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반년 전에 이미 예약해 놓았던 '뉴욕 가정상담소' 자원봉사 훈련에 드디어 참가하게 되었다. 한국 '여성의전화'처럼 미국 내에서 한인대상 가정 폭력 24시간 핫라인을 운영하고 있는 상담소에서 야간 상담 자원봉사자를 훈련하는 과정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영어도 잘 못하는 외국인이 NYU에서의 늦깎이 석사과정과 두 아이의 엄마 역할을 혼자 해내는 것만으로도 늘 시간과의 전쟁인데, 왕복 4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에 7주간의(매주 한 번) 자원봉사 훈련에 성실하게 임할 수 있을까?'. '과연 지금 남의 나라의 한 귀퉁이에서 근근이 버티는 상황에서 이러한 사회 참여를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내적인 망설임 같은 것이었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면서 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주저함은 옆에 앉은 여성 26명의 희망 섞인 열정에 힘입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자기소개를 하는시간에 어느 분은 교회에서 맡은 직분이 있어 많은 분들을 상담하게 되는데 가정 폭력 상황에 처하신 분들에게 어떤 유리한 조치를 알려드려야 할지 몰라 구체적으로 배우고자 오셨다고 했고, 어떤 분은 불자로서 절에서 동료 불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왔다고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준비도 없이 갑자기 이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된 동기를 말해야 했다. 당황한 나는 늘 좌우명처럼 생각하던 말을 했다. "우리 자녀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어서…." 너무 뜬구름 잡는 말처럼 들렸으리라. 사실 집을 나서면서 인간적으로 계산하고 주저했지만, 정말 남들 앞에서 이렇게 멋지게(?) 말을 해 놓고 나니까 더욱 더 책임감이 들었다.

나는 11살과 9살인 남매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남자와 여자는 고추와 꽃잎(우리 집에서 부르는 여성 성기의 애칭)이 다르게 생긴 것 말고는 별로 다를 게 없다고.남자는 어떠해야 하고 여자는 어떠해야 라고 편을 가르듯이 나누어진 세상의 법칙들은 나름대로 그렇게 된 이유야 그 사회의 역사와 상황에 따라 있겠지만,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모든 사람이 똑같이 존귀하듯이 남녀도 구별은 하되 차별은하지 않아야 한다고.

그리고 우리가 뭔가 긍정적 변화를 위한 일을 하지 않으면서 막연히 세상이 바뀔 거라 믿고 그 바뀌어 가는 세상에 좋은 점들을 누리고만 살고 만다면, 마치 지구가 우리에게 주는 많은 장점을 이용하기만하다가 2~30년 후 지구에 닥쳐 올 흉측한 미래를 '나 몰라라'하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먼 옛날, 여성이 투표권을 가지지 못했을 때 여성도 동등한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고 길거리에 나가 시위를 하고 감옥에 갇혀서도 단식투쟁까지 했던 그 얼굴도 모르는 조상들 덕에 우리는 지금 당당히 투표도 하고, 심지어 대통령 후보로도 출마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실 이론적으로는 모두들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바쁜 생활 속에서 늘 자신만의 변명이 있어 '무임승차' 하며 살아가게 된다. 물론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원봉사 교육 중에 가정폭력의 그늘에서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보내는 여성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고 들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이혼에 대한 낙인 또는 아빠 없이 사는 아이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나 신고할 경우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 때문에 스스로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고, 그들을 그 지옥으로부터 나올 수 있도록 사회차원에서 도울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가정폭력은 정말 무서우리만큼 대를 물려 나타나기도 하고, 습관이나 마약처럼, 죄인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회가 적극 개입을 해야 한다는것이었다. 가정폭력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는 것이 이 심각한 과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라는 설명이었다. 국가가 적극 개입을 해야 하고 또는 우리 중에 작은 영웅이 나서서 리더십을 발휘하여 조직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힘을보태야 실마리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쉽게 예를 들어 보자. 얼마 전 한대학원 수업의 발표를 준비하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Half the Sky Live'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보고 알게된 내용이다. <뉴욕타임스> 언론인 부부가 쓴 책 'Half the Sky'에 나온 한 아프리카 소녀의 실제 사례를 취재하듯 만든 독립영화이다.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라는 나라에선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을 위한 납치와 강간abduction and rape' 이라는 인습이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13~14살 정도의 결혼할 나이가 된 처녀를 마음에 둔 16~19세 정도의 소년이 친구 몇 명과 함께 그 처녀를 납치해서 강간하고 며칠 후 그 소녀의 집에 소년의 가족 대표가 찾아가 "당신 딸은 이미 신부로서의 가치를 잃었으니 우리 아들과 결혼시킵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데려가려 하지 않을 것이요"라고 협박하여 소녀 측 가족이 소 한 마리라도(평균 결혼 지참금은 소 10마리 정도라고 한다)받고 승낙을 하면 결혼이 이루어지는 관례이다.

