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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로그에 틈나는 대로 정치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는 '여론읽기'를 쓰고 있는데, 최근 한 지인이 이런 댓글을 남겼다.

"딴나라당이나 박근혜나 동귀어진 했으면 좋겠습니다. ㅋ"

동귀어진(同歸於盡). 오랜만에 들어본 무협지 초식(招式)이다. "파멸(盡)로 함께 돌아간다(同歸)"는 뜻이니 '너 죽고 나 죽자'는 필살기(必殺技)다. 예부터 전해오는 4자성어는 아니고 중국 무협소설계에서 만든 말이라고 한다.

이동관의 막장 초식 "TK놈들" 발언 사실일까?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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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 '한 지붕 두 가족'인 집권여당에서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가 싸우는 꼴을 보면 '동귀어진'이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 하긴 중원을 장악한 현재 권력이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치고 다시 싸운다"고 경고를 하기가 무섭게, TK(대구-경북)지역에 배수진을 친 미래 권력이 "집안에 있는 사람이 마음이 변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한다면 어떡하느냐"고 카운터블로를 날리는 판이다.

이렇게 정치무림 최고문파의 장문인들이 직접 나서 말화살을 날리니 그 수하들은 더 방방 뛸 수밖에. 당시 자신의 실명을 내걸고 '박근혜 의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브리핑을 했던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일요일인 지난달 28일 출입기자들과 산행을 함께한 후 점심식사 자리에서 급기야 "TK ×들, 정말 문제 많다"고 폭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이라면 막장 드라마를 능가하는 막장 초식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직원 등 20여 명이 함께 등산을 다녀와 반주를 곁들여 점심을 하는 자리였다. 이 수석의 막장 초식을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은 다소 엇갈린다. 어떤 이는 "이 수석이 '써도 좋겠다'라는 전제를 하고 이야기한 것"이라며 "술자리 농담 비슷하게 얘기했지만 작심하고 말한 것처럼 들렸다"고 얘기하고, 어떤 이는 "상식적으로 기자들 앞에서 'TK 놈들'이라고 하면서 (기사로) 써도 좋다고 하는 '강심장'이 있겠냐"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대구가 지역구인 친박계의 이한구 의원은 2일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머슴이 주인 욕한 이동관 수석을 경질해야 한다"면서 "MB가 어떻게 처리할지, 대구경북 사람들이 주시할 것"이라고 오금을 박았다. 그의 '머슴론'을 보면 아예 어투조차도 장문인의 '강도(돌변)론'을 빼박았다.

"그 사람도 지금 스스로 신분을 망각한 거다. 이게 지금 머슴이란 말이다, 국민들이 주인이고. (머슴이) 다짜고짜 주인을 욕하고 덤벼들면 이게 어떤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동관 "일을 하다 빚어진 실수로 이해하고 양해해 달라"

청와대 기자들에게 '핵관'(핵심 관계자 이동관)으로 통하는 이 수석을 겨냥해 여권 내에서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역시 대구가 지역구이고 친박계인 조원진 의원도 지난달 11일 성명을 내 강도론 발언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 이 수석에 대해 "적반하장격"이라며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뜻을 왜곡한 이동관 수석은 사퇴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동관 수석은 지난 1월 31일(일)에도 청와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의 이 대통령 남북정상회담 발언 축소·왜곡 논란과 관련, "(이 대통령 발언이)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조금 '마사지'를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해명해 비판을 자초했다. 당시 김은혜 대변인은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지만 이 수석은 사직서를 받지 못했다면서 "일을 하다 빚어진 실수로 이해하고 양해해 달라"고 넘어갔다.

그러나 그때도 기자들 사이에서는 업무의 성격상 김 대변인이 이 수석한테 보고를 한 후에 이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언에 '마사지'가 이뤄졌을 터인데, '마사지'한 장본인 스스로 "일을 하다 빚어진 실수로 이해하고 양해해 달라"고 한 것은 뻔뻔하다는 얘기가 돌았다.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 비공개회의에서도 청와대 홍보라인의 대응에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을 하다 빚어진 실수'는 이 대통령 용인술의 하나인 '접시론'과 닿아 있다.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 경선 때부터 'BBK 사건' 등으로 공격을 당하자 "평생 나는 일에 미쳐 지냈다"면서 "일하다 보면 손도 베고 그릇도 깬다"고 이른바 '접시론'으로 되받았다. 이 대통령은 용산 참사와 관련해 김석기 경찰청장 문책론이 제시될 때도 '국민과의 원탁대화'에서 "열심히 일하다 접시를 깼다면 책임을 면제해줘야 한다"며 '접시론'을 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 대통령의 이동관 감싸기를 '악역론'으로 해석하지만 청와대 일부 참모들은 '헌신론'으로 옹호하기도 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기자들이 "MB는 왜 그렇게 이동관을 좋아하냐? 일각에선 대신 욕먹어주니까 그렇다고 그러더라"고 묻자 "헌신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어떻게 <PD수첩> 건 가지고 그렇게(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경영진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총사퇴해야 하는 상황) 말할 수 있겠나. 마음을 비우는 헌신의 자세라서 그렇다"고 적극 옹호했다.

