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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달 8일 충남지역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충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충남여성유권자 선언을 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최근 이날 기자회견을 사전집회신고를 하지 않아 집시법에 위반된다며 관계자들에게 출석요구서를 발부했다.
 지난 달 8일 충남지역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충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충남여성유권자 선언을 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최근 이날 기자회견을 사전집회신고를 하지 않아 집시법에 위반된다며 관계자들에게 출석요구서를 발부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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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중부경찰서가 최근 천안여성회, 충남여성장애인연대, 민주노동당 등 관계자 4인에게 각각 출석요구서를 발송했습니다.

민주노총충남본부 등 충남지역 여러 시민사회단체 및 정당 관계자 등이 대전에 있는 충남도청 앞에서 벌인 '102주년 세계여성의 날 기념 기자회견'에 대해 '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수사하겠답니다.

마침 저는 그날 기자회견 취재를 위해 현장에 있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은 '3·8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여성유권자선언을 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여성정책 실현을 제안하고 촉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들은 멀리 충남 천안 등에서 기자회견을 위해 한 시간이 넘게 달려왔지만 앞서 같은 장소에서 열린 다른 기자회견이 다소 늦게 끝나는 바람에 20분 가량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약 10여 명이었습니다. 당시 찍은 사진을 보고 헤아려보니 정확히 12명이네요.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여성과 남성이 모두 일자리를 가지면서 아이를 양육하고 부모를 부양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며 정부와 지자체에 각각 대책을 제안했습니다. 정부에는 ▲ 퍼플잡(Purple Job) 도입 중단 ▲ 출산지원금으로 일관된 저출산대책 중단 등을, 충남도에는 ▲ 여성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위한 지원 대책 마련 ▲ 여성일자리 안정화 정책 시행 ▲ 성폭력예방 및 구제대책 마련 ▲ 공공보육시설 확충 등을 제안했습니다.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여성정책 관련 제안을 충남도청에 전달했습니다. 기자회견문 낭독 등 회견을 마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모두 15-20분 정도로 기억됩니다. 이처럼 여느 기자회견장과 다를 바 없었던 지극히 평범하고 평화적인 모습이 이날 기자회견의 전부였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으로 충남도청을 방문한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거나, 기자회견장을 일탈해 집단 행동을 해 논란을 벌인 바도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기자회견은 언론의 자유와 관련된 인간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이 까닭없이 집시법 위반 혐의를 두고 출석통지서를 발부한 한 데는 말도 안되는 자의적인 기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법당국은 기자회견은 '실내'에서 진행하는 것이 관례라고 못박고 있습니다. 옥외에서 진행되는 기자회견은 일반 사람들에게 의견을 전달하고자 하는 효과를 노린 '집회'라는 논리입니다. 따라서 실내에서 제한 없이 허용되고 있는 기자회견과는 달리 옥외기자회견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전 신고'를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즉 '옥외 기자회견=집회'이고 사전 집회신고를 하지 않은 기자회견이기 때문에 열 이든, 백 이든 '불법'이라는 논리입니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단체와 행사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기자회견'이라는데 경찰만 '집회'라고 우기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충남도청 측에 기자회견을 하겠으니 실내 공간을 빌려달라고 했다면 대여해 줬을까요? 멀리 시군에서 기자들이 있는 대전에 위치한 도청으로 달려왔는데도 집회신고를 해야만 기자회견을 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법을 무시한 기본권 침해 아닐까요? 

따지고 보면 국토해양부장관 등 정부 관료들의 옥외 기자회견은 매우 흔한 일입니다. 4대 강 사업과 관련 금강변을 돌아보면서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내고 금강변에서 언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기도 합니다. 세종시 수정논란과 관련 세종시 건설현장을 기자들과 둘러보며 사방이 펑 뚫린 옥외에서 기자회견을 하기도 합니다.

사법당국의 논리대로라면 정부관료들 또한 일반 사람들에게 의견을 전달하고자 하는 효과를 노린 '집회'에 해당합니다. 그런데도 사전 집회신고를 하지 않은 정부관료들과 정치인들의 옥외 기자회견을 집시법으로 처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모든 공권력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전제로 행사돼야 합니다. 자의적 판단으로 법률을 들이대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유린하다면 이것이야말로 법 질서를 유린하는 것입니다. 경찰이 엄연한 '기자회견'을 '집회'로 둔갑시켜 의사표현 방식까지 규제하려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태그:#기자회견, #집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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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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