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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결혼한 권씨는 출산 후 지인을 통해 재무상담을 받고 남편과 함께 40만원의 보장성보험과 50만원의 저축성보험에 가입했다. 보험료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가장의 조기사망 위험이나 암 발병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덜컥 겁이 나기도 했거니와 사랑스러운 자녀를 보면서 가장으로서 그 정도는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후준비에 대해서도 소득 없는 노후 40년 동안 자녀에게 짐이 돼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와 아직 자녀가 어려서 지출이 많지 않을 시기에 최대한 준비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준비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설계사가 권한 상품은 중도 인출 기능이 있어서 나중에 주택자금이나 교육자금이 필요할 때 꺼내 쓸 수도 있다고 하니 미래 준비를 위한 저축이라고 생각하고 힘들더라도 불입을 하기로 결정했다.

 

가입할 당시에는 90만원의 보험료가 감당할 만했지만 둘째를 출산하면서부터 현금 흐름이 깨지기 시작했다. 둘째 자녀를 위한 어린이보험에 가입하면서 보험료 부담은 더욱 늘어났고 육아비의 증가로 저축이 불가능해졌다. 거기에 첫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현금 흐름은 완전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보험료가 저축액의 6배

 

2009년 생명보험협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구당 평균보험료가 월 41만5000원이라고 한다. 이는 생명보험만을 가지고 조사한 자료이며 손해보험까지 포함하면 가구당 보험료는 월 평균 50만원 수준이 된다. 이는 조사대상 가구(2000가구) 평균 월 소득의 15% 수준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평균이 15%고 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가구까지 고려하면 상당수의 사람들은 소득의 15%를 넘는 보험료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가계저축률은 2008년 기준으로 2.5%다. 저축액보다 보험료가 6배나 많은 것이다. 이는 저축은 안해도 보험은 꼬박꼬박 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짐작케한다. 물론 저축을 안하는 원인이 단순히 보험료 과다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축보다 보험료가 많아진 배경에 보험회사의 역할이 있었다는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재무상담을 미끼로 행해진 보험상담으로 인해 저축률이 감소하는 와중에도 보험가입률은 증가해왔기 때문이다.

 

2000년대는 1990년대에 비해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다. 평생 직장 개념이 무너지면서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과거에 비해 훨씬 커졌다. 버는 돈만으로는 안 된다는 불안에 재테크 열풍이 불었으며 자녀를 좀 더 경쟁력 있게 키워야 된다는 불안에 사교육 열풍이 불었다. 이러한 불안 속에 보험회사가 재무설계 서비스를 앞세워 뛰어들면서 사람들의 재무구조는 더욱 악화되기 시작했다.

 

보험회사는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활자금으로 최소 1억은 준비해야 한다', '암에 걸리면 수천만원', '자녀 교육비는 1인당 2억', '노후자금으로는 10억이 필요하다'는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가장이 준비해야 하는 가족의 생활자금은 '보장자산'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험을 자산으로 둔갑시켜 판매를 했으며 자녀 교육비 부담에 노후자금을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린이 변액유니버셜보험이라는 기존의 변액유니버셜보험에 '어린이'란 이름만 덧붙여 자녀를 위한 펀드상품인 것처럼 판매를 했다. 

 

거기에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인해 금융회사 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어서 보험회사에서도 이제는 저축과 투자상품을 판매한다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재무상담이라는 이름으로 마치 사람들의 일상에 필요한 토털 금융 솔루션을 보험회사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광고하기 시작했고 보험회사는 더 이상 보험만 팔던 과거의 보험회사가 아닌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것이 일상 생활에 불안감을 느껴 제대로 돈 관리를 해야겠다는 사람들의 니즈와 맞아떨어지면서 보험회사의 재무설계가 일반에게 알려졌다. 이로 인해 재무관리의 기본은 위험관리라는 보험회사의 말에 자연스레 저축보다는 보험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이 된 것이다.

 

특수 위험만 강조하고 일상 위험 무시하는 엉터리 재무상담

 

보험 위주의 재무상담으로 인해 조기사망, 질병, 장수 등의 위험에 대해서는 충분히 대비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인생 전반의 재무적인 위험은 더욱 커졌다. 재무적인 위험은 보험회사가 말하는 것 말고도 수없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경기가 어려워져 소득이 감소하기도 하고 맞벌이를 하던 가정은 맞벌이 중단으로 소득이 반토막 나기도 한다. 또 자녀의 성장으로 인해 지출이 증가하기도 한다. 이사나 자동차 교체 등으로 인한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 단위의 목돈 지출도 발생하며 가전제품 교체나 가족 여행 등으로 인한 소소한 목돈 지출도 수시로 발생한다.

 

이러한 일상의 재무적인 위험을 무시하고 일찍 죽고, 아프고, 오래 사는 특수 위험만 강조하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재무적인 위험은 모두 빚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더구나 향후 지출 증가를 고려하지 않고 현재 시점의 가입 여력만 보고 가입시킨 보험으로 인해 시간이 갈수록 재무구조는 악순환 구조에 빠지게 된다.

 

사례의 권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조기사망과 노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둘째 아이가 출산하게 될 경우의 출산비용 지출과 육아비 증가에 대한 것에 대한 이야기가 전달되었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자녀가 성장하면서 자녀로 인한 지출의 증가에 대해서 언급되어졌어야 했다.

 

이러한 일상의 재무적 위험들이 재무상담이라는 이름으로 등한시되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비가 부족해 마이너스 통장에 손을 대고 목돈이 필요할 때는 약관대출을 받아서 쓰게 만든다. 권씨는 결국 기존에 가입했던 보험의 대부분을 손해를 감수하고 해약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가입했던 보험이었지만 결국엔 힘들게 번 돈을 잔뜩 까먹고 빚만 늘어나 현실이 더욱 답답해지게 된 것이다.

 

재무관리의 기본은 보험회사에서 말하듯 위험관리가 아니다. 일상의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위험관리도 필요하지만 이 또한 일상의 수입과 지출의 균형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현재 불입하고 있는 보험에 대한 조정만 이뤄져도 가계 경제의 현금흐름을 개선시킬 수 있고 미래의 중요한 재원들을 차곡차곡 만들어갈 수 있다.

 

보험회사는 위험관리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기존의 재무상담과 보험영업이 가계의 부실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소득대비 과다한 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는 가구들의 현금흐름 개선을 도와야 한다. 최종의사결정은 소비자가 한 것이라고 소비자에게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보험상품의 특성상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소비자들은 보험회사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해서 가입의사 결정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들의 적극적인 정보제공과 가입권유가 없었다면 과도한 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는 소비자들이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장은 고액의 보험료가 돈이 될지는 모르지만 소비자들의 현금흐름을 왜곡시킨다면 결국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모든 기업들이 그렇듯이 보험 회사도 마찬가지로 소비자들이 살고 신뢰를 얻어야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될 수 있다.

 


태그:#재무상담, #보험회사, #가계부실, #착한재무주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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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돈에 관해 올바른 시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모두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행복을 소비하는 사람이 되는 그날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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