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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60주년을 앞두고 정부가 소년병의 실체를 공식 인정했다. 정부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현역으로 복무한 소년병의 규모를 1만4400여 명으로 추정했다.
 한국전쟁 60주년을 앞두고 정부가 소년병의 실체를 공식 인정했다. 정부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현역으로 복무한 소년병의 규모를 1만4400여 명으로 추정했다.
ⓒ 김만호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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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병 김만호씨 아들입니다. 기자님 덕에 한을 푸셨습니다. 법제화 감사드립니다."

지난 2007년 2월 28일자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소년병' 김만호(76)씨의 아들 성환씨가  지난달 26일 기자에게 보내온 문자메시지다.

평양이 고향인 김씨는 한국전쟁 당시 월남했다가 16살의 어린 나이에 '강제징집' 당했다. 생사를 넘나든 전쟁에 참가한 그에게 돌아온 건 '참전유공자증'과 달마다 나오는 7만 원의 '참전명예수당'이 전부다. 위로금 명목의 참전명예수당도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0여 년이 지난 2003년에야 나오기 시작했다. 그만큼 오랫동안 소년병 문제는 묻혀 있었던 셈이다. 

MB정부 출범 이후 해결 급물살... 한국전쟁 발발 60년 만에 소년병 실체 인정

지난 2007년 <오마이뉴스>는 소년병 김만호씨 인터뷰를 시작으로 한국전쟁의 또 다른 그늘인 소년병 문제(정부는 '소년·소녀지원병'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소년병'으로 통일한다)를 수차례 추적 보도했다. 이를 통해 소년병 징집이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이뤄진 불법행위였고, 정부가 오랫동안 그들의 희생과 공헌에 눈감아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정치성향과 상관없이 모든 정부는 50여 년이 넘도록 소년병들의 '공로'는 인정했지만 실체 인정과 국가유공자 인정 등을 거부했다. 소년병들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국가유공자법 개정안(장윤석 한나라당 의원 발의)도 국회 정무위에 계류돼 있다가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조차 소년병 문제를 외면해온 것이다.

전향적인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가 지난 2007년 "당시 15세 아동을 현역병으로 입대시킨 관련 법령이나 근거는 확인할 수 없다"며 사실상 50여 년 만에 소년병 징집의 불법성을 인정한 점은 성과였다. 그런데 정부의 대응은 거기까지였다.

그런 가운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좀더 전향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해 말 군번이 공식적으로 부여된 '현역 복무 6·25 참전 소년·소녀지원병'과 '비군인 6·25 참전 소년·소년지원병'을 구분해 전자의 실체를 공식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전자의 경우에는 병적기록표에 '6·25 참전 소년·소녀지원병'이라고 명시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이전처럼 '참전사실확인서'를 발급하고 있다.

국방부가 소년병을 '18세 미만의 병역 의무가 없는 자로서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국군·국제연합군 또는 전투경찰대에 지원·입대해 6·25전쟁에 참전하고 제대한 자'로 규정하면서 그 실체를 인정한 것. 정부가 국제적으로 인권문제를 불러일으킨 소년병의 실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9년 만이다.  

'소년병 문제'를 계속 제기해온 '6·25참전 소년병 전우회'(회장 박태승, 소년병 전우회)의 윤한수 사무총장은 "이번에 정부가 소년병의 실체를 인정함으로써 소년병의 신분이 (정규) 군인으로 완전히 확정됐다"며 "실체 인정은 이상희 국방장관 시절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병적표'가 존재하는 '현역복무 6·25 참전 소년·소년지원병'의 규모를 1만4400여 명(18세 미만)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참전사실확인서를 발급받고 있는 '비군인 6․25 참전 소년·소년지원병'은 8900여 명에 이른다.

또한 국방부 직속 군사연구기구인 군사편찬연구소는 오는 2013년까지 소년병의 전사를 연구해 '소년·소년지원병 6․25 참전사'(가칭, 1000부)를 발간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소년병의 개념 정립에서 참전 과정과 주요 활동 연구, 참전 증언록 작성 등의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와 함께 국가보훈처는 ▲ 누락 위패 봉안 ▲ 현충시설 건립 ▲ 명예 고양 대책 강구 등을 내놓은 상태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8월 만 14세 이상의 남자들을 '동원'할 수 있는 '긴급명령 9호'(비상시향토방위령)를 내렸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8월 만 14세 이상의 남자들을 '동원'할 수 있는 '긴급명령 9호'(비상시향토방위령)를 내렸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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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위원장도 소년병들 만나 "여러분들이 진짜 영웅"

특히 정권 실세인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과 박영준 국무차장도 소년병 문제에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챙기고 있다. 

이 위원장은 지난달 23일 대구시에 있는 소년병 전우회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박태승 회장 등 간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이 위원장은 "이제야 챙겨보게 돼 죄송할 따름"이라며 "어린 나이에 나라를 구하겠다고 전장에 뛰어든 여러분이야말로 진짜 영웅"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14~17세 나이에 병역의무가 없는데도 나라를 구한 여러분들의 삶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훌륭한 교육자료이자 교훈이 될 것"이라며 "교육과학기술부와 협의해 교육자료로 만들어 학생들의 애국심 교육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영준 국무차장도 정부에서 소년병의 실체를 인정한 후 소년병 전우회 간부들과 만나 "실체를 인정받지 못하면 역사에 기록도 안 되고 보상도 안 되는데 (실체를 인정받아) 이제는 잘 풀릴 것"이라며 "그동안 여러분의 노고가 컸다"고 격려했다.

하지만 소년병 전우회에서 줄기차게 요구해온 '국가유공자 인정'엔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부는 청와대와 국방부, 국민권익위, 국가보훈처 등 관계기관 협조회의를 열고 ▲ '현역 복무 6·25 참전 소년·소녀지원병' 실체 인정과 병적 정정 ▲ 참전사실의 전사 기록 ▲ 재일학도의용군과 같은 수준의 보상 등을 집중 논의했다. 

그리고 지난 2008년 6월 국민권익위는 소년병 실체 인정과 병적 정정, 참전사실의 전사기록 등은 가능하지만, 재일학도의용군과 같은 수준의 보상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신체상이자가 아니다'라는 것이 보상 불가의 이유였다.

특히 보상문제를 둘러싸고 국방부와 국가보훈처가 여전히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국방부는 "현역 복무 및 비군인을 구분, 실체를 인정하고 보상하는 것이 타당하다"라는 의견을 국가보훈처에 통보했지만, 국가보훈처는 "강제징집에 따른 보상문제는 우리 부처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소년병들을 '참전유공자'가 아닌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국가유공자 예우 및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정무위 법률소위에 계류 중이다. 지난 17대 국회의 장윤석 의원(경북 영주, 한나라당)에 이어 18대 국회에서는 김소남 의원(한나라당, 비례대표)이 대표 발의했다. 

박태승 소년병 전우회 회장은 "이재오 위원장이 말한 것처럼 교육자료로 쓰기 위해서는 돈을 주기에 앞서 소년병들에게 서훈을 해야 한다"며 "재일학도의용군은 훈장을 줬는데 18세 미만의 어린 나이에 전쟁에 참전한 소년병들에게도 그들과 같은 예우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오 위원장도 지난달 23일 소년병 전우회 사무실을 방문했을 당시 "여러분들이 그동안 요구해온 충혼탑이나 실질적인 보상 등의 문제도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등 어느 때보다 상황은 좋은 편이다.


태그:#소년병, #김만호, #이재오, #박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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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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