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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기념 특별기획으로 '유러피언 드림, 그 현장을 가다'를 연중 연재한다. 그 첫번째로, 시민기자와 상근기자로 구성된 유러피언 드림 특별취재팀은 '프랑스는 어떻게 저출산 위기를 극복했나'를 현지취재, 약 3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말]
취재정리: 전진한 시민기자
공동취재: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프랑스편> 특별취재팀

오마이뉴스 <유러피안 드림> 특별취재팀이 25일 파리 시내에서 세살짜리 아이를 둔 경찰 아빠 줄리앙 르그랑(Julien Legrand)을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안 드림> 특별취재팀이 25일 파리 시내에서 세살짜리 아이를 둔 경찰 아빠 줄리앙 르그랑(Julien Legrand)을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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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프랑스의 한 청년을 주목해보자. 지난 2월 25일 파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올해 28세로 직업은 경찰이다. 콧수염이 인상적인 그는 외모도 잘 생기고 키도 컸다.

결혼한 지 6년이 되었고, 3살 된 아이를 둔 그의 이름은 줄리앙 르그랑(Julien Legrand)씨. 내가 그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것은 그가 남편과 아빠로서 살아가는 방식이 한국 아빠들과는 전혀 달라서이다.

오마이뉴스의 <유러피언드림: 프랑스편> 특별취재팀에 포함돼 <프랑스는 어떻게 저출산위기를 극복했나>를 취재하기 위해 파리에 온 나는 프랑스의 평균적인 남성을 만나고 싶었다. 한국이 세계 최하위 출산율(1.15명, 2009년)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남편들이 낮뿐 아니라 밤까지 직장에 매여 있고, 가사노동은 엄마들이 부담하는 문화와 관련이 있는데, 프랑스는 어떠한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약 2시간 동안 내가 만난 이 프랑스 20대 아빠가 이 나라의 평균적인 남편인지는 모르겠으나 인터뷰한 후 얻은 결론은 이것이다. 한국의 남편들은 직장 중심으로 움직이고, 프랑스의 남편들은 가정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것은 천동설과 지동설의 차이만큼 크다. 자, 그러면 한국의 아빠들 긴장하시라.

"일하는 아내 위해 밤 근무 자청, 낮에는 아이 돌봐"

- 반갑습니다. 경찰이라고 알고 있는데, 주로 무슨 일을 하나요?
"아내가 안경과 관련된 다국적 기업에 다니기 때문에 아주 바빠요. 그래서 저는 밤 근무를 자청해 계속 밤에 근무하고 있고, 신고가 들어오면 출동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아이 때문에 저녁 시간에 일을 하나요?
"네. 아이를 양육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은 보모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 일이에요. 제가 그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어요. 데리고 오면 아이 씻기고 간식 챙겨주는 일을 중점적으로 합니다."

야근 근무를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밤 근무가 낮 근무보다 얼마나 힘든지를. 일단 낮에 잠이 잘 오지 않고, 자더라도 깊이 잠들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찰이라는 특성 때문에 밤 근무는 더욱 고된 근무가 될 것이다. 이런 환경에도 육아를 위해 밤 근무를 계속해서 자청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시작부터 인터뷰를 진행하는, 대한민국의 두 아이 아빠인 나의 기를 죽이고 있다.

"아버지 시대에는 가사 노동에 적극적이지 않아"

- 바로 핵심적인 것을 질문해 보겠습니다. 집에서 가사부담은 어떻게 하는지요?
"보통 낮 시간에는 청소를 하고, 시장도 가서 여러 가지 음식 재료를 삽니다. 아내는 퇴근 후 아이에게 먹일 음식을 하는 편입니다. 나는 시장가는 것을 즐깁니다. 아내와 아이가 같이 가면 시간이 많이 들어 혼자서 이것저것 구입해요."

