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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에 사는 학생들은 등록금이 저렴하고 명문으로 손꼽히는 '주내 대학'인 버지니아대학(UVa)에 가기를 원한다. 매리언도 합격자 발표일인 4월1일을 기다리고 있다.
 버지니아에 사는 학생들은 등록금이 저렴하고 명문으로 손꼽히는 '주내 대학'인 버지니아대학(UVa)에 가기를 원한다. 매리언도 합격자 발표일인 4월1일을 기다리고 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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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대, 펜실베니아 주립대(PSU), 버지니아대(UVa), 버지니아 공대(VT)

미국 버지니아주 해리슨버그시에 있는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졸업반인 매리언이 지원한 대학들이다. 매리언은 이들 대학 가운데 최근 PSU와 VT로부터 합격 소식을 들었다. 다른 대학은 오는 3월 말이나 4월 초가 되어야 합격 여부를 알 수 있다.

아직 합격자 발표가 모두 끝나지 않아 매리언이 어느 대학으로 진학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중산층에 속하는 매리언네는 아버지가 조종사이고 어머니는 물리치료사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매리언의 아버지는 딸이 '주내 대학(in-state college)'으로 진학할 것을 권유하고 있었다. 마가렛 역시 이런 부모님의 뜻을 거스를 생각은 없다. 그녀 역시 '주외(out-of-state) 대학'에서 충분한 장학금을 주지 않는 한 그냥 주내 대학으로 진학하려고 마음 먹고 있으니까. 

우리집도 마찬가지다. 오는 6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게 될 작은애도 주내 대학만 지원을 했다. 작년에 큰애가 겁도 없이 주외(out-of-state) 대학에 지원을 하고 합격을 했지만 결국 비싼 등록금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것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랬던지라 작은애는 아예 주외 대학은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내 대학들도 등록금 인상을 발표하고 있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공포의 등록금 인상안... "또 올려?"

미국 대학들이 속속 합격자 발표를 하고 있다.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상당수 대학들은 최종 발표를 오는 3월 31일, 또는 4월 1일로 예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발표를 끝낸 대학에서는 합격자들의 웃음을 뒤로 한 채 등록금 인상안을 발표하고 있어 학생과 학부모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예일대의 경우, 작년보다 4.8%($2300) 인상된 4만9800달러(한화 약 5600만 원)의 등록금 인상안을 발표했다. 이번 인상률 4.8%는 재작년의 2.2%, 작년의 3.3%에 비해 다소 높아진 수치이지만 대학 측은 이번 인상률이 아이비리그 가운데 가장 낮은 인상률을 보인 그룹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다. 

텍사스에 있는 텍사스대(University of Texas) 계열 역시 아직 확정된 등록금 인상안은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UTSA(University of Texas at San Antonio)는 학기당 최고 9.2%, 4395달러(한화 약 500만 원)를 더 내야 할 지 모른다는 보도를 내놓았다. 이 대학은 등록금 외에 기타 부대비용도 인상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작년에 80달러였던 주차권이 올해는 105달러, 내년에는 130달러까지 오른다고 한다.

이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등록금 인상률에 대해 벌써 많은 학생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게다가 등록금뿐 아니라 기숙사 비용까지도 인상안이 들먹거려지고 있어 이런 비용이라도 줄여보기 위해 집 근처 대학으로 옮기겠다는 학생도 나오고 있다.

대학 등록금 인상안을 전하는 인터넷 기사에는 예외 없이 화가 난 학생, 학부모들의 댓글이 많이 실리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강력한 국가라는 미국의 교육 제도가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니. 국방 예산을 교육으로 돌리고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해라."
"전쟁과 교도소에 들어가는 돈을 당장 교육으로 돌려라."
"지금도 학자금 대출 때문에 빚에 쪼들리고 있는데 또 올린다고? 이제 더 많은 융자금은 내가 감당할 수 없다. 이번 학기가 끝나면 값싼 대학으로 편입해야겠다. 우리 학교가 좋은 학교이긴 하지만 더 많은 교육비를 감당하면서 큰 돈을 투자하고 싶지 않다."

