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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대학생'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필자는 '단무지'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아마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이 단어의 의미를 알 것이라 생각한다. 단순, 무식, 지랄의 앞글자로 이루어진 이 단어는 필자의 대학생활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고백하자면, 필자 역시 대학시절에 전자공학을 전공한 이공계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협소한 전공공부에만 매달려서 교양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이공계 대학생의 모습을 '단무지'라는 유쾌한(?) 단어로 표현한 것일 테다. 그런데 무엇에 대한 결핍은 항상 그것에 대한 갈증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이공계 대학생의 교양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증명한 사건이 지난 1월말 고려대학교에서 있었다.

고려대학교 이공계 학술동아리 'CUBE'가 개최한 제1회 <3차원 지식포럼>에는 2박3일간 연인원 700여 명의 이공계 대학생들이 참여해서 대학가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인문/사회/과학을 아우르는 '3차원' 지식을 내세우며 '자연계' '인문계'로 갈린 지식의 분단과 불구화를 극복하려는 이들의 노력에 이공계 대학생들은 엄청난 호응으로 화답한 것이다.

제1회 <3차원 지식포럼> 강연 장면
 제1회 <3차원 지식포럼> 강연 장면
ⓒ 박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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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자 진중권, <과학콘서트> 저자 정재승,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 등 쟁쟁한 학자와 저명인사들의 강연이 2박3일간 쉴 새 없이 펼쳐진 제1회 <3차원 지식포럼>을 준비하고 기획한 '실세' 박재익씨. 그는 현재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과학기술학을 전공하고 있다. 지난 2월 4일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근처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이공계가 바뀌어야 대학이 바뀝니다."

<3차원 지식포럼>을 성공적으로 치러내서일까? 당시 행사의 기획단장을 맡은 박재익씨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확신에 차 있다.

이공계 학술동아리 ‘CUBE’ 대표 박재익씨
 이공계 학술동아리 ‘CUBE’ 대표 박재익씨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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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진취적으로 나아갈 때는 항상 이공계가 앞장을 섰습니다. 반면에 IMF 이후 대학이 침체될 때 가장 먼저 반응이 온 곳도 이공계입니다. 대학 문화의 현실을 보여주는 파라미터(parameter)가 이공계죠."

대학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공계를 바꿔야 한다는 공대생 박재익씨. 그는 고려대학교 이공계 학술동아리 'CUBE'를 중심으로 70명의 기획단을 모집했다. 그 기획단이 주체가 돼서 이공대생 700명을 모아 2박3일간 포럼을 진행한 것이다. 어떻게 참가자를 모집했을까?

"포럼 제목을 무엇으로 할지 의논하다가 몇 가지 의견이 나왔는데요, 그 중에 <인테그랄 지식포럼>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인테그랄 아시죠? 미분 적분 할 때 나오는 기호요, 그런데 다행히 그 제목은 기각되었지요. 하하하. 인터넷에 홍보를 하고 학교 내에 포스터를 붙였습니다. 방학이라서 인터넷 홍보의 효과가 좋았던 것 같은데요. 사실 강남이나 종로의 학원가에서 플래시몹을 하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효과가 없을 것 같다고 해서 접었죠. 요즘은 대학생들이 방학 때 다 학원에 다닙니다. 노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요. 영어 학원, 한자 학원,  심지어 스피치 학원까지. 사회분위기 때문에 학생들이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박재익씨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니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홍보방법이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3차원 지식포럼>이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수많은 이공대생들이 인문학과 사회학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입수한 3차원 지식포럼 최종평가 보고서에는 이러한 이공대생들의 요구가 잘 드러나 있었다. 참가자 중 절대 과반수의 사람들이 '통합적 지식습득'을 위해 <3차원 지식포럼>에 참여했다고 대답했으며, 거의 모든 학생들이 제2회 <3차원 지식포럼>에도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연합 학술동아리 'CUBE'의 상징. 동아리가 추구하는 목표가 잘 형상화되어 있다.
 연합 학술동아리 'CUBE'의 상징. 동아리가 추구하는 목표가 잘 형상화되어 있다.
ⓒ C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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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CUBE'라는 학술동아리를 확대 강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 활동을 통해 이공계 대학생이 현재 가지는 한계를 뛰어넘어보자는 것이 취지인데요. 실제로 학기 중에 정기적인 독서세미나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자체 진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기 중에는 주로 토론 위주로 가고, 방학 때에 체계 잡힌 세미나 등을 진행하고 포럼을 개최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겨울방학에는 학술지를 발간할 계획도 있고요."

박재익씨를 인터뷰 한 지 한 달도 더 지난 3월 10일, 드디어 인터뷰 기사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박재익씨 특유의 무덤덤하고 간결한 말투 때문에 글로 풀어내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머리를 쥐어 뜯다가 몇 가지 추가로 질문하기 위해서 박재익씨에게 전화 연락을 했는데, 마침 3월 13일 토요일이 이공계 연합 학술동아리 'CUBE'의 창립총회란다. 고려대에서 출발한 'CUBE'가 전국적인 연합 학술동아리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필자 자신이 전자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학을 변화시키기 위해 이공대생이 나서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왠지 모를 의무감에 연세대학교 제1공학관에서 열린 창립총회를 방문했다. 그 곳에는 수십 명의 이공대생들이 모여서 'CUBE'라는 이름하에 회칙을 만들고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하는 민주주의의 과정을 밟고 있었다.

무덤덤하고 간결한 말투 때문에 인터뷰이로는 빵점인 박재익씨. 제1회 <3차원 지식포럼>, 그리고 연합 학술동아리 'CUBE'의 창립 등, 그는 자신이 한 말을 하나씩 실현하고 있었다. 그래서인가보다. 이날 'CUBE'의 대표로 선출된 박재익씨의 재미없는 연설이 그 어느 정치인의 솜사탕같은 달변보다 신뢰가 갔던 이유 말이다.

연합 학술동아리 'CUBE' 창립총회 모습
 연합 학술동아리 'CUBE' 창립총회 모습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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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가 바뀌어야 대학이 바뀝니다."

2월 4일에 고려대학교 근처의 한 카페에서 빵점 인터뷰이 박재익씨가 무뚝뚝하게 내뱉은 이 말의 무게감을, 필자는 3월 13일에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주변 분들중에 단순히 취업준비와 스펙쌓기를 넘어서 도전적인 삶으로 희망을 일구어나가는 20대 30대의 청년이 있다면 이메일 reltih@nate.com 로 추천해주세요.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태그:#박재익, #이공계, #CUBE, #학술동아리, #이공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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