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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애초 근절을 공언하던 시국선언에 대한 별건 수사라는 주장에 강력하게 부인하다가 최근에 와서는 스스로 이번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활동 혐의 수사는 시국선언 사건 수사에서 파생된 별건 수사임을 인정했다.

이 수사의 최종 칼날은 민주노동당을 향하고 있음이 점점 명확해 지고 있고, 결국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선거 기획용이라는 비난도 점점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시국선언 수사에서 별 것이 나오지 않고, 법원에서 무죄 선고가 나오자 수사 시작 전에 언론에 대대적으로 브리핑까지 하며 정치 활동 혐의 수사를 시작하더니 결국 수사 대상이 민주노동당으로 확대됐다. 처음에 전교조 교사들의 정당 가입 혐의 국가공무원법 위반에서 시작한 수사가 민주노동당 정치자금법 위반 기소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과 경찰이 그렇게 호언장담하던 정당 가입에 의한 국가공무원법과 정당법 위반 처벌은 정당 가입 시점으로부터 3년이 지나면 처벌할 수 없고, 공소 시효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더 중요한 것은 교사와 공무원이 일부 돈을 낸 것은 맞지만 그것이 당비인지, 후원금인지, 신문('진보정치') 구독료인지 등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난감한 상태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묘수라고 꺼내든 비책이 정치자금법 위반이란다. 교사들이 돈을 보낸 것은 명확하고, 자신들도 인정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돈이 입금된 통장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 되지 않은 미신고 계좌라는 것이다. 결국 애초 핵심이라던 정당 가입에 의한 국가공무원법 위반은 온데간데없고, 미신고 계좌에 입금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중심으로 기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듯하다. '별건 수사'로 비판 받더니 '별건 기소'로 비난받게 된 것이다.

1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공무원, 교사탄압저지공동대책위원회 및 민생민주국민회의 주최로 열린 '공무원 및 전교조 공안 탄압 기자회견'에서 민변 권영국 노동위원장이 경찰의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수사 확대 방침과 관련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1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공무원, 교사탄압저지공동대책위원회 및 민생민주국민회의 주최로 열린 '공무원 및 전교조 공안 탄압 기자회견'에서 민변 권영국 노동위원장이 경찰의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수사 확대 방침과 관련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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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시국선언 '별건 수사', 결론은 정치자금법 '별건 기소'?

경찰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 되지 않은 민주노동당 계좌의 자동이체(CMS) 출금 내역 등을 통해 수사 대상자 292명 중 286명의 당비 납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여전히 이 돈의 성격이 당비라는 증거를 내놓지 못하면서도 이들 모두를 정치자금법이나 정당법 위반 혐의로 기소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기소가 가능하고, 기소하더라도 확실히 유죄 선고를 받아낼 수 있을까?

즉시범이라면 시효 3년이 이미 지나 기소 자체가 어렵거나 기소되더라도 100% 무죄가 나올 것이다. 계속범이라면 정당 가입 후 활동을 입증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몇 만원에서 몇 십 만원의 돈이 입금되었다는 것 외에 내놓을 수 있는 증거가 없어 보인다. 투표 현황 어쩌고 하는 자료도 아예 없거나, 일부 있다고 하더라도 불법적으로 확인한 정보일 가능성이 높아 내놓기도 힘들고, 내놓더라도 증거 자료로서의 신빙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당 활동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투표 현황을 확인하거나 당원 명부를 확인하는 2가지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그런데 투표 현황을 확인하는 것은 우리 헌법이 보장한 비밀투표의 원칙을 어기는 것뿐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한 훼손이라는 반발이 거세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원 명부 역시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압수 수색을 통해 강제로 가져가거나 이를 제출한 적이 없고, 특히 한나라당이 이전에 수차례 이를 거부한 적이 있어 형평성 차원에서도 검찰이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이 미신고 계좌에 입금되었다는 돈에 대한 정치자금법 위반 적용 여부인데, 이것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경찰이 언론에 실명까지 공개한 당비 납부 현황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로 당비라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 통장 계좌로 입금된 돈에 당비도 있고, 후원회비도 있고, 심지어는 기관지 구독료, 투쟁 기금, 선거지원금, 교육비 등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부 돈을 냈다고 알려진 교사들도 대부분 정당 후원회가 합법적으로 존재하던 시기에 돈을 내었고, 개인 국회의원에 대한 후원금도 이 계좌로 입금된 것이 많이 있어 이 통장을 경유 통장으로 활용하였을 뿐 돈의 흐름에 불법성이 없고, 이 후원금마저 법이 바뀐 이후 지금은 거의 없어진 상황이라 당비로 특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리고, 한나라당 후원 교장들의 정당 자금 거액 후원이 정치자금법 위반이 아니라서 처벌하기 힘들다는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들 전교조 교사들도 처벌할 근거가 없어지고 만다.

