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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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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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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차가웠지만 쑥을 뜯기 위해 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섰다. 논두렁, 밭두렁을 다니며 쑥을 뜯다가 개울가 옆을 지나칠 때였다. 물 위로 떠있는 수풀의 초록색이 어찌나 고운지 사진을 찍으려고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근처에서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가보니 돌다리 밑을 쳐다보고 있었다. 

"얘들아, 여기서 뭐하냐?"
"종이배를 띄웠는데 지금 내려오는지 보고 있어요."

나도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함께 종이배를 찾아보았다. 한참 뒤에야 모습을 드러낸 종이배는 뒤집힌 채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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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가 나무다리 위에선 아이 두 명이 맨발로 점퍼를 밟으며 발을 닦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희들은 추운데 왜 맨발이냐?"
"저 쪽(논두렁)에 걸어오는데 비온 뒤라서 진흙인줄 모르고 밟았다가 빠져서 지금 신발 말리고 있어요."
"바람이 차가운데 젖은 채로 그렇게 서 있다가는 감기 걸리기 십상이다. 얼른 집에 가거라."

나는 햇볕도 없고 쌀쌀한 날에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친구의 흙묻은 양말을 빨고 있는 아이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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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막대기로 종이배를 저으려고 했는데 그만 뒤집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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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빠른 손놀림으로 종이를 접는다. 다시 종이배를 띄우기 시작하니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졸졸졸 시원하게 흐르는 물소리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더해져 봄 날의 감미로운 선율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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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학원에 가기위해 먼저 집에 가려던 아이가 되돌아왔다. 추위에 떨고있는 친구가 마음에 걸렸는지 업고 가려고 온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멘 가방 때문에 친구를 업기가 불편했는지 금방 내려놓는다. 친구를 위해 자신의 등을 내민 아이의 마음씀씀이가 무척이나 기특하고 예쁘다. 등에 업힌 아이는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오는지 행복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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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방을 앞으로 메고 친구를 업었던 아이는 작은 체구에 힘에 부친 탓인지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 그래도 마냥 즐거운지 아이들은 저들끼리 서로 깔깔거리며 웃고 난리였다.

하는 수없이 맨발인 아이는 자신의 젖은 신발을 신으려다 말고 얼른 발을 빼버렸다. 신발을 신고 집에 가긴 가야겠는데 너무 차가운 탓에 몇 번이고 망설이던 아이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를 지켜보던 나는 쑥을 뜯기 위해 갖고 다니던 커다란 비닐을 꺼냈다. 아이의 발을 비닐로 감싸서 신발을 신겨주자, 넘어지지 않기 위해 내 어깨를 손으로 짚은 채 연신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아이 손이 시릴 것 같아서 비닐로 양말을 잡게 하고 옷소매를 손등까지 덮어주며 헤어졌다.

멀어져가는 아이들의 싱그러운 웃음소리를 들으며 잠시 추억에 잠긴다. 초등학교시절, 하교 길엔 신작로로 다니지 않고, 일부러 논두렁이나 들판을 느긋하게 거닐면서 집으로 향하곤 했다.

논에선 고동이나 개구리를 만나고, 밭두렁을 지날 땐 보리피리도 불고, 냇가에서는 발도 씻고 친구들과 검정고무신을 물에 띄우며 놀았는데 돌이켜보면 그 때처럼 행복했던 시절은 없었던 것같다. 

저 아이들도 훗날 오늘을 떠올리며 엷은 미소를 짓는 날이 올까. 날마다 하교길에 자연을 만날 수있는 아이들이 더없이 행복해보이는 하루였다. 


태그:#종이배, #개울가,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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