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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지난 10년 최고의 책> 특별기획을 진행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전문가와 시민기자, 누리꾼 패널들이 뽑은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을 기본 자료로 삼아, 선정자문위원회의 자문 그리고 누리꾼 투표 등을 거쳐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 10권을 선정해 최종 결과를 5월중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와 더불어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 서평 기사를 공모해 좋은 기사로 선정된 경우 소정의 특별원고료(사이버머니)를 지급합니다. [편집자말]
"인간보다 못한 금수의 하나인 새들조차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를 아울러 가지고 시원스럽게 하늘을 날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우주와 생물의 생존의 원리가 아닐까? 왼쪽 날개로만 날아다니는 새를 보고 싶다. 마찬가지로 오른쪽 날개 하나로  날아다니는 새를 보고 싶다. 그런 외날개 새를 한 번 볼 수 있으면 죽어도 원이 없을 것만 같다."

여당 지도부가 전방위로 좌파 비난전을 펴는가 하면, 정부의 강압적 세력 교체도 좌파 척결의 논리로 강변하는 요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리영희 선생의 책에 나도 모르게 문득 문득 눈과 손이 간다.

선생이 글에서 강조하던 '어느 한쪽 날개만으론 시원스럽게 날 수 없음'이 실감나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20년이 흐른 지금에 다시 통용되는 역설과 아이러니 속에서 역사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한 치 앞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과거 '빨갱이'란 주홍글씨로 반대론을 압살하던 시대로 회귀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쪽으로 나는 새들이 대한민국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한길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한길사)
ⓒ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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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부자 절에 좌파 주지를 놔두면 되겠느냐?"
"이제 정말 10년 좌파 정권의 뿌리를 마지막으로 뽑아낼 수 있는 기회다."
"법원이 폭력을 용납하는 것은 판사 개인 소신을 넘어서 폭력을 용인하는 극좌." 
"김재철 MBC사장이 큰 집에 불려가 쪼인트 맞고 MBC 좌빨 80% 척결했다."

MB 정부와 여권 실세들의 좌파 이념전은 경계조차 없이 우리 사회 전 부분으로 확대되고 있다. 좌파타령은 정치·경제·사회정책 등 전통적 좌·우의 기준을 넘어 교육·언론·종교·사법까지 무차별적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 한쪽으로 나는 새들이 대한민국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그것도 오른쪽 날개만으로. 좌파타령에 열심인자들을 리영희 선생은 일찍이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인류가 수천 년, 수만 년에 걸쳐 창조한 지식과 축적한 경험은 정치나 이념적으로 말해도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하고 무쌍하다. 그리고 그 사이는 끝없이 풍부하다. '우'의 극단에 서면 우주의 모든 것이 '좌'로 보이게 마련이다. 조금 거리가 멀면 모든 것이 '극좌'로 보일 수밖에 없다. '좌'도 그 극에 서서 보면 모든 것이 '우'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극'의 병리학이다."

이것만으로도 모자라 선생은 "벽에 걸려 있는 시계 불알을 오른쪽 끝에 못 박아  보았더니 시계는 죽어 버렸다"며 "진자나 저울의 바늘도 중앙에 돌아와 서려면 좌와 우를 조금씩 왔다 갔다 하면서 편안하게 제자리를 잡는 것 같다. 그리고는 느긋이 안정을 누린다"며 좌·우 균형을 주문했다. 왜 그토록 좌·우 균형에 집착했는지는 당시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이 잘 웅변해 준다. 

선생이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건 8·15 이후 근 반세기 동안 오른쪽은 신성하고 왼쪽은 악하다는 위대한 착각 속에 살아온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늘 "이제는 생각이 조금은 진보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새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며 자주 반문하곤 했다.

억압과 부조리에 맞서 펜의 힘으로 '반세기의 신화'를 일군 선생은 70~80년대가 지나고 우리사회가 최소한의 민주화를 거둔 90년대 이후 "내가 할 역할은 다했다"고 줄곧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책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고도 했다.

