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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들어 청와대에는 '핵심관계자'라는 직책이 새로 생겼다. 물론 핵심관계자 직책은 실제로 존재하는 직책이 아니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나오는 조금 민감한 발언은 대부분 핵심관계자가 한 말이다. 핵심관계자 당사자와 그 말을 전하는 기자들은 다 알지만 그 말을 듣는 시민들은 참 답답할 뿐이다.

 

지난달 28일 청와대 이 핵심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중대결단'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발언이 전해지자 언론들은 이를 국민투표로 생각하고 앞 다투어 보도했다.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이 핵심관계자는 이동관 홍보수석인 것 같다. 하지만 그는 국민투표 '국'자도 꺼내지 않았다며 중대결단을 국민투표와 연결 짓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언론 반응은 차가웠다. 조선일보는 가장 발 빠르게 지난 1일자 <대통령의 세종시 '중대 결단'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세종시 문제가 국민투표에 부쳐질 경우 여야 또는 여당 내부의 정치적 공방을 거치며 정부의 본래 뜻과 관련없이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정권에 대한 정치적 신임투표로 성격이 바뀌게 될 것이"라며 세종시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을 반대했다.

 

조선일보는 3일자 사설 <대통령 "현재 세종시 국민투표 검토하지 않고 있다">에서도 "이 수석은 자신의 말이 확대 해석됐다고만 할 게 아니라 당시에 무엇을 염두에 두고 '대통령의 중대 결단'이란 표현을 사용했는지를 밝히는 게 옳다"며 "이 수석이 자신의 발언으로 파문이 빚어진 즉시 '대통령 중대 결단'의 본뜻을 명확히 했더라면 불필요한 혼란도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중앙일보도 2일자 사설 <세종시, '중대 결단'할 만큼 비상상황은 아니다>를 통해 "국민투표는 충동적으로 선택할 수단이 아니다"며 "법리적으로 '위헌'이라는 주장이 많고 정치·사회적 논란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찮다. 세종시를 피하려다 더 큰 논란과 부닥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결정할 사안이다"고 국민투표를 반대했다.

 

세종시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에 대해 한나라당 내에서도 일부 친이계를 제외하고는 국민투표에 부정적이다. 고승덕 의원은 국민투표를 "드골이 하야한 것을 못 봤느냐"며 반대했고, 국민투표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 정두언 의원도 이번 중대결심 발언에 대해서만은 "청와대에 확인해봤는데 그렇지 않다며 개인이 개인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고 중대결단 발언을 이 홍보수석 개인 의견으로 돌렸다.

 

그만큼 세종시 국민투표에 대한 현재 여론은 부정적이다. 아니 일부 친이계와 일부 보수단체를 제외하고는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논란이 확산되자 2일 오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현재 국민투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고 청와대 박선규 대변인이 전했다.

 

흥미로는 점은 '현재'라는 전제가 붙은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세종시를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론이 변하면 언제든지 국민투표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대운하를 국민이 원하면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4대강을 밀어붙인 것을 보면 세종시 국민투표도 상황만 변하면 언제든지 밀어붙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는 아니다.

 

이 대통령은 또 "청와대에서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에서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으면 이야기를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마땅하다. 엄청난 논란을 일으킨 사람에게 책임도 묻지 않고 앞으로는 이런 일 하지 말하고 지시만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동관 홍보수석은 그동안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마사지' 발언, "TK ×들 문제 많다" 발언 논란(이 수석 자신은 말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 때문에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정말 바람 잘 날 없는 홍보수석이다.

 

이동관 홍보수석 발언 논란과 관련,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 안에서도 물러나라고 나섰다.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은 2일 보도자료를 내고 대구 경북 지역 발언에 대해 "이동관 홍보수석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했고, 이한구 의원은 "머슴이 주인 욕한 이동관 홍보수석은 경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을 향하는 비판을 온몸으로 막기 위해 살신성인한다는 마음으로 계속 자리에 앉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대통령이나 이 수석 자신에게 엄청난 부담만 줄 뿐이고 결국 국민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홍보수석 자리는 대통령은 찬양하고 국민을 향해서는 막말를 하는 자리가 아니다. 자기 혀를 다스리지 못하는 공직자는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태그:#이동관, #세종시, #중대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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