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옛 몰래물 마을에 있는 '용다리새미'와 '엉물'을 지나 그 곁에 솟은 엉물동산에 오른다. 이 엉물동산에서 서쪽으로 해안도로 길따라 아주 조금만 더 가면 표석이 있어 '왕돌'과 '신당'이 있음을 알린다.

표석에 마주 보이는 바다에 앉은 왕돌은 마치 임금이 앉았다던 용상을 빼닮았다. 용상이라고 하니 소별왕과 대별왕이 나오는 '천지왕 본풀이'가 떠올라 몇 자 적어본다.

검은 현무암 덩어리, 임금님 앉은 '용상'처럼 생겨서 '왕돌'이란 이름이 붙었다.
▲ 왕돌 검은 현무암 덩어리, 임금님 앉은 '용상'처럼 생겨서 '왕돌'이란 이름이 붙었다.
ⓒ 이광진

관련사진보기


천지왕은 하늘신으로서 신들의 신, 곧 최고 높은 신이다. 천지개벽이 있은 후 여러 가지 일을 하여 세상을 만들어 가는 와중인, 이른바 과도기였던 때인데, 가장 큰 혼돈은 해와 달이 둘 씩 있었다는 것이다. 낮에는 타 죽고, 밤에는 얼어죽는 이런 고통을 해결할 방도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서 땅 위에 내려와 총맹부인과 하룻밤 보내고 콕씨(박씨) 두 알을 주니 아기 둘을 낳게 된다. '애비없는 자식'이라는 모진 현실 끝에 선 두 아들은 어멍에게 울며 캐묻는다. 그러자 총맹부인은 때가 왔다고 느껴 실토한다.

"느넨  하늘의 아들, 신의 아들이여 게~"

스타워즈의 "내가 니 애비다!!"라는 명대사나 유리왕 이야기가 지닌 뼈대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유리왕은 쪼깨진 칼 반쪽을 들고 길을 나섰지만. 두 아들은 박씨를 심어 자라는 줄기를 타고 하늘 저 높이 오른다.

"기분 째지네!! 하늘을 나는 이 기분!!"

드디어 그 끝이 그 아버지가 앉는 용상의 왼쪽 뿔에 묶여 있음을 알게 된다. 임금은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부재중이다.

밀물때에 본 왕돌, 파도와 함꼐 하니 '용왕님'이 앉는 용상일 거란 생각도 든다.
▲ 왕돌 밀물때에 본 왕돌, 파도와 함꼐 하니 '용왕님'이 앉는 용상일 거란 생각도 든다.
ⓒ 이광진

관련사진보기


"이 용상, 저 용상아, 임재(임자, 주인) 모를 용상이로고나."

용상에 다투듯이 앉아 힘껏 흔들어대니 그만 왼쪽 뿔이 부러져 떨어지고 말았다. 이 철부지같은 행동은 권력욕구를 드러냄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두 아들의 경합을 암시하기도 한다.

결론을 말하면, 쌍둥이지만 그래도 큰아들인 대별왕은 '저승', 소별왕은 '이승'을 차지하게 된다. 소별왕이 꼼수를 써서 그리되었다고 보는데, 이승을 맡고 나서도 대별왕의 도움으로 해와 달을 화살로 떨어뜨려 겨우 해결하는 무능력한 신으로 그려진다. 어찌 요즘 세상과도 닮았을까 싶은 이야기는 그 때문에 '이승'은 모자람이 많고, '저승'은 공명정대하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해석에 머물러 심드렁해지지 말 것. 오히려 그 모자람을 꾸짖는 풀뿌리 민중의 목소리가 더욱 커져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왕돌 앞에는 신당이 하나 있어서 '왕돌앞당'이라고 부른다. 바로 엉물동산에서 이어진 서쪽 절벽 지대를 말하니, 왕돌과 마찬가지로 바닷가의 자연물에 기대어 살아온 옛사람들의 역사가 묻어 있는 것이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엉'이 뜻하는 것처럼 그 아래에 작은 굴이 있어서 이 곳을 '족은궤'라고 부른다. 언덕 아래엔 이런 '궤(굴)'가 여러 군데 있고 어디쯤엔 치성드린 흔적이 남아 있다.

