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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신 : 29일 오후 4시 30분]
 
천안함 가족협의회 "국민들께 깊은 감사"
 
29일 오후 3시 천안함 순국장병 46 영현의 안장식이 침통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 국립 대전 현충원 현충문 앞에서 거행됐다.
 
국립대전현충원 개장 이래 최대의 규모로 진행된 이번 안장식은 개식사, 고인에 대한 경례, 종교의식, 유가족 헌화 및 분향, 조총 및 묵념, 영현 봉송, 하관 및 허토, 성분 순으로 진행되었다.
 
천안함 순국 장병들의 영현은 유족들의 희망에 따라 사병 제3묘역에 조성된 합동묘역에 안장되며, 그 건너편에는 천안함 장병들을 구조하다가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한편, 천안함 전사자 가족협의회(아래 가족협의회)가 29일 성명서를 통해 국민들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가족협의회는 성명서에서 "천안함 46용사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외롭지 않게 끝까지 지켜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천안함 침몰사고는 우리 유가족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과 깊은 슬픔을 줬다"면서 "하지만 같이 울어준 국민들이 있어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가족협의회는 이어 "두 번 다시 이러한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민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해군이 제대로 싸울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또 천안함 용사들을 기억할 수 있는 추모 사업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것, 사고원인과 진상조사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해달라는 등 세 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마지막으로 가족협의회는 "우리는 해군 가족"이라며 "모든 해군 장병들이 우리 가족이 된 만큼 이번 사고로 해군 장병들의 사기가 꺽이지 않도록 배려해달라"고 당부했다.
 
 
[4신 : 29일 오전 11시 30분]
 
"이용상! 다음 생애 조금 더 빨리 만나 더 오래 친구하자"
 

천안함 장병 영결식이 열린 29일 오전, 서울 시청광장에서 분향을 마친 이들은 자연스레 추모 글을 적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추모만 하고 그냥 갈 수 없었다는 이인훈씨는 "차디찬 바다색은 장병들이 싫어할 것 같아서 따뜻한 노란색에 글을 쓰고 있다"며 46명 장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다. 함께 온 딸 김아무개씨는 울었는지 눈에 충혈됐다. 김씨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며 "거의 다 동생뻘 되는 사람인데 그렇게 젊은 나이에 갔다는 것이 너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영결식이 시작된 오전 10시, 싸이렌 소리가 시청광장에 울리자 이곳에 모인 500여명의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검은 옷을 갖춰 입고 분향소를 찾은 이들은 두 손을 꼭 모은 채 천안함 장병들을 추모했다. 한 때, 분향소 옆과 분향소 정면에 꾸려진 대기소가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이들이 분향소를 찾아 60명가량이 세 줄로 나누어 서서 조문 했다. 영결식이 끝난 후에도 조문객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가족을 군대에 보낸 이들은 이번 사건이 마치 나의 일인듯 아파했다. 아들이 철원 최전방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한석희씨는 "유가족들이 많이 힘들어할까봐 걱정"이라며 "그 분들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냐만, 용기내시고 희망 잃지 마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분향소를 찾은 김세희씨는 일주일 전에 동생을 군대에 보냈다. 김씨는 "남동생 생각이 너무 난다"며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분향을 하고 추모 글이 적힌 판넬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그녀의 눈에는 계속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분향하는 이들 사이로 교복 입은 학생들도 다수 보였다. 시험을 마치고 곧장 이곳으로 왔다는 경복고 2학년 김태현씨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방일민 중사의 사촌 할머니 방시영씨도 시청광장 분향소에 와 조문했다. 방씨는 "방송에 이름이 나와 방 중사의 사고 소식을 접했다"며 "몸이 너무 떨려서 며칠 동안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방씨는 "자식들이 너무 바빠 평택에 못 간다기에 나 혼자는 도저히 떨려서 평택에 갈 수 없어서 시청광장을 찾았다"며 "그렇게 착하던 아이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추모 글이 적힌 판넬에는 천안함 장병들의 지인이 적은 글도 있었다.
 
"이용상! 만나서 반가웠다. 우리 다음 생애는 조금 더 빨리 만나서 영원히 친구하자. 너를 알아서 고맙고 또 미안해. 걱정 말고 편히 쉬어"
 
"저와 고향, 학교, 나이가 같은 천안함의 임재엽 중사님. 20여일 추운 곳에서 힘들었을텐데 가는 길 오늘은 얼마나 뜨거울까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부를 질타하는 목소리를 담은 글도 있었다.
 
