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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날 대부분 문을 닫은 시장통은 차가운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그리 멀지 않지만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어른들께 인사드리는 것도 있지만 어릴 적 향수가 새록새록 봄눈처럼 돋아나는 것을 즐기는 맛 또한 쏠쏠한 재미를 준다.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대학 시절부터 자란 인천 주안역 뒤는 공단지역이 주거지역으로 변해가던 동네다. 지금도 대부분 공장들이 철수를 했지만 몇몇 큰 공장들과 작은 공장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보니 이주노동자들도 꽤 많이 다니고 식당들도 제법 많은 편이다.

그 시장통 길을 걸어 가고 있었다. 사람도 거의 없는 길이라 주변을 둘러보며 어슬렁거리다시피 걷던 중이었다. 문 닫은 식당을 지키는 것은 간판뿐이었다. 길 건너편 식당 간판이 눈에 띈다.

식탁과 사람과 포크와 숟가락으로 만들어진 로고
▲ 김밥집 간판에 그려진 로고 식탁과 사람과 포크와 숟가락으로 만들어진 로고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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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순간 정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만화 초밥왕) 웃음이 크게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인가 쳐다보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간판을 가리키며 보라 하니 조용한 동네 시장통이 떠나라 웃는다. 정말 볼수록 기막힌 로고다. 상당히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주인이 직접 만든 것이 아닐까? 그림은 김밥집을 상징하는 식탁과 사람과 포크와 숟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약간 어설픈 색깔들이 배치되어 로고가 강렬하게 인상에 남게 되는 듯 하다. 사실 이 간판로고를 보고 문뜩 시장통 식당들 간판에 있는 캐릭터와 로고를 눈여겨 보고 사진을 찍게 됐다.

어서오시라고 윙크하고 있네요
▲ 고기집 식당 돼지 캐릭터 어서오시라고 윙크하고 있네요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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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식당에 그려진 돼지는 먼저 김밥집의 그림보다 솜씨가 날렵하다. 그러나 왠지 성의가 없어 보인다. 콧구멍은 그렇다쳐도 한 쪽 눈동자는 왜 검게 칠하지 않았을까? 이미 목숨을 잃은 돼지기 때문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돼지는 웃고 있지만 그걸 보는 나는 맘이 으스스하다. 나름대로 필압(筆壓)을 느끼게끔 선들이 날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혹시 요즘 유행하는 '제주도 흑돼지'와 전혀 다른 '흰돼지'만을 엄선해서 다루는 식당인지도 모르겠다.

소와 돼지가 귀엽죠?
▲ 프랜차이즈 식당 캐릭터 소와 돼지가 귀엽죠?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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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눈에 띈 것은 나름 간결하게 디자인된 듯한 소와 돼지 캐릭터다. 시작연도가 표시되어 있고 간판 다른 곳에 프랜차이즈라는 내용도 있는 것으로 보아 정성을 들인 듯 한데 뭔가 어수룩하다. '미키마우스' 초기 분위기다. 그래도 앞 식당 그림보다는 마무리를 제대로 했고 색감도 낫다. 웃고 있는 소와 돼지. 저 귀여운 것들이 '나를 맛있게 먹어 주세요'하고 웃는 것인가?

아마도 돼지 삼형제에 나오는 돼지 중 하나일지도
▲ 식당 돼지 캐릭터 아마도 돼지 삼형제에 나오는 돼지 중 하나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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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식당 간판에 그려진 돼지는 세련된 듯한 느낌이다. 디자인으로 보면 깔끔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웃고 있는 돼지얼굴에 너무 흔한 느낌이다. 어쩌면 맛보다 깔끔함을 우선으로 하는 경영관을 갖고 있는 식당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깔끔한 듯 하면서도 왠지 독특한 맛이 안 느껴져서 아쉬운 간판이다.

과연 넘버 원!은 돼지닮은 주방장일까요? 맛좋은 돼지일까요?
▲ 돼지 캐릭터 과연 넘버 원!은 돼지닮은 주방장일까요? 맛좋은 돼지일까요?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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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넘버 원! 워낭을 매달고 있는 소가 웃고 있어요
▲ 소 캐릭터 역시 넘버 원! 워낭을 매달고 있는 소가 웃고 있어요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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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식당엔 소와 돼지가 커다란 간판 양쪽에 따로따로 그려져 있다. 선 느낌이나 색감이 다른 것들보다 훨씬 세련된 느낌이다. 전문가에게 맡겨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 서구 느낌이 세게 들고 애니메이션에 자주 나오는 소와 돼지로 보인다. 그만큼 독창성이 아쉬운 간판 캐릭터였다.

이렇게 동네구경도 간판만 찬찬히 살펴보고 다니다보니 재미있다. 꽤 괜찮은 문화생활을 한 느낌이다. 언젠가 외국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한국 식당들에 있는 소와 돼지들이 밝게 웃고 있는 모습이 무척 재미있게 보였다는 이야기하는 것을 봤는데 내가 봐도 정말 재미있었다. 생각할수록 웃음이 흘러나온다.  슬프게 죽었을 소와 돼지들이 귀엽게 웃으며 '맛 있어요, 들어와 주세요'하는 모습이라니!

이 그림들 중에서 그래도 기억에 오래 강하게 남아있는 것은 첫 번째 김밥집 그림이다.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마도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그림일 것이다. 역시 로고나 캐릭터는 세련됨과 특성을 잘 살려야 하지만 무엇보다 개성이 제일 중요하다.

개성은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는데서 시작한다. 특히 문화예술은 더욱 그렇다. 이 정부도 한쪽에 치우친 생각으로 문화예술 행정에 엄한 짓 하는 걸 깊이 반성했으면 한다. 제발 빨리 막무가내로 치우친 밀어붙이기를 멈추고 우리나라에 재미있고 다양한 문화예술이 꽃 피울 수 있게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저 김밥집 그림을 그린 이 만큼도 못한 문화예술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큰 기대일지도 모르겠지만.


태그:#간판, #캐릭터, #문화예술, #다양성과 독창성,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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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작은책에 이동슈의 삼삼한 삶 연재중.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터넷신문 '마인드포스트'에 만평 연재중. 레알로망캐리커처(찐멋인물풍자화),현장크로키. 캐릭터,만화만평,만화교육 중. *문화노동경제에 관심. 또한 현장속 살아있는 창작활동을 위해 '부르면 달려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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