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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 국민 건강보험 제도는 국민들에게 건강검진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는 암 등의 질병을 조기 발견하여 조기 치료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의도이다. 국민들의 건강관리와 관련하여 사전예방 비용을 강화함으로 전체적인 비용도 줄이고 건강증진도 꽤하는 전략이다.

미국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는 재무상담 서비스를 의료보험 서비스에 비유하기도 했다. 자신의 건강상태를 스스로 진단하고 진단결과에 따라 처방할 수 없는 것처럼 재무적 의사결정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전문영역으로 보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서울시에서는 복지재단을 통해 서울 지역 저소득 시민들에게 재무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상담 서비스를 처음 접한 시민들은 쓸 돈도 없는데 관리할 돈이 어디 있느냐며 냉소했다. 그러나 막상 상담을 받은 후 적은 소득의 상당부분이 적절히 소비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득이 낮다는 불안 때문에 공공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취약계층이 사보험에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기도 하다. 통신비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휴대전화를 지나치게 사용함으로써 통신비가 소득의 10%를 차지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주는 용돈도 늘 미안하다는 마음 때문에 불규칙하나마 적지 않게 지출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체계적으로 돈을 쓴다면 지금의 복지 제도 하에서도 저축과 소비의 균형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돈을 쓰는 데에도 우선순위를 결정해라

여기서 저소득 계층이 돈을 잘 못 쓰는 것을 개인의 문제로 탓해서는 안된다. 저소득층 뿐 아니라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한정된 소득을 합리적으로 지출하지 못한다. 돈이란 누구에게나 한정된 자원이고 늘 부족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빠듯한 소득일 수록 여러 필수지출에 고른 배분을 하는 균형 잡힌 예산 수립과 자금 집행이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의 많은 사람들은 돈을 쓰는데 있어 의사결정 과정 없는 충동 소비에 익숙하다. 거기에 지독한 경제적 결핍증까지 갖고 있다. 저축 이야기나 소비 의사결정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쓸 돈도 없는데'라고 냉소한다.

그러나 상당수의 사람들의 소비 내용을 들여다 보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거나 불필요하기까지 한 곳에 쉽게 돈이 빠져나가고 정작 중요한 재무 사건에는 돈이 없는 재무적 불균형을 갖고 있다. 중산층의 경우 저축을 하더라도 이미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면서 금융비용을 낭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저소득층의 경우 저축이 거의 전무하다.

저축 하나 없이 소비 지출 하는 것은 미래의 재정적 위험을 늘린다. 결국 냉장고 속에는 유통기한 지난 식재료가 있지만 2년 후의 전세자금 인상을 준비하지 못한다. 정수기나 비데와 같은 전자제품이 집안 가득하지만 전기요금을 연체하고 가족들과 여유있는 여행 한 번 하지 못한다.

돈이란 시간과 마찬가지로 한정된 자원이다. 시간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일과 소중한 일,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 일 등으로 우선순위를 정해 의사결정을 내린다. 돈의 사용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함과 가족의 욕구를 반영한 소중함, 급한 재무사안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해서 우선순위를 정해 돈을 써야 한다. 이런 일련의 의사결정이 재무관리이다.

재무관리를 통한 효율적인 자원배분은 소득의 크기가 작은 환경에서도 소비 지출의 만족을 극대화 시키고 장래에 돈 쓸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심리적 안정과 저축을 통해 돈을 쓰게 될 것이란 기대심을 늘린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동기충족 예상이론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면 여행을 가는 당일보다 여행가기 전날이 행복하지 않은가. 저축을 통해 돈을 쓰는 것은 만기가 되어 그 돈을 사용하게 될 재무사건을 상상하면서 동기가 충족될 것이란 예상 때문에 행복해 질 수 있다. 같은 돈을 벌어도 어떤 이는 저축까지 하면서도 즐겁게 돈을 쓰는 반면 어떤 이는 늘 빚에 쫓기기도 한다. 이런 차이가 벌어지는 것은 바로 평소의 돈을 관리하고 소비, 저축을 하는 의사결정 능력의 차이에 있다.

재무적 의사결정을 돕는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무적 의사결정 능력이 취약하다. 게다가 지금의 경제 환경은 보통 사람들에게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하는 헷갈리는 함정들이 많다. 이제는 전문가를 통해 재무적 의사결정 도움을 받아야 할 현실이다. 즉 의사로부터 정확한 진단을 받은 후 약을 구매하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이다.

특히나 저소득층의 경우 정부에서 지원받는 생계비가 넉넉하지 않다. 빠듯한 지원금으로 조금이라도 만족스런 경제 생활과 미래 재정적 자립을 위한 긍정적인 동기를 형성하기 위해서라도 포괄적인 재무상담이 절실하다.

그러나 재무상담을 진행할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무상담사는 보험사나 금융회사 소속이거나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포괄적인 양질의 재무상담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들로부터 재무상담을 받고 불필요한 보험만 많이 가입한 사례도 자주 접한다.

세금을 통해 막연히 생계비와 생애 필수 비용 지원만을 하는 소극적인 복지 서비스에서 지원금을 재정 자립의 든든한 토대로 활용하도록 돕는 재무관리 복지서비스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 그런 복지 서비스를 적절히 제공할 재무상담 복지사도 적극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질병을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함으로써 사회적 비용도 줄일 뿐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이치다.

사금융의 극단적인 위험이 일상에 침투하고 과도한 금융판매로인해 위험에 직면한 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복지 영역에서 재무관리 서비스를 다뤄야 할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태그:#재무상담 복지서비스, #포괄적 재무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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