연로하신 데다 건강이 악화돼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탓도 크지만, 어느 정도 좌·우 균형 잡힌 날개를 그는 마침내 우리사회에서 본 듯하다. 그러나 선생이 침묵하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 상공은 다시 희뿌연한 '이념색'으로 뒤덮여 가고 있다.

"퇴행적 이념전 심화...통합·인권·진보의 시계바늘 역주행"

리영희 선생
 리영희 선생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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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와 여당의 '좌파' 이념전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좌파 비난전을 펴는가 하면, 정부의 강압적 세력 교체도 좌파 척결의 논리로 강변하는 흐름이다. 그 결과 한때 정권의 위기를 넘기 위해 앞세웠던 중도실용은 용도폐기되고, 퇴행적 이념전에 한국사회의 통합·인권·진보의 시계바늘은 역주행하고 있다. 이념과잉의 사회, 국론분열의 양상을 가속시키는 상황이다. - <경향신문> 3월 24일 4면.

"이 나라는 오른쪽은 신성하고 왼쪽은 악하다는 위대한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리영희 선생의 지적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기사다. 더불어 지식인으로서의 역할과 고통 앞에서 선생이 보여준 정신의 크기와 무게가 느껴진다. 왜 우리가 여전히 그의 글을 읽어야 하는지도 보여준다.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정신을 일깨워 진실을 보게 했던 선생의 모든 글들이 12권의 저작집으로 완성되어 후세에 길이길이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지난 2006년 출간된 <리영희 저작집>(한길사)은 1권 '전환시대의 논리'에서부터 2권 '우상과 이성', 3권 '80년대 국제정세와 한반도', 4권 '분단을 넘어서', 5권 '역설의 변증', 6권 '역정', 7권 '自由人, 자유인', 8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9권 '스핑크스의 코', 10권 '반세기의 신화', 11권 '대화', 12권 '21세기 아침의 산책' 등 12권으로 구성됐다. 

비판적 지식인으로 이름이 높았던 선생의 <전환 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등의 저작들은 군사 독재 시절엔 책을 가지고만 있어도 구속감인 '금서'였다. 하지만 당국의 눈을 피해 손에서 손으로 돌려 읽히며 수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고, 거짓인 우상으로부터 참된 진실인 이성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맹목적인 반공 이데올로기를 상식의 눈으로 비판한 책 <우상과 이성> 서문엔 이런 글이 눈이 시선을 끈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어 그것에서 그친다. 우리에게는 현실의 가려진 허위를 벗기는 이성의 빛과 공기가 필요하다. 진실은 한사람의 소유물일 수가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 없이는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진실을 찾는 열정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 정치인과 지식인 등 모두가 새겨야할 대목이다. 한국전쟁부터 군사독재 시절에 걸쳐 통역장교, 기자, 교수 등으로 활동한 선생의 글은 이처럼 당대를 후비고 도려내 파냈다. 때문에 그의 책들은 많은 이들에게 '의식의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선생을 기리는 것은 그의 사상과 논리가 탁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각자의 사상과 논리를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MB시대, 리영희 선생의 메시지가 더욱 크고 무거워진 이유는? 

저작집 12권.
▲ 리영희 저작집 12권.
ⓒ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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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지성의 필발로 많은 이들의 의식을 깨워 온 그가 저작집 12권 발간을 끝으로 절필을 선언한 것은 못내 안타깝고 아쉽다. 그러나 1994년 처음으로 펴낸 뒤 2006년 저작집에 다시 담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글은 정부·여당의 뜻에 반하는 종교·교육·언론, 심지어 법원의 판결도 '극좌·좌파'로 규정되는 2010년 대한민국 사회에 크고 무거운 메시지를 던져준다. 

민주주의를 되찾고 수호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는 메시지도 젊은 세대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당시 철권통치의 이념적 프레임에 걸려 든 지식인, 재야 정치인 등 수 많은 사람들의 모진 탄압이 어느 정도 심했는지를 <우상과 이성> 책에서 잘 나타냈다. 