순비기나무에 얽어놓은 실들. 고단한 인생사.
▲ 왕돌앞당 순비기나무에 얽어놓은 실들. 고단한 인생사.
ⓒ 이광진

관련사진보기

조심조심 언덕을 내려서 다가가 보면 언덕 위에 뿌리를 박고서는 절벽 아래까지 그 몸뚱이를 치렁치렁 드리운 순비기나무가 있다. 생명력이 넘쳐난다. 그 몸에다 세월에 때가 타 잿빛으로 보이는 실들이 얽히어 있으니 이 순비기나무가 당나무, 곧 신목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 이름도 귀여운 '서출노비 혹곰이조곰이' , '쇠촐래미 영감참봉또' 로 불리는 이곳 신은 도깨비(도체비)신이다. 제주도가 아닌 바깥에서 온 외방신의 경우 대부분 도깨비신이 된다. '쇠촐래미'는 '서출노비'가 변한 말로 보인다.

'혹곰이조곰이'는 전남 강진에서 왔다고 전하는데 바닷일을 하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 이름에 들어있는 뜻도 궁금해진다. 신이 '곰'처럼 건장한 체구를 지녔다는 것인지, 왕돌앞당인 엉물동산이 흑곰처럼 보인다는 것인지, 아니면 제주도 사투리인 것인지 알쏭달쏭한 것이다.

검은 암석 절벽을 신당으로 삼았다.
▲ 왕돌 앞당 검은 암석 절벽을 신당으로 삼았다.
ⓒ 이광진

관련사진보기


누군가가 맛있는 아이스께끼를 먹고 있으면 '나 호꼼만 주라'라고 하며 부러워하는데, '조금만 주라'라는 뜻이다. 이 뜻으로 썼다면 '혹곰이' 와 '조곰이'는 모두 '조금'이란 뜻을 두 번 써서 강조한 이름이 될 것이다.

이 '왕돌앞당'이 몰래물마을 형성과 더불어 생겨난 것인지 그보다 앞선 세종 때에 나병 환자들이 모시면서 비롯되었는지도 궁금해진다. 앞선 기사에서 살펴보았던 세종실록에 기록된 '한 여인이 '사노'인 일동이라는 사람과 재혼하여 함께 모의해 딸을 떨어뜨린 벼랑'이 이 엉물동산이라고 본다면, 또한 나병 환자들의 계급이 노비일 거라고 가정한다면 이 신당은 당시의 구슬픈 영혼들을 달래는 구실을 했을 것이다.

이래 저래 많은 궁금함을 뒤로 미루고 언덕을 도로 오른다. 차들이 빨리도 달리는 도로를 겨우 가로질러 뭍 쪽으로 재빨리 뛴다. 몰래물 방사탑이 있다고 알리는 표석 너머로 방사탑 두 기가 보인다. 그야말로 돌들의 향연이다. 하지만 이쪽에서는 건너갈 수 없고 좀더 걸어가 샛길에서 빙 둘러 가야 한다. 이 방사탑에 관해서는 전에 기사로 올린 적이 있으니 생략하고, 계속 걷는다. 4전 5기 끝에 찾은 '몰래물 방사탑'

이내 제3사수교라는 다리를 만난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보이는 표석이 지난 연재기사에 나온 '기건 목사의 구질막터'이다. 도로를 또 가로질러 바다쪽 길을 따라 유유히 노니는 갈매기떼를 보며 걷는다. 그리 길지 않은 내리막의 끝에 넓은 접안시설과 작은 포구가 함께 앉아 있다. 허연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이 시설은 유람선 선착장으로 쓰이고 있다. 포구는 흘캐포구, 또는 신사수포구.

물이 빠진 포구에는 정박한 배들이 15도쯤 기울어져 있다. 한 쪽에선 큰 배 밑동 옹기종기 모여 수리 작업이 한창이다. 기다란 유선형의 나무를 배에다 붙이고 있다. 물어보니 속력을 더 낼 수 있는 효과를 얻는다고 한다. 물고기 지느러미 같은 일을 맡는가 보다.

물이 빠진 포구 안쪽 모습이다.
▲ 흘캐포구 물이 빠진 포구 안쪽 모습이다.
ⓒ 이광진

관련사진보기


멀찍이 앉아 바라보다 발밑을 보니 반가운 얼굴이 배시시 웃고 있었다.

"어이구야, 어디서 왔을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자리잡은 해국이다.

여행에 오아시스같은 존재.
▲ 해국 여행에 오아시스같은 존재.
ⓒ 이광진

관련사진보기


포구 옆구리에 붙은 마을은 많지 않은 살림집과 관광.숙박 관련 업소로 이루어져 있다.