대학 등록금 인상률은 보통 물가 상승률의 두 배가 된다. 지난 1958년-2001년 사이의 평균 등록금 인상률을 보면 6-9%로 일반 물가 상승률의 1.2-2.1배를 기록했다. 파란 선이 등록금 인상률, 분홍선이 일반 물가상승률.
 대학 등록금 인상률은 보통 물가 상승률의 두 배가 된다. 지난 1958년-2001년 사이의 평균 등록금 인상률을 보면 6-9%로 일반 물가 상승률의 1.2-2.1배를 기록했다. 파란 선이 등록금 인상률, 분홍선이 일반 물가상승률.
ⓒ http://www.finai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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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 줄어든 정부지원... 9년마다 2배로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 판에 왜 대학들은 예년보다 높은 등록금 인상안을 내놓고 있는 것일까. 지난 2월 24일 CNN머니닷컴(CNNMoney.com)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의 많은 공립대학들이 큰 폭의 인상안을 들고 나오는 것은 대학교육을 지원하게 될 주정부의 예산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최근에 이어진 경기 침체 여파로 주정부의 대학 지원 예산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네바다대, 플로리다대, 워싱턴대는 2010-2011 새학기 등록금을 10∼15% 인상할 것이라고 한다. 워싱턴대의 경우는 워싱턴 주정부의 지원이 2100만 달러(한화 약 238억 원)나 삭감되었기 때문에 부족한 예산을 보충하기 위해 결국 등록금을 14%까지 올릴 것을 검토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대학 등록금 인상률을 보면 보통 물가 상승률의 두 배가 된다고 한다. 지난 1958년-2001년 사이의 평균 등록금 인상률을 보면 6~9%로 일반 물가 상승률의 1.2~2.1배를 기록했다. 등록금이 해마다 약 8% 정도 인상되고 있는데 이러한 등록금 인상률은 대학 등록금이 9년마다 2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오늘 태어난 아기가 대학에 입학할 때는 그 비용이 현재보다 3배 이상 될 거라는 얘기다.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등록금 인상 반대시위에서 시위대들이 '구제금융은 은행이 아닌 학생에게'라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등록금 인상 반대시위에서 시위대들이 '구제금융은 은행이 아닌 학생에게'라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있다.
ⓒ LA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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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간 학생·학부모·교직원

AP 통신이 전하는 지난 5일자 뉴스를 보면 각 대학의 등록금 인상 소식에 얼마나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심각한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대학의 등록금 인상과 학교 예산안 삭감안이 학생들의 분노를 자아내 화가 난 학생들이 시위를 벌인 것이다. 더구나 이번 시위는 어느 특정 지역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이루어졌다.

이들 참가자들은 미 전역 32개주 100여 개 대학 캠퍼스와 주 의사당 등지에서 수업을 거부하고 시위에 참가했는데 일부는 극렬한 집단행동에 나서 경찰에 체포되는 불상사를 빚기도 했다. 다음은 각 지역에서 벌어진 시위 소식이다.

▶ 캘리포니아에서는 학생과 교사·학부모·교직원들이 동참한 시위가 발생했다. 이들은 4일을 '공교육 수호를 위한 행동의 날'로 선포하고 대학 캠퍼스와 공원, 정부 청사를 돌며 시위를 벌이고 가두행진을 벌였다. 이들의 손에는 "구제금융은 은행이 아닌 학생에게"라고 씌어진 피켓이 들려 있었다.

▶ 오클랜드에서는 시위대들이 경찰을 피해 오후 5시 전에 간선 고속도로인 I-880으로 들어가 한 시간 이상 고속도로 양 방향을 봉쇄했다. 이 시위로 인해 교통차량이 수 마일 길게 늘어서기도 했는데 경찰은 오클랜드 시청에서 평화적인 시위를 벌인 후 고속도로를 막은 150명 이상의 시위대를 구속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진압을 피해 높은 진입로에서 뛰어내리던 시위 군중 한 명이 중상을 입었다. 

▶ 워싱턴주 올림피아에서는 약 75명의 시위대들이 '근조 교육(R.I.P. Education)'이라고 새겨진 관을 들고 의사당에 도착했다. 이들은 장례식에서 부르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에 이어 시위 노래를 부르며 토론을 방해한 뒤 상원 회의실에서 쫓겨났다.

