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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기씨, 저녁 회식 있으니 같이 오시래요."

주간조는 수요일엔 오후 5시 작업을 마치고 퇴근합니다. 10일, 같은 업체 다른 일자리에서 작업하는 젊은 하청 노동자가 와서 회식이 있다며 같이 가자고 합니다. 저는 어디서 하는지 몰라 그와 함께 퇴근했습니다. 회식 장소는 명촌 한 오리고기 전문점. 가보니 이미 여러 사람이 와 있었습니다. 우리 하청업체 전체 회식이 아니라 이번에 정리해고 대상자만 모였습니다.

정리해고자가 받기엔 너무 과한 '위안상'

금요일까지 일하면 출입증을 반납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일자리도 영영 사라지는 것입니다.
▲ 근로계약 해지통보와 출입증 금요일까지 일하면 출입증을 반납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일자리도 영영 사라지는 것입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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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접시에 2만 원~3만 원 하는 오리 고기를 시켜 놓고 있었습니다. 오후 5시 30분경 모두 모였습니다. 사장님도 오시고 소장님도 오셨습니다. 정리해고 위안상 치고는 우리에겐 과분한 상차림이었습니다. 비싸서 우리같은 서민은 오기가 힘든 고급 식당이었습니다.

사장님과 소장님이 많이 먹으라며 계속 시켰고 우린 공짜니까 그 비싼 오리 고기를 여러 접시 시켜 먹었습니다. 배불리 먹고 된장국도 먹고 밥도 먹었습니다. 그런데,

"말 꺼내기가 참 어려운데 어쩔 수 없습니다."

업체 소장님이 서류철을 열더니 문서 두 장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한 장은  근로계약 해지통보서였고 한 장은 희망퇴직서였습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올 것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갑자기 먹던 오리고기 맛이 쓰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술을 못 마셔서 술은 안 먹고 한숨만 쉬고 있는데 옆에 있는 젊은 노동자들은 쓴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옆에서 보기에도 속이 많이 상해 있음이 짐작되었습니다.

모두 볼펜으로 희망퇴직서를 작성했습니다. 저는 희망 퇴직서를 받은 후 잠시 뒤로 미루어 놨습니다.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참 난감했습니다. 다 쓰고 있는데 안 쓸 수도 없었습니다. 업체 소장님은 말로는 희망퇴직서라는데 어려운 한자로 세 글자만 있었습니다. 저는 한자를 잘 몰라 옆사람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옆사람이 '사직서'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직 사유도 이미 인쇄로 씌어져 있었습니다.

사직사유: 도급계약 종료로 인한 근로계약 해지.

이 사직서를 쓰는 순간 내 일자리는 사라집니다.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안 쓰면 공정이 공사에 들어가 일거리가 없어지고, 업체 사무실로 출근하면 50일 후 자동 강제해고가 될 것'이라고 지난번 업체 반장이 알려준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면 퇴직금도 줄어들고 여러모로 손해를 보게 된다고도 했습니다. 올라오는 슬픔을 억누르고 사직서에 이름과 주민번호를 쓰고 서명을 했습니다.

"이게 빨리 원청에 올라가야 퇴직금도 나오고 고용보험도 타먹을 수 있어요."

머뭇거리는 저와 두어 사람에게 소장님은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사직서를 쓰면서 생각나는 게 '오늘 이 만찬이 위로의 만찬이 아니라 최후의 만찬이구나'라는 생각이 마음 깊이 들어 서글펐습니다.

"나가더라도 계속 연락해요. 우리도 일자리 찾아보고 생기면 연락 할테니까."

당분간 밤엔 잠을 설칠 것 같습니다

업체 사장님은 그렇게 말했지만 저에겐 들리지 않았습니다. 젊은 사람들이야 몇 개월 비정규 일자리가 있으면 부를 수도 있겠지만 저처럼 나이든 사람을 다시 부르겠나요?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먹는 것도 거의 다 먹고 일처리가 다 끝나자  업체 소장님은 이제 일어서자고 했습니다. 우린 밖으로 나갔고 업체 사장님은 일일이 수고 했다며 악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아직 2~3일 남았으니까 원청에 밉보이는 일 없도록 마무리 잘 해줘요."

그건 우리를 위한 말이 아니라 업체 사장님 자신을 위한 일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웃으면서 알겠다고는 했지만 뒷맛이 영 씁쓸한 게 아닙니다. 그렇게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걱정입니다. 중학교 2학년 딸이 있고 초등학교 3학년 아들도 있고 저랑 동갑내기 아내도 있는데 말입니다. 당장은 2년치 퇴직금과 지난달 급여로 생활하고 또 6개월 정도 고용보험 타먹으며 버틴다지만 그 전에 다른 일자리 못 구하면 정말이지 큰일 입니다. 당분간 밤엔 잠을 설칠 것 같습니다.


태그:#정리해고, #희망퇴직, #사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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