방파제 위를 걷는 '손주 업은 할아버지'.가구수가 많지 않은 마을은 포구와 붙어있다.
▲ 포구 풍경 방파제 위를 걷는 '손주 업은 할아버지'.가구수가 많지 않은 마을은 포구와 붙어있다.
ⓒ 이광진

관련사진보기


이 마을 앞 바다엔 예쁜 이름을 지닌 공간이 있으니 들러본다. '골체 올레'라 불리는 이 곳은 그 모양이 '골체(삼태기)' 같아서 붙은 이름이다. '올레에 나가 보라'던 옛날 풍경이 떠오른다. '올레'는 골목길이기도 하지만 이 때에는 '대문 밖'을 뜻하고, 또 그만큼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엎어지면 코 닿을 디'인 것이다.

둑 아래와 사진밖 오른쪽 방파제 사이 공간이다. 밀물때라 이름과 맞물려 생각하기 어렵다.
▲ 골체올레 둑 아래와 사진밖 오른쪽 방파제 사이 공간이다. 밀물때라 이름과 맞물려 생각하기 어렵다.
ⓒ 이광진

관련사진보기


썰물때에는 사람들이 바릇잡이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패션으로 봐선 관광객인 듯도 한데, 허용되지 않은 곳에서 금지하는 해산물을 무단 채취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바릇잡이'는 바닷가에서 보말, 게, 해조류 따위의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작은 동네 사이로 난 골목을 따라 여유로이 노닐다가 큰 길로 다시 나온다. 짧지 않은 길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걱정은 접어도 된다. 높은 곳에 자리잡은 길은 꿋꿋하게 바다를 내려보니 몸도 마음도 아주 시원해지기 때문이다.

뭍쪽에도 아주 너른 평지여서 날이 좋으면 멀리 있는 한라산과 그 아우들인 오름들이 이룬 아름다운 선을 감상할 수 있다. 이런 평지는 저 앞에 놓인 '도들오름' 자락까지 이어진다. 도두봉이라고도 말하는 이 '도들'이란 말이 왜 붙었는지 짐작케 하는 단서이다. 평평한 너른 땅에서는 야트막한 동산이라도 '도드라져' 보이게 마련이니 말이다.

서쪽으로 계속 가는 중. 사진밖 왼쪽이 평야지대이다.
▲ 도들오름 서쪽으로 계속 가는 중. 사진밖 왼쪽이 평야지대이다.
ⓒ 이광진

관련사진보기


걷는다. 도들오름이 점점 다가오는 듯하다. 왼쪽엔 고급스러운 카페와 펜션, 횟집 따위의 건물이 우뚝우뚝 솟아나왔다. 드디어 길이 조금씩 경사를 보인다. 도들오름 자락에 다다른 것이다. 오름을 코앞에 둔 곳에 주차 공간이 있는데 이쯤에서 앉아 쉬면서 바다를 본다.

낭떠러지 같은 여기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 그리고 자갈들과 우뚝 솟은 몇 개의 바위들. 이 솟은 바위들이 '요메기여'다. '요메기'는 갈매기. 이 바위들에 갈매기들이 자주 앉아 똥 싸 놓는다고 붙은 이름인 셈이다. 사실, 저렇게 거리가 있고 적당히 높게 솟은 바위에는 갈매기보다 '가마우지'들이 더 잘 앉는다. 검디 검은 녀석들이 그렇게 검은 바위에 꼿꼿하게 앉은 걸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오는 멋진 풍경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 '요메기여'와 자갈 해변 사이에 일직선으로 놓인 돌들이 보이는데, 이 공간이 '요메기원'이다. 마을 사람들이 돌로 원담을 쌓아 밀물에 들어온 멸치 같은 물고기들이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놓은 장치이다. 그러고 보니 돌은 제주도요, 제주도는 돌인 양 이번 여행은 죄 돌 이야기뿐이다. 어쨌든, 그 뒤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그물로 만든 '족바지'라는 어구를 써서 물고기를 떠 올려 잡는다.

까칠하게 우뚝솟은 바위들이 '요메기여'이고 그 안쪽이 '요메기원'이다.
▲ 요메기원 까칠하게 우뚝솟은 바위들이 '요메기여'이고 그 안쪽이 '요메기원'이다.
ⓒ 이광진

관련사진보기


다닐 때마다 유심히 보곤 했지만 그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축제 행사 기간이 따로 있어서 그 때 시연을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 여행은 '도들오름 트레킹'이라 생각하니 '푸핫' 웃음이 다 나왔다. 그 이유는 다음 기사에 나오니, 개봉박두!


태그:#몰래물, #흘캐, #도두동, #사수동, #제주도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