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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비행기는 머리 위로 지난다. 사람이 드나드는 공항은 동쪽에서 포구로 오기 전에 나 있는 갈림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게 되어 있지만 이 부근은 비행기가 드나드는 활주로가 지척이다. 이미 확장이 결정된 자리에 있는 건물은 더 버티지 못하고 허물어질 기세로 흉물스럽게 서 있다.

명실공히 제주의 관문이다.(자료사진)
▲ 제주국제공항 풍경 명실공히 제주의 관문이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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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끄내 포구에서 마주 보이는, 공항 활주로의 경계엔 용담레포츠공원이 자리한다. 여름이면 인근 시민들이 밤마다 삼겹살을 구워 나누며 친목을 다지기도 하며, 작은 축구장, 족구장 따위가 있어 운동과 산책을 하는 이가 많은 곳이다. 공원 주차장 한 켠에 놓인 표석을 주목하게 되는데, 4·3원혼 위령비가 서쪽으로 200미터쯤에 자리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오늘날 '제주국제공항'이라 불리는 이 곳은 '정뜨르'란 이름의 땅을 포함하고 있다. '뜨르'는 곧 '드르'를 말하는데, 표준말로 '들'과 같으니 넓은 들판임을 알 수 있다. 모슬포에 있는 '알뜨르'도 이곳처럼 비행장이 있었다. '알뜨르 비행장'은 일제강점기에 구축되었으며,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군사시설들이 주변에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신촌의 '진드르'라는 지역도 비슷한 시기에 비행장이 들어섰으며, 이곳 정뜨르비행장은 태평양전쟁이 진행되던 1942년에 1월에 만들어졌다. 일본이 패망한 뒤 미군정 시기인 1948년에 시작된 4·3 당시에도 정뜨르비행장은 제주도와 외부를 잇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1948년 5월에 민간항공기가 취항했다고 하지만 오늘날과 달리 민간인의 이용은 상당히 통제되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아래에 드러난다.

한국전쟁시 제주 북부 예비검속 희생자 원혼 위령비. 뒤쪽으로 공항의 경계가 보인다. 저 너머 어디쯤에서 학살이 이루어졌다.
 한국전쟁시 제주 북부 예비검속 희생자 원혼 위령비. 뒤쪽으로 공항의 경계가 보인다. 저 너머 어디쯤에서 학살이 이루어졌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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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에 마무리된 유해발굴단의 발굴 당시 기사(제주일보,2009년 6월 11일자)을 보면, 259구나 되는 유골이 나왔다고 하니 엄청난 참극이 있었음에 놀라게 된다. 학살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이루어졌는데 1차는 군법회의에 회부된 군인과 무고한 민간인을 1948년 12월부터 1949년 3월 사이에 죽인 것이고, 2차는 예비검속 대상자로 잡혀온 사람들을 1950년  8월 19~20일 이틀에 걸쳐 총살한 것이다.

예비검속은 보도연맹과 관련이 있다. 원래 '좌익'인 사람들을 이 연맹에 가입시켜 통제하고자 했던 의도가 있었지만 '뭣 모르는 양민'들까지 많이 가입시켜 놓은 당시 세태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도 죽고 만 것이다.

낮 동안의 레포츠공원은 한산하기 그지 없다. '아름다운 화장실'에 들러 클래식음악을 들으며 추위에 급해진 오줌을 누고 내려와  위령비가 서 있는 곳으로 간다. 곁에 아무도 없으니 할 말도 없지만,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 해도 들을 수 없는 동네이다. '학살터'란 오명을 씻어보자는 의도인지 비행기가 몇 분 간격으로 큰 소리를 질러대 사람의 귀와 입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위령비는 검은 빛깔로 우뚝 서 있다. 이 비는 2005년에 세워졌으니 2007년 발굴조사가 시작되기 전의 일로 보인다. '쌩쌩' 달리는 차들이 지나기를 기다려 포구로 들어섰다. 포구는 아담한 크기이다. 공유수면을 매립하여 건물도 두 개 올리고 방파제도 확장했지만 여전히 아담하다.

포구의 오른쪽.
▲ 다끄내포구 전경 포구의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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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엔 샘물이 있는데 포구 이름을 따라 '다끄내물'이라 부른다. 표석은 엉뚱하게 '섯물'이라 적혀있는데 어영마을 앞에 있어야 할 것이 1년이 다 지나도록 잘못 붙어 있다.