"엉터리 CEO의 6.15, 10.4 선언 파괴 말도 안 된다...쳐다보는 것마저 아까운 우리 자식들 편히 잠들어라"
 

 

 
[3신 : 29일 오전 10시 50분]  
 
"천안함 속에 남겨둬서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또 미안합니다. 그대들을 천안함 속에 남겨둬서 미안합니다. 그대들과 함께 끝까지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천안함 희생 장병들의 장례가 열리고 있는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 안보공원. 고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김현래 중사가 전우를 먼저 떠나보내는 마음을 담아서 추도사를 낭독하자, 유족들은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김현래 중사는 천안함 갑판 부사관으로, 이번 천안함 침몰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58명 한 명이다.
 
김현래 중사는 "26일 밤 경비 작전 임무를 수행하던 우리의 일상은 끔찍한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며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충격과 혼란으로 우리는 암흑 천지의 바다에 떨어졌다"고 참사 당시를 회고했다.
 
김 중사는 이어 "우리의 모든 것인 천안함은 순식간에 침몰됐고, 정들었던 전우들도 사라지고 말았다"며 "몸과 정신이 마비되는 가운데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한 명, 두 명 구조선에 올랐지만 당신들의 애끊은 영혼에는 미처 닿지 못했다"고 고인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그는 "시간을 돌이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돌아오라는 간절한 기도와 애원에도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만 있다"며 "그대들의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제 더이상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처절하게 두동강 났지만 천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며 "천안함은 온 국민의 가슴 속에 역사로 새겨졌으면 여러분의 숭고한 희생은 애국심으로 되살아나고 있다"고 고인들과 유족들을 위로했다.
 
"필승, 여러분의 전우 김현래 올림"이라는 말로 김 중사는 추도사를 마쳤다.
 
앞서 김성찬 해군참모총장도 조사를 통해 "사랑하는 가족들이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왜 한마디 말도 없이 누워만 계시냐"며 "살아서 복귀하라는 간절한 명령을 못들었느냐"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26일 그 날도 여느 때 처럼 파도치는 그 밤 바다에서 당신들은 조국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찰나의 순간이 우리를 이렇게 갈라놓았습니다. 믿기지 않습니다."
 
김성찬 총장은 특히 "백령도에서의 일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우리는 이를 절대 용서할 수 없으며 용서해서도 안되며 잊어서도 안된다"면서 "우리에게 큰 고통을 준 세력들이 그 누구든지 우리는 결코 좌시하지 않고, 끝까지 찾아내어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족들은 영결식이 시작되면서 참고 있었던 눈물을 쏟아내며 오열했다. 고인의 자녀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상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는 엄마에게 손수건을 가져다 주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조사가 낭독되는 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지긋이 눈을 감고 이를 앙물었다.
 
불교·개신교·천주교 순으로 종교 관계자들이 추모 의식을 가진 후 이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의 헌화, 분향이 진행됐다.
 
분향이 끝난 후 영결식의 마지막 행사로 군함들이 해군 최고의 영예인 기적취명으로 떠나가는 46 영령들의 한을 달랬다.
 
영결식이 끝난 후에 해군 군악대 합창단이 용사들이 생전 즐겨 부르던 '바다로 가자'와 '천안함가'룰 합창하는 가운데 영현 운구가 시작됐다. 이날 운구는 천안함 생존 장병 46명이 46용사의 영정을 직접 들고 전우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육·해·공군 의장대 80여 명이 도열한 가운데 대형 태극기와 해군기가 앞서 나가고 이어 46인의 영정과 위패, 훈장, 운구함이 뒤를 따랐다.
 
안보공원을 나와 군항 부두로 이동한 영현과 영정은 정박한 함정에서 울리는 5초간의 기적소리와 함께 함정 갑판에 정복 차림으로 도열한 해군 장병들의 대함 경례를 받았다. 이때 해군 정모와 정복을 상징하는 흰색과 검은색 풍선 3천 개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정들었던 2함대를 영원히 떠난 천안함 46용사의 영현은 이날 오후 3시경 국립대전현충원 사병묘역에 안장된다.
 
[ 2신 : 29일 오전 10시 ]
 
시청광장에 마련된 천안한 46용사 합동 분향소...한마음으로 추모
 

"등교시간 늦겠다" 종종걸음 치면서도 분향소를 찾아 헌화하고 간 여중생들. 바쁜 출근시간을 쪼개 분향소를 방문하고는 잰걸음으로 회사를 향하는 직장인들. 비록 분향을 하고 가지는 못하지만 분향소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이들. 천안함 장병들의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시청광장을 지나는 이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천안함 46장병들을 추모하고 있었다.