그렇게 결혼하게 되면 강간한 소년은 전혀 처벌 받지 않고 그녀의 남편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나라에 많은 결혼이 이런 식으로 성사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다. 한국 같았으면 그 소년의 집에서 전 재산을 다 준다고 해도 동의할 부모가 없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에 '시집 간다'는 구시대적인 표현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해도 신부를 대금을 지급하고 데려오고 보내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은 내 모국에 없으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에티오피아는 수십 년 동안행해져 온 이러한 관례를 어떻게 깼을까? 2002년에 에티오피아의 Woineshe tZebene Negash이라는 한 소녀가 결혼 지참금없이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서 자신을 납치해 강간한 놈과의 결혼을 완강하게 부인했고, 그 소년은 마음대로 일이 되지 않자 친구들과 또 다시 그녀를 강간하고 협박했다. 이미 그 사회의 모든 사람이 그녀가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영영 결혼하지 못하게 될 거라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혼자 살면 되지 그게 무슨 위협이 될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독신을 선언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선진국들과는 다르게 19세 이전에 거의 모든 여성이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와 비슷한 문화 속에서 게다가 혼전 순결을 목숨만큼 중요시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전통에 따르자면, 평생 낙인 찍혀 결혼을 못할 것이라는 것은 무서운 협박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소녀의 아버지가 그녀의 결혼 거부 의지를 도와 법정에 서게 했다. 판사는 이 소녀에게 여러 차례 그 소년과 결혼하면 그 소년은 무죄를 인정받을 것이고 결혼이 성사되지 않으면 그 소년은 강간죄를 인정받아 징역을 살게 된다고 설명을 하였지만, 이 소녀는 그와 결혼하기를 거부 했고 그 소년은 10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그녀가 강간을 당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에서도 판사가 '그녀가 사건 당시 처녀였다는 증거가 없어서 강간이라고 볼 수 없다'는 등의 법에 근거하지도 않는 말을 하는 바람에 소녀는 더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고 했다.

이 소녀는 이러한 말도 되지 않는 관례가 자기 나라에 빨리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을 했고, 뜻 맞는 친구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자신의 사례를 소개하며, 여자들뿐 아니라 남자들도 설득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이 영화에서그 소녀가 강간을 이유로 결혼해 살고 있는 어느 부부에게 "결혼생활이 행복하냐?"라고 물어봤을 때 여자가 "전혀 행복하지 않다. 자꾸만 저 사람에게 당했던 그 때가 생각나서 좋아질 수가 없다" 라고 하자 그 소녀가 그 남편에게 다가가 지금이라도 아내에게 사죄하라고 제안한다.

그래서 그 남편이 결혼 전 자신이 결혼하기 위해 저지른 강간에 대해서 겸연쩍게 사죄를 한다. "강간해서 미안해"라고 그리고 그의 아내는 카메라 앞이라서인지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 활짝 웃는다. "그래, 이젠 괜찮아졌어"라고 말하면서. 이 다큐멘터리를 볼 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들이 내가 사는 이 지구상에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생각에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이 소녀가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인 후에, 에티오피아에선 커다란 반향이 일어났고 결국에 강간 후 결혼이 성사가 되면 무죄를 인정받던 이 법은 2004년 7월에 폐지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소녀는 인권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대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이 어린 소녀에게 커다란 빚을 진 셈이다.그녀 덕분에 자신들의 딸들의 미래에 자신들을 강간한 놈을 남편으로 맞아들여 평생을 그 기억 속에 시달리며 그놈의 아내로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내 숨통을 막히게 한 심각한 사례가 있다. 바로 '명예 죽임(Honor Killing)'이라는 것이다. 중동의 많은 나라와 파키스탄 등등 전 세계적으로 1년에 족히 5000여명의 여성들이 '명예(Honor)'라는 이름으로 아버지나 남자 형제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 죽임의 이유를 알면 더 기가 막히다. 이슬람 종교 윤리상 여자 직계가족 이외의 남자들 앞에서는 눈을 제외한 얼굴과 머리, 몸 전체를 가려야 하는데 만일, 이를 어기고 외간남자에게 얼굴을 노출했다든지, 가족이 정해준 사람과의 결혼을 거부하거나 그런 이유로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가출을 했을때, 남자와 데이트를 했을 때, 강간을 당했을 때도 명예 죽임의 이유가 된다고 한다.