"그곳은 진정 인간을 넣어둘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시체를 넣는 관이 아니라 지난 세월, 비인간적인 독재정권 아래서 수천, 수만의 정치수, 사상수, 양심수, 확심수들이 처넣어져서 신음해야 했던 이 나라의 교도소와 형무소의 감방 독방의 모습입니다. 이 시간에도 수없이 많은 이 나라의 자랑스러운 꽃봉오리들이 그런 관 속에서 그렇게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구치소를 '관'으로 표현한 그는 "서대문형무소(구치소)의 만남은 무슨 잘못된 인연인지 언제나 영하 10도 이하의 혹한에서였다"며 "그런 탓인지 무악재 고갯마루에 비껴 서 있는 우중충하고 음산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를 회상하면 그 추위부터 생각난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책에서 끝내 이런 주문도 했다.

"판사님, 검사님들이 이 여름의 그 관 속이 싫다면, 댁에 있는 냉장고 속에 한 시간만 들어가 있다가 나와도 됩니다. 왜냐구요? 여름에 구더기가 산책하는 감방은, 겨울에는 밖의 온도가 영하 10도 일 때 안의 온도는 영하 3도 안팎이랍니다."

그리 오랜 세월도 아니다. 1980년대에 쓴 글들이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되찾는 데는 긴 고통의 시간과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이 필요한 암울한 시대였음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그래서 그랬을까. 선생은 좌·우 균형과 진실을 찾는 노력의 필요성을 유난히 강조했다. 그의 수많은 글들에서 묻어난다.

'극의 병리학'이 만연된 이 시대, 선생의 고언이 더욱 간절하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리영희 선생이 지난 2005년 11월 16일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관한 시민언론학교에 강사로 참석해 특강을 실시했다.
▲ 전주에서 열강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리영희 선생이 지난 2005년 11월 16일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관한 시민언론학교에 강사로 참석해 특강을 실시했다.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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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악화되어 제대로 거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지난 2005년 11월 지방에서 열린 시민언론학교에 강사로 참석해 "좌·우의 어떤 정치·이데올로기적 권력이든 진실을 은폐·날조·왜곡하려는 흉계에 대항해서 진실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른 모습대로 세상에 밝혀내는 것을 글 쓰는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진실'은 균형 잡힌 감각과 시각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균형은 새의 두 날개처럼 좌와 우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상태"라며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맞는 것이고 인간사유의 가장 건전한 상태"라고 선생은 덧붙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는 어떤가. 전교조를 매개로 교육현장을 좌·우 양분하는 것은 물론 아동성폭행 등 범죄의 책임도 좌파 교육 탓으로 떠넘기고 있다. 4대강 사업 등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언론·종교계 인사들은 좌파 꼬리표를 붙여 적출을 정당화하고 있다. 정부·여당의 뜻에 반하는 세력은 모두가 '극좌·좌파 비호'로 규정하는 희한한 세상이 됐다.

문제는 그런 세월이 수십 년 지속되면서 극우파들 스스로 그런 왜곡을 스스로 사실이라 믿게 된 것이다. 이제 한국 극우파의 눈에는 상식과 양식을 가진 사람은 모두 좌파다. 그들이 종교인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행동을 한 명진 스님을 '좌파 주지'라 말하거나, 급진적인 사회운동가들에게서 체제내적 운동을 한다고 비판받는 박원순씨를 '빨갱이'라고 말하는 건 악의적인 왜곡이 아니라 그들의 진심인 것이다. - <한겨레신문>, 25일 김규항 칼럼.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 인식능력과 지식·사상과 판단력에서 좌․우 균형 잡힌 이상적 인간과 사회를 목표로 삼고 염원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MB시대, '리영희'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하는 대목들이다. 특히 교육·언론·종교·사법 등 모든 시민의 사상·양심의 자유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영역에서 올바른 가치가 부정되고, 인간 내면까지 통제하려 드는 무서운 '극의 병리학'이 만연된 이 시대에 선생의 고언은 더욱 간절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0년 최고의 책 기사공모 글입니다.



태그:#리영희저작집,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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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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