- 사장 보려면 식단이 짜여 있어야 할 텐데, 어렵지 않나요?
"아내를 만나기 전에 계속 혼자서 자취를 했기 때문에 식단을 짜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아내가 중국 사람이기 때문에 중국요리 할 때는 같이 갑니다. 중국요리는 제가 잘 모르는데다 재료를 구입하기가 쉽지 않아서요."

- 본인의 아버님도 그렇게 해서 그런 문화가 익숙한가요?
"어머니는 집에 계셨고 아버지는 혼자서 일을 하셨는데 늘 바쁘셨어요. 아빠를 1주일 동안 보지 못한 적도 많이 있습니다. 아빠와 어릴 적에 함께 하지 못해 즐거운 추억이 적다는 것이 늘 너무 아쉬웠어요."(그래서 제 아들과는 가능한한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려고 노력합니다)

이 대목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여러 사례를 취재해 본 결과 프랑스도 한국처럼 과거에는 남자들이 가사노동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68혁명 등 여러 변화를 거치면서 여성들이 일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현재와 같이 남성들이 가사 노동에 본격적으로 참가하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변화는 언제 일어날 것인가?

"가사 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결혼한 지 6년 됐고, 3살 된 아이를 둔 경찰 아빠 줄리앙 르그랑(Julien Legrand)씨.
 결혼한 지 6년 됐고, 3살 된 아이를 둔 경찰 아빠 줄리앙 르그랑(Julien Legrand)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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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에는 가사일 하고, 밤에는 일하는데, 아직 20대인데 친구들하고 놀고 싶지 않은지, 직장의 회식문화는 없나요?
"당연히 친구들과 놀고 싶죠.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는 것을 선택했으면 그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술을 마시거나 직장동료들과 술을 마시면 가사 스케줄에 방해가 돼서 피합니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시간을 맞춰서 친구들과 놀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친구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하기도 합니다. 아들이 외부 사람들이 오는 것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 한국은 직장 문화에 회식문화가 많고 빠지려면 눈치가 보입니다. 본인이 한국 사람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거 같습니까?
"우리 직장이 그렇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아내의 직장은 그런 회식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늦어지기도 해요. 하지만 예전에 제가 공부할 때는 저에게 아내가 수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아내를 돕는 것이 그때의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가족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 프랑스는, 학교에서 남자도 가사 일을 같이 해야 하고 남녀가 평등하다는 교육을 받는지요?
"물론 학교에서도 배우지만 정책적인 면이 더 큽니다. 프랑스 정책이 남녀평등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프랑스 내 대부분 회사에서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반드시 40% 이상을 여성이 참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남녀고용평등이 안 되면 시도조차 불가능한 일이지요."

- 보통의 프랑스 남자들 중에서도 가사노동을 안 하는 남자들도 있나요?
"일반적인 남성들이 어떻게 가사노동을 하는지는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모릅니다. 하지만 프랑스도 과거에는 가부장적 사회였기 때문에 가사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남성들도 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도 남성들의 의식변화는 계속 이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맞벌이가 일상화되면서 남성들의 가사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대한민국의 30대 아빠인 나는 인터뷰 내내 솔직히 이 친구가 20대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이 40~50대를 보는 것 같았다. 그의 표정은 시종 진지했고, 본인의 생각을 차분히 풀어냈다. 과거에 아내가 자기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현재는 자신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대목에는 살짝 감동까지 밀려왔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한 방 먹은 것처럼 멍했다. 그 무엇보다 가족의 미래를 위한답시고, 매일 같이 이어지는 회식을 정당화했던 나를 되돌아봤다. '부어라, 마셔라'를 외치면서 친밀성을 확인하고, 다음날은 어제의 동지들과 무용담을 나누면서 해장국집에서 해장을 했던 서울에서의 나를.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프랑스편> 특별취재팀:
오연호 대표(단장), 김용익 서울대 의대교수(편집 자문위원), 손병관 남소연 앤드류 그루엔 (이상 상근기자) 전진한 안소민 김영숙 진민정(이상 시민기자)


태그:#한국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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