일부 여권주의 단체에서는 '명예 죽임(Honor Killing)'은 그 말 자체가 '명예를 위해 죽임(Killing for Honor)'를 정당화시켜주고 있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대신에 '명예 살인(Honor Murder)'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강간당한 여성은 결혼 전에 처녀로서의 가치를 잃었다는 이유로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오빠나 아빠에 의해서 칼로 목이 잘린다고 하니, 죽기 직전에 이 여성들은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차라리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났더라면…'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의 여성단체들은 "오빠가 나를 죽이려 해요. 나 좀 살려주세요. 나는 잘못한 게 없어요. 단지 사랑하지도않는 사람과 결혼하라는 가족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에요"라는 전화를 많이 받고 있고 거의 그런 전화는 그녀가 이승에 남긴 마지막 목소리가 된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기준으로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가족의 명예를 망쳤다고 해서 가족의 대표가 칼을 뽑는다. 그리고 존속 살인죄로 법정에 선다. 그러나 대부분의 명예살인 가해자들은 '문화적 관례를 인정(cultural defense)'한다는 명목으로(사람을 죽였지만, 문화적 사회적관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뜻) 고작해야 살인에 대한 최저형인 5년형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가족회의에서 칼을 잡을 사람을 정할 때 종종 가장 어린 남자(미성년자)를 골라 시킨다고 한다. 미성년자는 처벌이 비교적 약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에 대한 설명이었다.

명예 살인에 관련된 비디오 자료에서 정략결혼을 피해 가출했다 돌아온 자기 여동생을 밤에 몰래 들어가 칼로 목을 벤 그녀의 오빠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 듯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애는 정말 예쁘고 착했죠, 좋은 아이였어요. 나는그 애를 사랑했고,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그 애를 사랑하고, 지금도 그리워합니다. 하지만 그 애는 죽어야 했습니다. 그게 그녀의 운명이니까요. 여자가 가족을 떠나서 혼자 따로 행동했다는 것만으로도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녀의 이웃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오빠는 가족이 결정한 것에 따라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독자는 아마 이쯤에서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한국은 정말 축복 받은 땅이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60년 만에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 오늘날의 세계 속의 한국이 되었다.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빚쟁이다.

우리가 이만큼 이나마 숨을 쉬고 살 수 있게 된 것은, 이미 고인이 된 조상 중에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낳은 사회를 위해서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 대졸은 기본에 박사,석사를 했을지언정 고작 해야 월급 100만 원을 받고도 늘 희망을 이야기하는 운동가들, 비가 오나 눈이오나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는 알려지지 않은 봉사자들, 늘 누군가에겐 욕을 먹으면서도 인터넷에 바른말을 올리는 양심 논객 등등 우리는 늘 그들의 용기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바쁜 가정사와 또는 돈과 명예를 좇느라 바쁜 이 순간에 빚지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 단체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떠오르는 사람이나 단체가 있다면, 여성단체든, 환경단체든, 시민운동 단체든 바로 전화를 걸어보자.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점심으로 '삼계탕' 먹을 돈으로 '김밥'으로 먹고서 아낀 귀한 돈 5000원으로 조금이라도 빚을 갚는 심정으로 그 희망의 단체에 보내 묵묵히 후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단체들은 5000원 후원자 수백명을 수억원을 기부한 기업체 회장님보다 어떤면에선 더 환영할 것이다. 힘이 된다면 종종 자원봉사도 하고, 의견개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밥을 먹었어도 삼계탕 먹은 것 이상의 희망과 우리 사회에 대한 기대가 우리들 맘 속에 자랄 것이라고 믿는다. '잔인한 4월'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우리들의 작은 노력으로 '희망의4월'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뜻에서 필자도 다음주 목요일엔 주저함 없이 우리 호기심 많은 남매에게 "엄마 사회에 빚 갚으러 간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가정폭력 상담 자원봉사'하러 가려한다.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 이 빚을 또 갚아 줄 거라고 믿으며….

덧붙이는 글 | 대학원 과정을 들으면서 여성관련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아 수집하게 된 자료나 정보들을 오마이뉴스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좀 자세하게 적었습니다. 혹 제가 적은 내용에 관심 있으신 분은 댓글이나 메일을주시면 자료 출처나 좀 더 자세한 정보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태그:#가정폭력, #명예살인, #남녀평등, #강간, #여성운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