 
29일 오전 9시, 출근시간 바로 직전이고, 4월 말 날씨답지 않게 기온이 뚝 떨어진 상황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분향소를 찾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헌화하는 이들이 늘어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는 오전 10시 현재 줄을 서서 헌화하고 있다. 분향소에는 가벼운 묵념 대신 큰 절을 두 번 올린 60대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분향소를 찾아 포스트잇 메모를 남긴 임유진씨는 "용감하게 나라를 지키다가 가셨는데 그 곳에선 부디 편하게 계시라고 적었다"며 "영결식이 오전10시라고 들었는데 그 전에 방문해 헌화하고 싶어서 찾았다"고 말했다. 임씨는 "89년생 이상민 병장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며 "미니홈피를 방문했었는데 이 병장 아버지 회갑잔치에 모인 가족들의 화목한 모습을 보니 많이 슬펐다"고 말했다.
 

분향소 왼편에는 천안함 추모 사진전이 마련되어 있다. 46명의 장병들의 사진이 하나하나 새겨진 판넬에는 "함정근무가 끝나고도 가족적인 천안함에 있고 싶다며 배에 남은 김선화 상병"등 장병들의 평소 모습이 적혀 있었다. 사진전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이들은 흘러나오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분향소 오른편에는 작은 메모에 한 마디씩 적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이미 많은 이들이 메모한 글들로 판넬은 가득 차 있다.
 
해군신병 112기 이상욱씨는 "검푸른 바다에서 거센 파도와 싸우면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한 사랑하는 나의 후배들, 좋은 세상에서 편히 잠드소서"라고 적힌 글을 직접 프린트 해 와 판넬에 붙여 놓았다.
 
국화를 그려넣은 노란 포스트잇에는 "차디찬 바다에서 돌아가셨으니 따뜻한 곳에서 고이 잠드세요"라 적혀 있다.
 

[1신 : 29일 오전 9시]
 
천안함 희생 장병 장례,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진행

 

 

천안함 희생 장병들의 장례가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 안보공원에서 29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해군장으로 거행된다.

 

이날 영결식은 개식사를 시작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 고인에 대한 경례와 묵념, 경위 보고 순으로 진행된다.

 

이후 고인들에게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되고 장의위원장인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의 조사와 천안함 생존자 김현래 중사의 추도사가 있을 예정이다. 이어 종교의식과 헌화 및 분향, 조총 및 기적 취명을 거쳐 폐식사를 끝으로 영결식은 모두 마무리된다.

 

영결식이 끝난 뒤엔 해군 군악대의 '바다로 가자' '천안함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운구가 시작된다.

 

천안함 생존 장병 46명이 직접 운반할 고인들의 영정이 군항부두를 지날 때 정박해 있는 모든 함정이 5초간 기적을 울리고 흰색과 검은색 풍선 3000개를 하늘로 날려 보낸다. 흰색 풍선은 해군의 하얀색 정모를, 검은 풍선은 정복을 상징한다고 해군 측은 설명했다.

 

또 전 함정의 승조원들은 정복 차림으로 함정의 현측에 도열해 고인들에게 마지막 대함경례를 올린다. 운구 행렬이 부두를 떠날 때 모든 함정들은 46용사들에게 '마지막 기적소리'를 다시 10초간 울린다.

 

부대 정문을 통과한 운구행렬은 부대 앞 해군아파트를 지나 안장식이 치러지는 국립 대전현충원으로 이동한다.

 

합동안장식, 오후 3시 대전현충원서 거행

 

 

합동안장식은 이날 오후 3시 국립대전현충원 현충문 앞에서 해군참모총장 주관으로 거행된다. 안장식은 사병 제 3묘역에 조성된 합동묘역에서 개식사, 고인에 대한 경례, 종교의식, 헌화·분향, 조총·묵념, 영현봉송, 하관·허토(흙 한 줌을 관 위에 뿌리는 의식), 성분 순으로 진행된다.

 

한편, 실종자 가운데 시신을 발견하지 못한 산화자 6명의 법률적인 사망시점이 '4월 24일'로 결정됐다. 산화자는 이창기 준위, 최한권 원사, 박경수 상사, 장진선 중사, 강태민 상병, 정태준 일병이다.

 

해군은 "산화자 6명을 '인정사망'으로 하고, 이들의 사망일자는 고 박성균 중사의 시신을 끝으로 실종자 수색작업이 종료된 4월 24일로 하기로 산화자 가족 대표단과 협의를 끝냈다"고 밝혔다.

 

인정사망은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쟁·해난·수해 등으로 사망한 사람이 있으면 이를 조사한 관공서의 사망보고에 의해 죽은 것을 인정하는 일을 말한다.


태그:#천안함, #초계함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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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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