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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못 참겠어. 이젠 정말 머리를 잘라야 할 것 같아. 머리가 기니까 더 빨리 지저분해지고, 더러움도 더 잘 타는 것 같아. 머리 감는데, 샴푸랑 물도 더 드는 것 같고…."

이에 나는 '그래봤자, 짧은 머리인데, 무슨… 뭐가 더 많이 든다는거야…'라고 속으로만 생각하며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한국엔 '야한 생각을 자주 하면 머리가 빨리 자란다'는 말이 있어."
"뭐야? 그거 진짜야?"
"아니 그런 말이 있다고…."

그렇게 남편을 한바탕 놀리고 생각해보니, 남편 머리를 자른 지도 벌써 한달 반이 넘어간다. 곱슬이라 머리가 자란 것이 아주 도드라져 보이진 않지만, 옆머리와 뒷머리가 벌써 웃자라 별로 단정치 못해 보이기는 했다.

'그래, 오랜만에 머리 자르는 솜씨 좀 연마해 보자.'

독일로 이사하면서 챙긴 물품 1순위, '미용가위'

머리 자르기 전(왼쪽)과 후(오 른쪽)의 모습 길었던 머리를 깨끗하게 자르고 나니, 남편 머리통이 햇도토리 마냥 이쁘다.
▲ 머리 자르기 전(왼쪽)과 후(오 른쪽)의 모습 길었던 머리를 깨끗하게 자르고 나니, 남편 머리통이 햇도토리 마냥 이쁘다.
ⓒ 김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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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어느 날 오후, 욕실에 자리를 마련해 오랜만에 남편 머리를 잘랐다.

뾰족한 남편 정수리부터 시작해 옆머리, 그리고 뒷머리 순으로 길이를 맞춰 잘라 나갔다. 이때, 자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른머리 길이가 위 아래 양옆이 같게 사방으로 맞춰가며 자른다. 이는 처음 남편머리를 자를 때 시어머니께서 알려주신, 머리를 쉽게 자르는 요령이다. 근데, 이 방법은 곱슬머리에게만 해당될 것 같다. 한국인 특유의 빳빳한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을 이렇게 잘라 놓았다간, 아마 그 머리통에 대고 고슴도치가 형님하자고 할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시어머니께서 남편 머리를 잘라주셨는데,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 이래로 이제는 내 담당이 되었다. 혹시 내가 전직 미용사가 아니냐고? 아니, 이제껏 어디서 머리 자르는 법을 따로 배운 적은 없다. 다만, 한국을 떠나올 때 준비해 온 비장의 무기를 여지껏 믿어왔을 뿐.

남편은 우리가 연애할 때부터 결혼하면 자기 머리는 내가 잘라줘야 한다며 은근한 압력을 담은 부탁을 자주 했었다. 그래서, 자연히 미용가위는 독일로 이사하면서 내가 챙겨가야할 품목 1순위였고, 떠나기 전 나는 남대문 미용도매상가에서 '3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준전문가용 미용가위를 샀다.

남편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균형이 맞질 않아, 자르다 자르다 나중에는 군입대를 앞둔 사람의 머리처럼 '거의 까까머리'로 만들기도 했었다. 물론 머리를 밀때 흔히 쓰는 일명 바리깡이라는 머리자르는 기계가 아닌, 온전히 미용 가위 하나만을 사용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그것도 1시 간 반 이상이 걸려서.

지금은 크게 흠잡을 데 없이 잘 자르지만, 머리 자르는데 자신감이 붙어서 '이젠 아주 잘 자른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여전히 자르는 데 걸리는 시간도 꽤 길어서 보통 한 40분은 걸린다.

내가 기계로 머리를 자르지 않는 이유

나를 도와주는 도구들 왼쪽부터 마지막 갈무리를 위한 면도칼, 한국에서 장만해온 일반 미용가위, 선물받은 솎음 미용가위, 빗
▲ 나를 도와주는 도구들 왼쪽부터 마지막 갈무리를 위한 면도칼, 한국에서 장만해온 일반 미용가위, 선물받은 솎음 미용가위, 빗
ⓒ 김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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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을 운영하시는 외숙모 말로는 곱슬머리 자르는 것은 일도 아니란다. 물론 곱슬인 남편 머리를 잘라놓고 보면, 이리저리 컬이 있는 머리카락 덕에, 웬만해선은 괜찮게 보이긴 한다. 층만 지지 않게 깎는다면.

