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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씨가 수록 거부 의사를 밝힌 '창비'의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 지난해 7월 교과부의 검정을 통과했다.
 김영하 씨가 수록 거부 의사를 밝힌 '창비'의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 지난해 7월 교과부의 검정을 통과했다.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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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씨가 뿔이 났다. 자신의 작품을 무단으로(!) 교과서와 참고서 등에 수록(하려)한 출판사와 국가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김영하씨는 지난 달 27일과 29일 자신의 트위터블로그에 글을 올려 정부와 출판사의 '작품 도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그러나 창비 측에서는 사전에 저작권자와 충분히 협의하지 못한 부분은 있지만 관련법에 따른 것이므로 무단·도용은 아니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교과서에 자신의 작품이 실린 덕분에 '대박'을 맞은 작가들도 있다던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김씨는 지난 4월 27일 '창비'로부터 날아온 한 통의 이메일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창비가 편찬한 2010학년도 중학교 1학년 2학기 교과서에 자신의 산문('상상은 짬뽕이다')의 일부가 수록됐다는 것.

교과서에 작가의 작품을 수록하는 것은 저작권법 제25조에 따라 저작권자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지만 자습서와 참고서는 그렇지 않으니 게재 허락을 해 달라는 내용이 김씨가 받은 이메일 내용이다. 이를 받고 김씨는 "중요한 의문"을 품게 됐다.

저작권법 제25조와 관련해 "국가는 과연 개인의 저작물을 마음대로 '징발'하고 '편집', 혹은 '수정'하여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과 "교과서를 편찬하는 영리 기업이 국가의 검정을 득한 교재를 출판한다는 이유만으로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저작물을 마음대로 갖다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 이와 같은 경우 "자신의 저작물을 교과서에 제공하기를 거부하는 저작권자의 자유는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는가" 하는 "중요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입시 도구로 이용되는' 교과서 산문 수록 거부

김영하 홈페이지 화면 캡처
 김영하 홈페이지 화면 캡처
ⓒ 김영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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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신의 작품이 국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국어교과서에는 원문이 그대로 실리지 않기 때문에 "작가가 추구했던 내적 완결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문학은 문장으로 환원되거나 교과서 '저자'들의 맥락 속으로 폭력적으로 편입돼 …(중략)… 그것을 바탕으로 결국은 입시 교육의 한 도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둘째는 좀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로서 "국가가 교과서를 만드는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이다. 그는 이 문제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문학교육을 국가가 주도하는 것이 옳은가, 문학을 '교육'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도 포함한다.

김영하 씨의 글이 실린 부분의 단원명이 '인터넷으로 이야기하기'이다. 단원 마지막 장에는 "'저작권과 해적질'"이라는 참고자료가 실려있다. "저작권 보호란 저작권을 지닌 사람에게 저작물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후에야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 이라는 설명이 담겨있다.
 김영하 씨의 글이 실린 부분의 단원명이 '인터넷으로 이야기하기'이다. 단원 마지막 장에는 "'저작권과 해적질'"이라는 참고자료가 실려있다. "저작권 보호란 저작권을 지닌 사람에게 저작물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후에야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 이라는 설명이 담겨있다.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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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김씨는 "지나치게 포괄적인 저작권법 제25조의 개정"을 주장한다. "저작권자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최소한의 거부를 할 수 있는 권리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국회 입법 청원을 통해 저작권법 개정 노력을 하고 이것이 어려우면 헌법 소원을 통해 해당 조항의 위헌 여부를 따질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어느 시인·소설가도 문제 삼지 않았던(혹은 문제 삼을 줄 몰랐던) 것에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작가 김씨의 주장은 작가로서의 고민을 담아 국가 권력의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현행 교과용도서(교과서)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저작권을 가지는 국가 중심의 교과서 발행 체제인 '국정도서'와 교과부장관의 검정을 받은 교과서를 말하는 '검정도서', 국정이나 검정이 없거나 이를 사용하기 곤란할 경우, 보충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 지극히 한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교과부장관의 인정을 받은 '인정도서'가 있다.

민간에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검정·인정 역시 정부의 검열을 통과하고 '합격'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국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인정도서는 국가가 제작에 간여하지는 않고 교과부장관의 인정을 받는다). 정권의 이해에 따라 사실과 왜곡을 거듭해온 교과서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매우 부적절한 제도라 하겠다.

