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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뭐 있어? 한방이야' 어디서 많이 듣던 문구. 이 말은 '로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인생역전이라는 문구로 간판을 장식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로또. 2천원에서 천원으로 가격이 내려가 좀 더 친서민(?)적이 된 로또. 평생 살아봐야 '돈벼락' 맞을 일 전혀 없는 서민들에게는 그야말로 '돈벼락' 맞을 유일한 희망이 된 로또. 이 로또가 대박의 꿈을 좇는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결혼 후, 남편은 가끔 주택복권을 사왔다. '이것만 당첨되면 내 집 마련의 꿈은 이루어진다'는 허황된 믿음은 언제나 '꽝' '꽝' '꽝' 연속 허탕의 결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럼, 그렇지. 우리 복에 무슨"이라 자조하며 흥미가 떨어지고 자연스레 복권을 사지 않았다.

그러다 인생역전을 내세우며 2002년 로또가 화려하게 등장했다. 주택복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당첨금에 대개의 국민들은 한 번쯤 관심을 기울였고, 이런 저런 보도들이 줄을 이었다.

대개의 봉급쟁이들이 그렇듯이 힘이 들 때 '당첨만 된다면' 하는 희망을 품게 해 로또의 인기는 날로 더했다.

남편이 산 로또복권들
 남편이 산 로또복권들
ⓒ 양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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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역시 "나, 로또 되면 그 날로 사표 낸다"면서 가끔 로또를 샀다. 그러다, 역시나 '꽝, 꽝, 꽝'의 행진이 계속되면 어느새 시들해지고 그러다 또 생각나면 사는, 반복의 연속이다.

다행인 것은 그리 큰 금액을 투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편은 로또를 사면 1000원짜리로 적게는 하나, 보통은 세 개, 많으면 5개를 산다.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사면서 1주일이 즐겁기에 뭐라 말하기가 곤란하다. 날리는 돈일지라도 그만큼의 행복은 로또가 주는 것 같기에.

작년 여름 어느 날, 남편은 평소보다 많은 로또를 사가지고 왔다.

"아, 오늘 로또 3000원어치만 살려고 했는데, 9000원어치 사게 됐다."
"3000원어치 사나 9000원어치 사나 되려면 되고 안 되려면 안 되지. 뭐 하러 그리 많이 사? 그 돈으로 자장면이나 사 먹는 게 남는 거지."
"그게 말이지. 내가 천 원짜리 3장이라고 했는데. 처음 보는 어린 아르바이트생이 3천 원짜리 3장으로 잘못 알아듣고.. 이미 번호는 뽑았고. 하루 알바해서 얼마나 번다고 그걸 물리겠노? 해서, 내가 그냥 달라고 했다."
"그건 당신이 잘했네."

차라리 로또가게를 두어 번 덜 가면 되지 아무리 실수라지만 어떻게 아르바이트생에게 물리겠나 싶었다.

마음을 곱게 써서 그런가, 그 중 하나가 번호 6개 중 4개를 맞추어 4등을 했다. 인간 욕심 끝없다고 아래 위 숫자를 보니 조금만 자리이동(?)만 하면 1, 2등도 문제가 없었다. 그 때, 처음으로 1, 2등도 가능한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확 일었다. 로또 1등 될 확률이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거늘 순간 착각의 늪에 빠지기도 하는 구나 싶었다. 허긴 남편 왈 "1등하면 사표부터 쓴다"는데 1등 되고 사표 쓰느니, 안 되고 그냥 회사 다니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더 행복할지도.

로또를 사고 처음으로 4등 당첨금
 로또를 사고 처음으로 4등 당첨금
ⓒ 양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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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떼고 5만 얼마의 당첨금을 받은 남편은 기분 좋아했다. 만난 사람에게, "나, 로또 됐다"며 자랑 늘어 놓았다. 상대는 "얼마요?"하며 눈이 동그래진다. "5만원" 남편이 답하면 이내 흥분을 가라앉힌 그네는 "좋겠어요. 어떻게 하면 되요? 난 아직 5000원 짜리도 된 적이 없어요"한다. 남편은 "마음을 곱게 써서 그런가봐" 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흐뭇해했다.

당첨된 후, 그렇게 한 단계 업이 되어서 5000원치를 여러 번 사더니만... 그 후로 계속된 '꽝'의 행진에 또 어느새 시들해져있다. 언제 또 발동이 걸릴지 모르지만 요 정도는 애교로 봐줄 만하다. 웃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중독'이 되면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그리되면 현실을 망각한 채 대박을 꿈꾸며 한탕주의에 빠지는 우를 범하게 될 테니까.

4등에 당첨된 적이 한 번 있다고 하나 수입, 지출 주판알을 튕기면 아마도 로또를 구입한 비용이 훨씬 많을 것이다. 아마도 로또를 사는 국민들 중 99.99%는 괜한 돈만 허공에 날아가리라. 허공에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수익금 중 일부가 공익적인 목적에 쓰이니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할 수준이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로또의 당첨만 바라보고 많은 돈을 쓰면서 '인생역전'을 꿈꾸는 것은 어리석은 꿈을 꾸는 것이리라.


태그:#로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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