만약 검찰이 입장을 번복하여 단순 후원금을 처벌한다고 하더라도 "4년 동안 고작 1만~30여만 원을 후원한 평교사들"과 "한 번에 500만원 또는 한 해 수백만 원을 낸 교장들, 회의를 통하여 수억을 모아서 주자고 한 교총 산하 교원단체, 교사들을 일일이 교장실로 불러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200여만 원 후원하게 한 교장 등 한나라당 관련 교장과 교원 단체" 중에서 그 액수나 방법 면에서 있어서 누가 더 큰 벌을 받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삼척동자도 그 답을 뻔히 알고 있는데 경찰과 검찰이 모르쇠로 교사들의 소액 후원만 기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설사 교사들이 돈을 낸 민주노동당의 통장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 되지 않은 미신고 계좌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교사들이 어떻게 아느냐 하는 질문에 검찰은 답을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국민 누구라도 어느 계좌에 돈을 보낼 때 그 계좌가 (선관위를 포함하여) 어디에 신고된 것인지, 어떻게 개설된 통장인지, 누구의 이름으로 개설된 것인지를 확인하지 않는다. 만약 검찰의 주장대로 그것이 미신고 계좌라서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것은 당의 회계 담당자가 미신고 계좌 운영에 대해서 책임질 일이지 돈을 보낸 교사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이 역시 검찰이 아무리 모르쇠로 무시하려고 해도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등 야4당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경찰의 민주노동당 서버 압수수색을 “6·2 지방선거를 앞둔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9일 오후 국회 본청앞에서 공동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등 야4당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경찰의 민주노동당 서버 압수수색을 “6·2 지방선거를 앞둔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9일 오후 국회 본청앞에서 공동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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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에 빠진 검찰...기소할 수 있을까?

최근 검찰과 전교조는 많은 부분에서 서로 부딪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정치활동 혐의 수사가 그 절정이다. 현재 민주노동당에 돈을 낸 것으로 검찰이 확인했다고 밝힌 인원은 286명인데 그 중 교사가 187명이다. 사실인지, 어떻게 확인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투표했다고 발표한 인원 120명 가운데 85명이 교사란다. 숫자만 보면 참으로 초라하다. 시작할 때는 수천 명 어쩌고, 최소 800명 혐의 조사 어쩌고 하더니 결국 돈 낸 사람 187명에, 투표한 사람 85명이라고 한다.

시작과 결과만 놓고 본다면 말 그대로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 태산이 떠나갈 듯 요란을 떨더니 쥐 한마리 잡음)'이라는 고사가 딱 맞아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검찰이 겉으로 호언하고 있는 전교조 교사 85명을 정당 가입 또는 정치활동 혐의로 기소한다고 하더라도 법정에서 유죄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여 검찰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검찰과 경찰이 기획 수사, 별건 수사, 정치 수사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여기까지 수사를 이어온 가장 큰 동력은 보수 언론의 적극적인 공조와 여론 조작에 의한 여론 재판이었다. 현재 정진후 위원장에 대한 체포 영장 검토 어쩌고 하는 기사가 나오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번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하고 있는 정 위원장이 2006년부터 4년 동안 냈다는 돈이 23만원이란다. 알려진 바처럼 민주노동당의 당비는 월 1만원이라서 4년을 당비를 냈다면 48만 원정도 되어야 하는데 그 총책(?)이라고 하는 위원장의 돈이 절반도 안 된다.

이밖에 120만원을 낸 부산의 김아무개 교사, 1만원을 낸 교사, 40만8천원을 낸 박아무개 교사 등 금액도 천차만별이다. 이런 다양한 금액이 이 돈이 당비가 아니라 다양한 목적의 여러 돈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점을 검찰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검찰이 증명해야 하는 또 다른 과제다.

높아가는 무죄선고율...'아님 말고' 식의 수사를 멈춰라

우리나라는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를 채택하고 있어서 기소를 할지 말지는 오직 검사가 판단한다. 반면, 기소했는데 무죄가 나오더라도 검사가 지는 책임은 아무 것도 없다. 그냥 기소된 국민만 '개고생'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검찰의 기소독점에 대한 합리적 견제 논의가 나오는 것이다.

검찰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전교조 교사들의 정치활동 혐의 수사를 시작하여 막바지에 이른 지금, 검찰은 유죄 여부도 확신할 수 없는 80여명의 교사들을 기소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돌아봐야 할 것이 있다.

검찰의 기소 사건에 대해 높아지고 있는 무죄 선고율이다. 작년 검찰청과 법원 등의 자료에 의하면 전국 검찰청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서울중앙지검의 무죄율이 심각한 수준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의 1심 무죄선고 인원은 2006년 329명, 2007년 569명에서 2008년 789명으로 2년 사이에 2.4배가 늘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항소한 사건 중 무죄가 선고된 인원 역시 2006년 124명에서 지난해 335명으로 2.7배 증가했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서울동부지검과 서울서부지검의 1심 무죄 인원이 2008년 187명과 184명인 것에 비해서도 훨씬 높다.

우리나라 일부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를 비꼬는 말로 '카더라 통신'과 '아님 말고 보도'라는 것이 있다. 제대로 취재하지도 않고 자신의 선입견을 가지고 한 인간을 거의 매장에 가까운 상태까지 몰고 가는 보도를 해 놓고도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면 "아님 말고"라고 변명하는 잘못된 관행을 비판하는 말들이다.

그런데 지금의 검찰과 언론은 이 '카더라' 통신과 '아님 말고' 보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같다. 인류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근대 형사 사법제도에서 만들어진 여러 원칙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피의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검찰도 시간 날 때마다 입으로는 이 원칙을 금과옥조처럼 이야기해 온 것이 사실이다. 고문이나 강제 수사를 금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지금 검찰과 언론에 필요한 자세가 바로 이것이다. 10개의 특종을 놓치더라도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태그:#정치 활동, #검찰,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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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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