지난 2008년 2월 10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청와대 수석인사 결과 발표를 마친 후 이동관 대변인과 악수하고 있다.
 지난 2008년 2월 10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청와대 수석인사 결과 발표를 마친 후 이동관 대변인과 악수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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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각한 것은 'TK 비하' 발언보다 'TK 특혜' 발언

따지고 보면 '이핵관' 수석의 언동이 문제가 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수석은 취임 초기에 농지법 위반 및 언론보도 누락 압력 의혹에 휘말려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사퇴 요구를 받았으며, 국회 문방위에서는 KBS 후임사장에 대한 청와대 개입 논란에 휘말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함께 야당의 거센 퇴진 압박을 받았으나 이 대통령의 옹호로 피해갔다. 따라서 '일을 하다 빚어진 실수'는 이 대통령의 스타일을 잘 아는 이 수석이 스스로 자신을 '사면'하는 발언인 셈이다.

아무튼 이번에 다시 여권에서조차 "'TK ×들, 정말 문제 많다'는 그의 발언에 정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커진 가운데, 이 수석은 3일 문제의 발언을 했다고 보도한 <경북일보>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고 5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도 청구해 폭언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실은 "TK ×들, 정말 문제 많다"는 'TK 비하' 발언보다 'TK 특혜' 발언이다. 같은 자리에서 이 수석이 "첨단의료복합단지의 경우도 이 대통령이 챙겨주지 않았으면 선정되지 못했을 프로젝트"라며 "그런데도 고향인 대구·경북에서 (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언급한 것이다. 첨복단지 지정 과정에 대통령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당장 'TK 특혜' 발언의 후폭풍이 강원, 충북, 광주 등 첨복단지를 신청했던 지역들로 급속 확산되고 있다. 첨단의료복합단지에는 8개 도시가 신청했고, 이 가운데 충북 오송과 대구 신서가 공동 선정됐다. 이와 관련,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는 첨단의료복합단지 선정에 대해 '공정한 평가를 통해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4개월 만에 정치적 개입을 자인한 꼴이 된 셈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에서는 이 수석의 'TK 특혜' 발언이 '세종시 블랙홀' 논란에 이어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또 하나의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휘발성이 강한 'TK 비하' 발언은 TK지역의 일시적 비난만 감수하면 무마될 수 있지만, 'TK 특혜' 발언은 두고두고 전국적인 지역민심의 꾸준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관의 '타박(打朴) 전술'은 세종시 '물귀신 작전'?

청와대측도 사안의 심각성 때문에 2월 28일 당시 현장에 있었던 참석자들로부터 '사건의 재구성'을 했는데, 이 수석의 첨단의료복합단지 발언은 대부분 사실로 인정되는 분위기여서 그런지 이 수석의 언론중재위 제소 내용에도 이 대목은 들어 있지 않다.

사실 정권으로서는 이런 경우에 대응하기가 옹색하다. 이렇게 해명하면 저쪽이 걸리고 저렇게 해명하면 이쪽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여권 내에서도 이번은 '접시론'으로 피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기류도 감지된다. 특히 친박 진영에서는 여기서 밀리면 죽는다는 배수진을 치는 분위기다. 이 수석의 발언 배경을 세종시 수정안으로 중원을 장악한 친이계가 친박의 거점인 TK지역마저 흔들려는 노림수로 보기 때문이다.

세종시 논란 이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추세다.
▲ 박근혜의 지지율 하락세 세종시 논란 이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추세다.
ⓒ 리얼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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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친박 진영은 정부여당의 세종시 수정안 홍보 물량공세로 인해 인구가 많은 수도권의 지지표 이탈 등으로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 30% 대가 무너지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하락세가 뚜렷한 상황에서 버팀목인 대구-경북에서 지지율이 조금 높은 것을 갖고 시비를 건 것에 대해 불쾌한 구석이 역력하다.

이와 관련, 친박계의 한 의원은 "청와대가 MB의 '애국심'을 내세워 세종시 수정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데는 MB의 의중을 잘 아는 이 수석이 '세종시 블랙홀'에 빠진 MB 정부 '출구전략'의 하나로 '박근혜 때리기' 전술을 구사하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결국 이 수석의 '타박(打朴) 전술'은, 설령 세종시 수정안이 실패하더라도 원안을 고수한 박근혜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물귀신 작전 즉, '동귀어진' 초식이라는 것이다.


태그:#이동관, #박근혜, #세종시, #동귀어진,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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