▶ 위스콘신-밀워키 대학(University of Wisconsin-Milwaukee)에서는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경찰은 이들 가운데 대학 행정실로 진입하려던 학생을 최소 15명 체포했는데 이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일부 시위대들은 얼음덩어리 등을 경찰에 던지기도 했다.

▶ 일리노이 대학(University of Illinois)에서는 200명 이상의 교수와 강사 등이 최근 수천 명의 교직원들에게 강제휴가와 4% 월급 삭감을 지시한 것에 항의하여 '의원들에게 휴가를'이라고 씌어진 팻말을 들고 캠퍼스에서 시위를 벌였다.

▶ UC 데이비스(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에서는 300여명의 학생들이 캠퍼스 근처의 고속도로 진입차선을 막으려고 하는 가운데 학생과 경찰간에 긴장된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시위 진압용 '페퍼 스프레이'를 발사함으로써 끝이 났다. 이 과정에서 한 명의 여학생이 체포당했다.

▶ UC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는 처음 소규모 시위 학생들이 인간 사슬을 형성하여 교문을 막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여 시내 오클랜드로 행진하기 전 스프라울 광장 근처 사거리에서 시위를 벌였다. 시위 학생들은 올해 UC 계열 대학들이 등록금을 30% 이상 인상한다는 소식에 걱정이 되어 현장에 나왔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지역 언론인 <LA타임스> 시위 관련 뉴스에는 이번 시위에 관한 학생들의 의견이 많이 올라왔는데 이들의 시위 명분은 단 하나 '등록금, 너무 올리지 마라'였다.

"지금 우리는 교육은 덜 받으면서 돈은 더 많이 내고 있다. 그래서 이를 항의하기 위해 나왔다." (Jessica Naujoks,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롱 비치)
"우리는 지금 교육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학생수 증가는 더 이상 원치 않는다. 한 강의실에 500명이나 집어넣는 학교도 원치 않는다. 교육의 질이 높아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Desiree Bibayan, 샌프란시스코 주립 대학).
"대출받은 학비를 갚기 위해 그동안 융자도 받았고 장학금도 받았다. 이러저러한 일도 안 가리고 다 해봤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큰 폭으로 등록금이 오르면 누가 나 같은 교육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겠는가."(Roselyn Valdez,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노스브리지 대학원생).
"아버지는 '투잡'을 뛰고 있다. 엄마도 일을 하고 있고. 그분들은 힘겹게 살아가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런데 등록금을 또 올린다고?"( Eugene Pascual, UC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 학생들이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공교육을 보호하라'는 팻말도 보인다.
 캘리포니아 대학 학생들이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공교육을 보호하라'는 팻말도 보인다.
ⓒ NY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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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등록금, 해답은 없을까

대학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을 주도적으로 벌이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UC(캘리포니아 대학) 계열의 대학들은 이미 30% 인상을 선언한 바 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아우성이지만 아놀드 슈워제너거 주지사나 주의원들은 이번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지난 2년 동안 주 재정수입이 크게 줄어 대학뿐 아니라 초등, 중등 교육에도 적자가 쌓여 그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수십 억 달러의 교육 재정을 삭감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UC 계열의 대학들은 최근에 많은 예산 삭감을 참아왔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2008-2009년에는 8억1400만 달러를 줄였고 2009-2010년에는 6억3700만 달러를 줄였다. 대학 측은 올해 주정부로부터 얼마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인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학생 등록금을 30% 인상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2억3700만 달러의 적자가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캘리포니아 주의 대학 재정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그래서 예산이 부족한 대학에서는 강의를 취소하거나 강사들에게 강제 휴가를 주는 등의 노력으로 재정 적자를 메워보려고 하지만 이는 결국 대학 교육의 질 저하를 가져올 게 뻔한 대책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한가지 희소식은 올해 중간 선거가 있는 만큼 주 의회 의원들이 더 많은 교육 예산의 삭감을 꺼려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이 역시 미봉책에 불과하고 교사들의 해고나 학교 예산을 일시적으로 막아주고 있는 연방 경기부양 자금 역시 곧 바닥이 날 것이기에 대학은 앞으로 몇 년 더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래저래 미국 교육계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태그:#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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