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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스승의 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제 내 인생의 선생님은 만나기 쉽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20살 때 잠깐 한 적이 있다. 대학에 입학하니 대학교에서 진정한 스승을 만나기가 하늘에서 별 따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생활을 하며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대학 사회에서 만난 스승들이 꽤 많다. 그 중에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에 철학을 가르치고 계시는 전봉주 선생님이 생각났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강의실에서 만나다

가운데 전봉주 선생님. 학생들의 질문에 답변 중이시다.
 가운데 전봉주 선생님. 학생들의 질문에 답변 중이시다.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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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은 철학과 수업 하면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제자들이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계속 질문을 던지는 소크라테스의 모습 말이다. 일명 산파술, 질문을 받는 당사자들이 자신이 모르는 무지를 깨닫고 새로운 사상을 깨닫는 문답법을 말한다.

하지만 대학의 철학과 강의 들으면 그리스의 아테네 학당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일방적인 강연식 수업이 주를 이루고, 교수님들의 견해를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경우도 꽤 있다.

대학에서 철학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는데 2학년 때 전봉주 선생님께서 하시는 <고중세 철학사> 수업을 수강했다.  철학과 수업에 대한 실망감을 가지고 있었던 시절이라 전봉주 선생님 강연도 철학 이론을 달달 외우는 수업이라 지레 짐작했다. 하지만 <고중세 철학사> 수업 첫 시간은 충격이었다.

"여러분들에게 학점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수업 시간에는 학점 따려고 전전긍긍 안 해도 된다. 내 수업은 여러분과 대화 하면서 할 거다. 내 혼자 떠드는 수업을 해봐야 여러분들에게 남는 거 하나도 없거든. 모르는 거 있으면 수업 흐름을 끊어도 좋으니 꼭 질문해서 짚고 넘어가고. 그리고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질문을 많이 하니 당황해 하지 말고 너희들 생각 그대로 표현해라. "

전봉주 선생님 수업 시간은 마치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그리스의 아테네 학당을 떠오르게 했다. 선생님의 견해를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언제나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견해를 물어보고 그 견해를 전체 학생들과 논의 하였다. 그리고 선생님이 나에게 산파술을 걸어오실 때면 내가 가지고 있는 지적 오만에 대해 성찰 할 수 있어 철학을 공부하는 희열이 느껴졌다.

학생들이 원하면 어디든 달려오시는 선생님

<철학과 철학함> 전봉주 선생님을 모시고
 <철학과 철학함> 전봉주 선생님을 모시고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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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주 선생님 수업에 감동을 받은 나는 매년 선생님 수업을 빠짐없이 수강신청 했다. 4학년 때도 어김없이 <인식론> 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날 선생님께서는 수업에 대한 내용 이외 '부산희망대학' 이라는 곳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다.

"부산희망대학에서 난 사회적 약자(빈곤계층)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친다. 가난하고 사회에서 차별 받는 사람들은 자기를 부정하고 자신이 못났다는 생각을 많이 해. 하지만 인문학을 배운 사람들의 태도는 변화했어. 인문학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해 긍정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지. 그리고 사회적 차별에 대응하는 방식이 예전에 인문학을 배우지 않았던 때와 달라졌어.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는 정신의 힘이 강해진 거야."

그 당시 <희망의 인문학-얼쇼리스>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책의 저자 또한 미국에서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돈이나 빵 대신 인문학을 가르치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전봉주 선생님 또한 부산에서 그 실험을 실천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사회적 약자 인문학 교육과 대학생이 철학함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내가 운영하는 동아리에 강연을 부탁했다.

"선생님 제가 인문학 책 읽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데 저희 모임에 오셔서 강연 해주시면 안될까요?"
"당연히 가야지. 언제 하냐? 선생님이 시간 맞춰서 갈게. 내가 자료를 보낼 테니 뽑아주고!"

흔쾌히 나의 부탁을 들어주셨다. 학교 강의실에서 15명의 인문학 모임 회원들과 선생님과 2시간 가량 인문학 교육과 철학함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여름빈민현장활동 '차별과 차이' 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시고 있는 전봉주 선생님. 사진 북쪽 오른편
 여름빈민현장활동 '차별과 차이' 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시고 있는 전봉주 선생님. 사진 북쪽 오른편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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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년 여름에 부산/경주 대학생 친구들과 '용산 참사 문제 해결'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부산 지역에 빈민 공동체에 4박 5일 동안 거주 하며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이때 프로그램 중 하나가 빈민/대학생이 어울려 인문학 강연을 듣는 것이었다. 난 이번에도 전봉주 선생님께 강연을 부탁하면 좋지 싶어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이번에 제가 준비하는 여름 활동에 빈민/대학생 대상으로 '차별과 차이' 에 대한 주제로 강연 하나 부탁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시간이 딱 비네. 덕분에 인문학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 두루두루 만나게 되어 내가 기쁘네."

강연을 마치고 선생님에게 너무 고마워 강연비를 드리려고 했다.

"성민아 마음만 받을게. 이번에 강연도 제대로 준비 안 해서 오히려 너희들에게 미안해. 그 돈으로 너희 활동 하는 친구들이랑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어라. 난 간다. 건강히 잘 지내고!"

"소신과 열정 그리고 정직의 원칙을 생각하고 열심히 지내길 기대한다"

2009년 여름이 지나고 그 해 2학기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휴학을 하였다. 전봉주 선생님의 철학 강의가 그리웠지만 개인 사정과 학교 밖 다른 활동이 더 하고 싶어 잠시 학교를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오마이뉴스에 <지금 이 순간의 역사-한홍구> 라는 책을 읽고 기사를 작성했는데 '좋은기사원고료'가 들어와 있었다.  너무 기분이 좋아 누가 부실한 나의 글에 원고료를 주었나 싶어 보자마자 '좋은기사원고료'를 클릭해 보았다.

"성민, 네 소식 들은 지 오래 되었다. 잘 지내고 있는 듯 보이는구나. 언제이든, 어디에 있든 소신과 열정 그리고 정직의 원칙을 생각하고 열심히 지내길 기대한다. - 전봉주"

학교를 휴학하여 선생님을 잠시 잊고 살았는데 선생님께서 먼저 나의 안부를 물으셨던 것이었다.

전봉주 선생님은 대학에 들어와 나에게 철학이라는 학문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 나의 영원한 스승님이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배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삶의 지지를 보내주시는 든든한 스폰서이다.

"선생님 조만간 꼭 한 번 찾아 뵙겠습니다. 만날 말만 하고 못 뵈었는데 조만간 꼭 찾아가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당신은 스폰서가 있습니까?'응모글



태그:#스승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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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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