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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온 직장, 교보 핫트랙스. 하루의 대부분은 손님들이 골라온 음반·문구·선물용품을 계산하고 포장해 주는 일들로 채워진다. 짬짬이 빠진 물건을 정리하고 부족한 상품은 해당 회사에 주문한다.

 

우리는 2교대 근무를 하는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오전조와 오후 2시부터 밤10시까지 일하는 오후조로 나눈다. 규정상 밤 10시인 퇴근 시간은 정산과 정리를 마치면 10시 반이 훌쩍 넘기 일쑤다. 밤 12시가 넘어 들어온 집. 여유 부릴 틈 없이 자야만 내일 아침 6시에 일어날 수 있다. 밀린 빨래는 돌아오는 휴일에 해야 한다. 베개에 머리 닿기가 무섭게 잠이 찾아온다.

 

휴일이면 친구들을 만나서 사는 이야기도 듣고, 직장상사를 안주 삼아 술도 한잔 하고 싶지만 서로 휴무를 맞추기 힘들다. 서비스 직종의 특성상 주말보다는 평일에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취직한 후엔 친구들과도 멀어진 느낌이다. 지난 주 토요일에는 대학 동창이 결혼을 했다. 친구가 결혼행진 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술자리에서 '사람들은 왜 항상 돌잔치나 결혼식을 주말에 하는 걸까?'라는 소용 없는 푸념을 하는 것도 이젠 오래 전 일이다.

 

엉덩이 건드려도 말 못하는 속사정

 

또 남자손님이다. 남자손님들은 일단 경계심이 먼저 든다. 매장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정말 당혹스럽고 불쾌한 일을 겪었다. 높은 곳에 키가 닿지 않아 사다리를 놓고 물건진열을 할 때였다. 한 남자가 엉덩이를 툭툭 때렸다. 얼굴이 빨개졌다. "만년필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 음반매장에 와서 만년필을 찾다니. 퉁명스럽게 "저쪽이요"라고 했더니 "불친절하다"며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쏘아붙이고 갔다.

 

며칠 뒤 파트 관리자가 모든 직원을 불렀다. 고객들이 인터넷에 쓴 불편사항(컴플레인)으로 한소리할 모양이다. "고객들에게 친절해라. 항상 웃어라. 마음을 다하라…." 오늘도 똑같은 잔소리다.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관리자는 모른다. 겨드랑이 밑을 꾸욱 찌르고 팔뚝을 꽉 잡으며 부르는 손님들이 있다는 것을. 그 사람들의 의미 없는 행동과 말 한마디에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지는 직원들의 마음을 그들은 모른다.

 

손님과 사소한 다툼을 해 직장을 그만둔 동료도 있었다. 그 손님은 한 음반의 작곡가였던 것 같다. 그는 "왜 이 음악이 국악과 같이 있는 거냐? 이 음반을 당장 클래식쪽으로 옮겨라"라고 했다. "자신이 이 음악의 주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동료가 "회사의 방침대로 분류되어 있는 거라 함부로 옮길 수 없다"고 양해를 구해도 막무가내였다.

 

마침 매장을 돌아보던 회사 고위간부가 그 광경을 보고 찾아왔다. 고위간부는 그 작곡가와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직원이 자초지정을 이야기했더니 작곡가는 "이 직원이 불친절했다"며 쏘아붙였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보통 우리가 "죄송합니다"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이번은 그러지 않았다. 몇 주 후 그 직원은 강남점에서 분당점으로, 다시 성남점으로 인사이동되었다. 집이 서울이었던 그는 결국 일을 그만두었다.

  

손님 앞에 무릎 꿇고 마음도 무너지다

 

물건을 훔치는 사람들은 정말 한둘이 아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다. 몇 달 전에는 직장선배인 선호오빠가 물건을 훔치다 달아나는 한 중학생을 잡았다가 팔을 물렸다. 얼마나 세게 물었던지 이빨자국에서 피가 나왔다.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눈을 치켜뜨며 볼멘소리로 대답을 한다. 도리어 화를 내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면 아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건을 훔치는 사람들을 보면 은주 생각이 난다. 지금은 다른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2년 동안 함께 일했던 동료였다. 나이도 같고 말이 잘 통했다. 6개월 전 은주는 한 고등학생을 붙들었다. 물건 정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문구 파트에서 그 아이가 만지작거린 볼펜이 없어졌다고 했다. "확실하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그 고등학생 둘을 불렀다. 정중하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가방을 볼 수 있냐"고 했다. 볼펜은 없었다. 다른 물건이 있긴 했지만 은주가 얘기했던 물건은 아니었다. 우리는 당황했다. 급히 사과했다.

 

다음날 한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그 학생의 어머니였다. 노발대발 소리를 질렀다. "상처받은 내 딸의 마음을 어찌할 것이냐"며 보상하라고 했다. 회사의 방침상 돈으로 보상하기 어렵다 하니 급기야 무릎 꿇고 사과하란다. 반성문도 쓰란다. 은주가 무릎을 꿇었다. 매장은 차갑도록 조용했다. 바닥에는 물방울들이 떨어졌다. 은주만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반성문을 몇 차례나 쓰고, 두 아이의 학교에 각각 100만 원 상당의 책을 기증하면서 사태는 해결되었다.

 

충격이 컸던지 은주는 휴직계를 냈다. 한 달 동안 휴직을 했지만 다친 마음은 여전한 것 같았다. 결국 일을 그만두었다. 동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매장을 나가던 날, 모든 책임과 질책을 짊어진 은주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시디 한 장에 담긴 노동

 

나에게도 단골손님이 생겼다. 물론 온라인으로 음반을 구입하는 것이 오프라인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단골들이 굳이 이곳 매장으로 오는 까닭은 말이 통하는 직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음반을 추천하기도 하고 서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어 더 행복함을 느낀다. 시간이 생기면 깊게는 아니더라도 소소한 일상을 나누기도 한다. "고생한다. 힘내라"는 말에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을 덧붙인다.

 

한쪽 구석에서 후배인 나영이가 박스에 걸터앉아 다리와 발목을 주무른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나영이는 뾰족구두가 아직 익숙지 않다. 익숙하더라도 하루 8시간 동안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서있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신어본 사람만 안다. 대형마트 카운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는 의자가 생겼다고 하는데, 우리는 의자에 앉아 계산을 할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까.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매일매일이 즐겁기만 한 건 아니지만 즐거워지고 싶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주문을 건다. 우리들이 쏟는 감정노동으로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지고 힘을 얻는다면 좋겠다. 그들이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지길, 세상이 조금 더 밝아지길 바란다. 우리가 쏟는 감정의 가격은 얼마일까? 볼펜 한 자루, 시디 한 장 가격에 포함되어 있는 건 아니다. 우리를 스쳐간 사람들의 미소에,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가는 귀가 길에, '열공'하는 학생들의 공책 속에 스며들어 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김현우·이민욱·이창훈씨(교보 핫트랙스 직원)와 한 인터뷰를 재구성했습니다. 

이 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2월호(www.laborworld.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판매직 노동자, #현장일기, #교보 핫트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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