이미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비민주적이라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구나 교과서를 발행할 수 있게 하고 선택과 평가는 사용자의 결정에 맡기는 '자유발행제'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1996년 교육개혁위원회도 대통령에게 한 보고에서 자유발행제를 지향하고 있다.

김씨가 처음 문제를 제기한 것은 자신의 작품을 허락 없이 실은 창비에서 만든 중학생용 검정교과서와 자습서, 참고서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 같은 국정이나 검·인정체제의 교과서 발행시스템 전체의 문제와 저작권법으로 교과서에서 저작권자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국가의 폭력을 지적하고 있다.

김영하 "내 소설 문제 5개 중 2개만 맞혔다....이것이 창의적 해석?"

소설가 김영하
- 1968년 강원 출생
- 1995년 계간 리뷰 단편소설 '거울에 대한 명상' 발표 데뷔
-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수상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역임
-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아랑은 왜>, <퀴즈쇼>, <검은 꽃>,<빛의 제국> 등
- 소설집 <호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오빠가 돌아왔다>등
- 산문집 <굴비낚시>,<포스트잇>등이 있다.

그의 말처럼 특히 국어(문학)교육은 원래의 작품(원전)을 충실히 읽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이나 예전이나 교과서의 현실은 요약본이거나 부분 발췌 형식이다.

무려 21권에 이르는 <토지>나 10권이나 되는 <태백산맥>도 교과서에는 '달랑 몇 쪽'이고 심지어 문제집에서는 '겨우 몇 줄'로 제시된다. 시의 경우도 부제가 삭제된 채 수록되거나 장시의 경우 일부만 실리기도 한다. 영혼은 사라지고 뻣뻣하게 굳은 육체의 일부만 남아 있는 꼴이다. '작품'대신 '문제풀이'만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씨는 그의 트위터에서 "언젠가 제 소설로 어느 학원에서 시험 문제를 만든 것을 누가 보내줘서 저도 풀어봤는데 5문제 중에 2문제 맞혔어요. 이런 걸 창의적 해석이라고 해야 할까요"라고 토로했다.

김영하씨의 글, 상상은 짬뽕이다가 실린 책의 표지.
 김영하씨의 글, 상상은 짬뽕이다가 실린 책의 표지.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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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실에 분노해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소설가 김씨의 말은 절규에 가깝다. 국가의 강제로 교과서에 "폭력적으로 편입"된 자신의 작품이 원래의 모습을 잃어 제대로 읽혀지지도 못한 채 '밑줄 쫙~ 돼지꼬리 땡땡!'으로 난도질당하기는 싫다고 외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다고 인정해주는 저작권법은 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뒤늦은 감마저 있지만 충분히 귀담아 듣고 개선책을 찾을 필요가 있는 지적이다.

그런데 보도에 따르면 교과부 담당자는 "저작권자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교과서에 사용하지 못한다면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반박했다고 한다.

저작권자의 허락이 없는데도 굳이 해당 작품을 교과서에 넣어야 할 까닭이 무엇인지. 그렇게 억지를 부려야만 '좋은 교육'이 가능한지 그렇다면 그것이 정말로 '좋은 교육'인지. '좋은 교육'을 위해서라면 국가는 그래도 괜찮다는 것인지 끊임없는 궁금증을 샘솟게 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진정 좋은 작품을 가르치고 싶다면 좋은 작품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방법부터 고민하고 토론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몇 줄짜리 법령 조항을 근거로 강제와 일방통행을 강행하는 건  순서가 아니다. '좋은 교육' 운운하며 전혀 교육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발언을 하는 건 더욱 옹색하다.

충분히 배려하고 존중할 수 있는 작가의 권리를 국가가 일방적으로 짓밟는 것은 부당하니 개선해 달라는 게 김씨가 주장하는 바라는 걸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는 것 같다. 아마 그도 학창시절 오롯한 전문이 아닌 토막 난 조각 작품이 실린 국어(문학)책으로 공부를 하고 문제집을 열심히 푼 탓은 아닐까.

김씨는 1일 오전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5월의 봄볕을 쬐러 나갔다.

"새로운 생각은 처음에는 없는 것으로 취급당합니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으면 공격합니다.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으면 그제야 소수 의견으로 받아들입니다."

덧붙이는 글 | 소설가 김영하씨는 "선생님들이 수업에 참고자료로 작품의 원문을 사용하는 것에는 저도 기꺼이 동의한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태그:#김영하, #국정교과서, #창비, #교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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