다행히 남편이 그다지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 내가 자기 머리를 아주 이상하게 만들어 놓지 않는 한, 보통 내게 감사해하고 만족해 한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미용도구는 준전문가용 일반 미용가위, 전문가용 솎음가위, 납작빗, 면도칼 그리고 머리 자를때 몸에 두르는 보호수건, 이렇게 다섯 가지다.

솎음가위는 작년에 한국에 다니러 갔을 때 외숙모께서 주신 선물로, 써보니 참 유용하다. 일반 가위로 대충 길이만 맞게 잘라 놓고 이 솎음가위로 끝을 조금씩 자르면서 다듬어주면, 자르고 난 후 머리카락이 한결 자연스러워 보인다. 면도칼은 마지막에 목 위의 뒷머리와 구렛나루를 깔끔하게 다듬는 데 사용한다.

거의 마무리 단계로 머리카락을 다듬고 있는데, 어느새 깜박 잠이 들었는지 남편의 고개가 살짝살짝 앞으로 숙여진다. 깨울까 하다가, 그 반동이 그리 크진 않아 그대로 뒀다. 외려 혹시 잠이 깰까봐 내 손길이 더 조심스러워진다. 누군가 내 머리를 잘라줄 때 가끔씩 몰려오는 졸음이 얼마나 달콤한지 나도 알고 있다. 미용실에서 그러고 있자면, 좀 민망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뭐 어떠랴 지금은 우리집인 걸.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도 이 사람은 내가 자기 머리를 잘라주길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럴 땐 내가 기계 없이 가위로만 머리를 잘라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윙윙대는 머리자르는 기계를 사용했다면, 아마 남편이 이리 쉽게 잠에 빠져들지는 못했겠지.

햇도토리 같은 남편 머리통, 참 예쁘네

자르고 난 머리카락 신문지에 잘 모았다가 퇴비 만드는데 보태준다. 염색도 파마도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머리카락 역시 시간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 자르고 난 머리카락 신문지에 잘 모았다가 퇴비 만드는데 보태준다. 염색도 파마도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머리카락 역시 시간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 김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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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나는 머리자르는 기계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기계를 쓰면 아마 머리 자르는 시간이 좀 더 짧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가위질을 고수하는 이유는, 손으로 남편 머리칼을 손에 쥐어가며 슥슥 잘라가는 과정이 나름대로 재미있어서, 이 즐거움을 기계에게 내어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 순식간에 쓱~ 잘라지는 기계를 사용하다 잘못해서 남편 머리를 또 '거의 까까머리'로 만들게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 됐다! 어디 보자… 마음에 들어?"
"에이… 그건 머리감고 말리고 난 다음에 봐야 알지…. 고마워."

머리 잘라줘서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고 하지만, 평가는 나중에 꼼꼼히 보고 내리겠단 말이다.

근데 나는 척 보니 대략 감이 온다. 이번엔 꽤 잘 잘라졌다고. 기껏해야 1년에 10번도 채 안 되게, 그것도 남편 머리만을 잘라온 내 솜씨이긴 하지만 말이다.

머리를 깎아 놓고 보니, 막 딴 햇도토리 같은 게 남편 머리통이 참 예뻐 보인다. 그래서 머리를 감는 남편 등 뒤로 한 마디 해 줬다.

"에고, 당신 머리 새로 자르니까, 새(도토리)신랑됐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 다음과 MY-ECOLIFE.NET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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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저널리스트, 쓰레기를 양산하는 조형물 대신 인생을 조각하는 작가(소로우의 글에 감화받아), 2001년 비건채식을 시작으로 ‘생태토양학자’인 독일인 남편 다니엘과 함께 독일에서 지속가능한 텃밭 농사를 지으며‘ 날마다 조금 더 생태적으로, 생태 순환의 삶을 살기’에 힘을 다한다. 올 봄 냉장고와 헤어진 어느 부부의 자급자족라이프, ≪생태부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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