 주요 골자인데, 보험회사 관점에서 보면 좋은 것(겸영업무 확대, 자산운용 규제 완화, 상품개발 간소화)과 좋지 않은 것(보험상품 설명의무)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보험회사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곧 소비자에게 좋은 것이니 (지면 관계상) '소비자' 관점에서 도움이 되는 것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새로 신설된 법안 내용 중 '적합성의 원칙(95조 3항)'이라는 것이 있다. '보험회사 또는 보험의 모집에 종사하는 자는 일반보험계약자의 연령, 재산상황, 보험가입의 목적 등에 비추어 그 일반계약자에게 적합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보험계약의 체결을 권유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이 바로 그것이다.

법 해석상 적합성의 기준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많으며, 원칙을 어겼을 경우 어떤 제재조치가 따르는지 등이 누락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조항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소비자의 재무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보험상품 판매는 잘못이며 따라서 고객의 재정 상황에 맞는 '재무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최초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장 광고를 금지하는 조항도 있다. 모집광고 관련 준수사항(95조 4항)에는 '보험회사 또는 보험의 모집에 종사하는 자가 보험상품에 대해 광고를 하는 경우 보험료를 일할(日割)로 분할하여 표시하는 등 보험료가 저렴한 것으로 오해하게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간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어왔던 보험료 허위 과장광고(특히 홈쇼핑 보험상품 판매영역)에 대해 제제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조항을 보자. 동법 97조에는 '보험계약의 체결 또는 모집에 종사하는 자는 기존 보험계약을 부당하게 소멸시킴으로써 새로운 보험계약을 청약하게 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는 (보험계약의 체결 및 모집에 관한) 금지행위 규정이 있다. 새로운 보험을 가입시키기 위해 기존에 가입해 있던 보험에 (근거가 있든 없든) 흠집을 내어 해약을 유도하는, 이른바 '대체 판매'를 막기 위한 규정이다. (기존 보험을 깨고 새로 가입시키는 이러한 방식은 지금도 판매과정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수정법안들이 발의된 이유는 뭘까? '해서는 아니 될'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상품 권유, 허위 과장 광고, 대체 판매로 인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관점에서 보험회사가 해서는 아니 될 일들이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향후에도 역시 마땅히 해야 할 일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늘어날 것이고, 따라서 관련 법률은 신설과 수정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금지목록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것이 바로 개정 내용(법 문항)이다. 이 개정안 역시 나름 대한민국의 '보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모여 고심하고 연구한 끝에 만들어진 법안일 것이므로, 꼭 필요한 것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해가 된다면, 법 문안(95조 3항)에 '감히' 손을 대보도록 하겠다.

'보험회사 또는 보험의 모집에 종사하는 자는 모집 전 반드시 일반보험계약자의 연령, 재산상황, 보험가입의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재무진단서를 작성하여야 하며, 그 진단 내용이 해당 일반계약자가 보험가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될 경우 보험계약의 체결을 권유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 신설 조항의 이름은 적합성의 원칙이 아니라 '모집 전 의무사항'이다.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이 불필요한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건강한 재무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고, 보험설계사를 단순 모집인이 아니라 자격을 갖춘 전문가(가정재무 주치의)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법 취지를 담고 있다. 이 법 문안에 왜 재무진단서 작성을 의무화하려는 것인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보험회사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므로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법으로 해석되겠지만, 이 주장을 무시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보험업 관련 계류 법안 중 가장 '뜨거운 감자'이며 핵심 쟁점사항이기도 한, 지급결재권을 둘러싼 은행과 보험회사간의 밥그릇 싸움은 '그들만의 리그'이니 (누가 이기건) 알아서 하라고 하자. 보험회사가 부동산뿐만 아니라 귀금속과 골동품, 서화에도 투자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자산운용 규제 완화조치도 눈 흘기지 말고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하자. 하지만 보험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의 입법화 과정만큼은 대충 넘어가거나 미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보험 시장규모는 (2009년도를 기준으로) 연간 120조 원이 넘는다. 한 해 나라살림의 41%(2010년 국가예산은 292조 8천억 원임)에 해당하는 엄청난 시장이다. 그리고 보험업법을 비롯한 몇 개의 법률이 이 시장의 질서를 지배한다. (보험은 종이 위에 쓴 약속을 판매하는 업(業)이고, 오직 이 종이를 판매함으로써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사업(Paper Business)이므로 결국 이 신비한 '종이 마술의 비밀'은 어떤 경기 규칙(법)을 세우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번 자문해보자. 보험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래의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함이다. 보험은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인가? 보험회사가 아니라 보험소비자들을 위해서다. 보험회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험의 순기능을 통해 보험소비자들에게 올바로 봉사하기 위해서다. 이 기준들은 무슨 특별한 원리가 아니라 상식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FY'09 보험회사 (잠정)경영실적 by 금융감독원 (2010.5)
▲ 2009 보험회사 수입(보유)보험료 현황 FY'09 보험회사 (잠정)경영실적 by 금융감독원 (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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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만일 이 '당연한' 사실들이 현실에서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 보험회사는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데 보험소비자는 손해를 보는 '이상한' 질서가 계속되고 있다면?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연간 수 조원의 비용이 빠져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쓰임새가 잘못되고 있다면? 마땅히 정상으로의 복귀를 선언해야 하지 않겠는가? 원칙과 기준(법)을 다시 수립해야 하지 않겠는가?

법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약속이며 기준이다. 사람이 법을 만들지만, 한 번 만들어진 법은 반대로 다시 사람을 규정하고 구속하는 표준이 된다.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법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왜 법은 늘 현실에 후행(後行)하는 것일까? 문제가 발생하고, 곪아터지고, 그래서 피해자들이 속출한 뒤에야 검토가 시작되고, 그것도 한참을 지나서야 적당히 미지근한 상태로 절충된 법안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법률 제정에 따른) 이해관계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법 제정 과정에 우리가 모르는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초들의 어려움은 도외시한 채 실효성 없는 정책만 양산해내는 무능한 행정기관과 늘 정치논리가 우선인 허울좋은 법률 제조공장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의 절반은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만든 우리들 자신에게도 있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공명정대한 법을 만들려면 정신이 올바로 선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진심으로 다가설 수 있는 호민관이 있어야 한다. 선거를 통해 '좋은' 일꾼을 뽑아야 하는 이유다. 좋은 일꾼이 만드는 좋은 법이 '판치는' 세상은 언제쯤 열릴 수 있을 것인가?



태그:#법, #종이, #보험회사, #보험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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