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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KARA)의 첫 등장은 사실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다.

 

2007년 3월, 정규 1집인 <Blooming>에서부터 멤버 김성희의 탈퇴라는 아픔을 맛봤고,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에 끼여 팬들의 주목을 끄는 데도 상당 부분 실패한 걸 그룹이 바로 그녀들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의 2009년 2월 <Pretty Girl SE>가 등장하여 'Honey'로 가요 순위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기 이전까지 이들의 소속사인 DSP가 야심차게 내걸었던 '제 2의 핑클'이란 수식어는 그녀들에게 별로 어울리던 명함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8년 후반기, 이때부터였다. 원더걸스에 묻히고, 소녀시대에게 밀리던 그들이 'Pretty Girl'로 주목받던 시기가 돌아온 건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만큼 'Pretty Girl'이란 곡은 그녀들의 이미지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달콤한 훅의 연속이었다. 한터차트 기준으로 2007년 12,000여장을 팔아치우고, 후에 재발매 되어 선주문만 4,000여장이 들어갔던 숨겨진 명반 1집 <Blooming>의 재발견도 기실 이 'Pretty Girl'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은 이 곡이 가지는 파괴력의 방증이기도 하다.

 

멤버 전원이 입술을 앙다물고 방송가를 종횡무진 누비던 그때. 근성돌이니, 생계형 아이돌이니 하는 별명들은 어느새 그들에게는 칭찬이 되어갔고, 심지어 같은 소속사의 걸 그룹인 '레인보우'의 출연시기마저 뒤로 미루게 하는 저력까지 그녀들은 발휘했다. 따라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지금의 카라라는 그룹의 매력은 좋든 싫든 'Pretty Girl'이라는 명곡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고 본다. 물론 더 올라 간다면 'Rock You'에서 울리던 백킹의 내공도 만만치 않았지만.

 

하지만 그녀들의 정규 2집인 <Revolution>의 경우 과거와 비교한다면 그다지 훌륭한 음반은 아니었다. 물론 '미스터'라는 곡과 '엉덩이춤'은 2009년을 카라의 해로 만든 결정적인 것들이긴 했지만, 음반 전체적으로 보자면 딱히 만족스런 수준을 들려주었다하기엔 뭔가 부족했다. 굳이 말하자면 음반에 붙은 '혁명'이란 이름이 너무 거창하달까.

 

카라의 세 번째 EP [Lupin]

 

그리고 이번에 등장한 그들의 세 번째 미니앨범인 <Lupin>. 나오자마자 타이틀곡의 인트로 부분에 세르비아의 여가수인 'JK'(Jelena Karleuša)의 곡과 유사성 논란이 있긴 했지만, 리뷰를 위해 그 부분을 제외하고 말하자면 특유의 명확한 멜로디 라인의 댄스튠으로 가득 차있는 꽤 괜찮은 음반이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국내의 댄스곡 가운데 가장 많은 형식의 '주입적인 8마디'에 카라는 예전부터 살짝 비켜간 존재였다. 언젠가 국내에서 카라의 팬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DJ '와시자키 타케시'가 말했듯 그들의 음악에선 분명 60~70년대의 유입되던 팝의 향수가 짙게 깔려져 있다. 물론 이런 식의 감상으로는 국내인디 걸 그룹인 '플레이걸'의 음악이 그곳에 좀 더 맞닿아 있는 존재이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핵심은 부분적인 훅에 몰입되지 않는 벌스, 브릿지, 후렴에 이르는 곡의 유려한 진행이다.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진행하자면, 과거 이러한 카라의 히트곡을 만들어냈던 한재호, 김승수 콤비의 곡들로 이번 음반 역시 상당 부분 구성되어 있다. 이들 콤비와 카라의 협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현재로선 알 수 없지만, 어쨌건 지금까지 이들의 상성은 여러 면에서 상당히 잘 맞는다. 카라의 팬이라면 상당히 익숙한 느낌을 받을만한 예의 그 뭉글뭉글한 신쓰의 구성과 깔끔한 편곡이 트랙마다 촘촘하게 모여 있어, 듣는 즉시 카라의 이미지와 색깔이 음악과 함께 머릿속에 맴돈다.

 

미니앨범이라 전체 다섯 곡 정도로 그다지 많은 곡을 담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일단 곡들의 면면을 보자면 우선 타이틀곡인 '루팡'의 경우 이제까지의 발표된 카라의 곡 가운데 가장 강렬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곡이다. 특히 초반의 강력한 소리들은 중반 후렴에 이르는 부분에서 꽤 드라마틱한 전개를 이루는데, 여기에 그녀들의 멋진 퍼포먼스만 적절하게 섞인다면 그 감각이나 느낌이 타이틀곡으로 정해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곡이다. 또한 그 '변화'라는 측면에서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세 번째 트랙인 'Umbrella' 역시 초기 브라스의 경쾌함이 상당히 인상적인 곡이다. 전체적으로 빈틈을 찾기 힘든 상당히 꽉 찬 느낌의 댄스튠으로, 아마 이번 활동의 후속곡으로 정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있다. 물론 너무 뻔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기에 예단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울러 2009년 한해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던 2NE1의 '롤리팝'이 연상되는 네 번째 트랙인 'Rollin'을 지나, 그녀들의 미니앨범 마지막 트랙에는 어김없이 등장했던 차분한 정서의 발라드가 이주형이 작곡한 'Lonely'라는 이름으로 음반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다지 긴 감상은 아니지만, 이러한 조각들이 나중에 발매될 그녀들의 정규 3집을 구성한다 생각하면 팬들의 아쉬움은 기대로 변화할 수도 있겠다. 

 

제 2의 핑클이 아닌 제 1의 카라

 

결국 이번 타이틀인 '루팡'만 따로 떼어내서 말하자면 과거와는 다른 그 '변화'가 있을지 모르지만, 음반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음악적 콘셉트는 과거 카라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정체'의 개념이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 것이, 이는 결국 카라라는 걸 그룹이 보여주는 그들의 고유한 색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에서 말하는 '제 2의 핑클'이라는 수식어는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서두에는 그 인기가 과거 핑클에 미치지 못해서라는 이유를 달았지만, 이 글 말미에는 카라는 제 2의 누구 따위가 아니라 카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그룹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고 싶다.

 

그러한 의견에 찬성하든 혹은 반대하든 2009년 가요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걸 그룹 전성시대가 올해에도 여지없이 이어진다면, 그 한 축으로 카라를 꼽기에 나는 이제 별로 주저하지 않겠다. 그리고 이번 세 번째 EP인 <Lupin> 역시, 그러한 그녀들의 순조로운 항해에 괜찮은 순풍이 되어 주지 않을까.


태그:#카라, #음반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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