섯물이라고 잘못 적혀있다.
▲ 다끄내물 섯물이라고 잘못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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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만 해도 더운 여름철에 시원하게 씻는 사람이 있었는데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다. 널려 있는 쓰레기가 볼썽 사납지만 한겨울이라 그렇다고 위로해본다. 그 곁에 비석이 여럿 서있는데, 읽어보면 그 사연이 절절한 유적비가 가운데에 있다.

다끄내 마을과 포구를 일군 사람들의 역사.
▲ 유적비 다끄내 마을과 포구를 일군 사람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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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마을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이 곳을 떠나고 말았다. 공항이 점점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더 많은 땅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오고 가는 비행기도 많아지니 그 소음 피해도 잦아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맨 처음 이 곳에 자리잡아 포구를 손에 쥔 정과 망치로 하나하나 '닦았다'는 데서 '닦은 개(포구)'라고 했다는 전설같은 이름만 남긴 채 뿔뿔이 흩어진 실향민 신세라니.

이 비석이 있던 자리에 또 샘물이 있었다. 남아 있는 다끄내물은 주로 여자가 썼고, 이 자리는 남자가 썼다. 그리고, 저쪽 방파제로 가는 길목 어딘가에도 조그만 샘물터가 하나 더 있었다. 이것은 마을은 떠났어도 포구만은 떠나지 못하고 날마다 나와 고기를 잡으러 가는 00호 선장의 설명으로 알게 된 것이다.

담담하게 일을 하고 있는 손.
▲ 손 담담하게 일을 하고 있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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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이 다 넘은 선장은 열 여섯에 시작한 이 일을 관두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한때는 여섯 사람이 함께 뱃일을 했는데 이제 혼자서 일을 한다고 하니 그 아쉬움이 한탄에 가깝다. 나갔다가 돌아와 주낙을 다시 손질하여 상자에 매다는 그 손이 두툼하다. 먹잇감이 되지 못한 고기 살점들이 하나, 둘 바닥에 떨어져 나갔다.

옥돔, 조기는 명절 대목이라는데 요새는 씨가 말랐다고 하니, '그래, 몇 마리나 잡으셨수꽈?'라는 물음도 목구멍 아래로 도로 삼켜야 했다. 그렇다고 더 먼 데까지 가려면 기름값 때문에 그러지도 못한다니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그저 다음엔 많이 잡으실 거란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사실 나는 지난 여름에 만난 할머니 해녀 한 분을 뵙고자 했다. 듬직한 체구답게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셔서 즐거운 기분까지 들었던 터였다. 이 분도 역시 이 마을 출신인데 이렇게 느낌이 다른 것은 어디서 그 이유를 가져와야 할것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어쨌든 오늘은 뵈질 않으니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어업인에겐 골치덩어리이다.
▲ 불가사리들 어업인에겐 골치덩어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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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가 새로 솟아 나왔다. 그 덕에 둘이었던 도대불이 사라졌고, 하나는 큼지막하게 새로 얹어졌는데 옛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복원' 아닌 '새단장'이다.

도대불은 일제강점기 즈음부터 포구에 만든 이른바 '미니 등대'이다. 이곳 도대불의 꼭대기엔 전깃줄이 가냘프게 매달려 있었지만 그것도 기억에만 남겨둬야 할 일이다.

그 커다란 도대불 뒤로 걸어가니 학생 셋이 찰싹 달라붙어 있다. 그 꼴이 무언가 잘못한 듯한 인상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최근 문제가 되었던 '졸업식 뒷풀이'에 참여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꽃다발, 깨진 날달걀들이 오는 길에 많이 보였던 게 이유가 있었다.

방파제엔 여전히 낚시 하는 사람들이 늘어서 있고, 그 끝엔 예의 빨간 등대가 솟아 있었다. 도로 돌아 나와 건물구석에 놓인 불가사리를 본다. 많이도 잡아 놓았다. 불가사리는 패류의 큰 적이라 이렇게 잡아다가 공무원에게 금을 물고 수거해가도록 한다.

건물을 따라 돌아 나오면 원래의 자리에서 몇 발짝 못 미친 왼쪽이 된다. 그 곳에 야트막한 담장으로 둘러싼 '해신당'이 있다. 이 곳 어업인들이 험한 바닷일에 안전과 풍어를 비는 곳이다. 담장 안에는 '해신지위'라고 새긴 비석이 놓여 있다.

옛날 손으로 닦았다는 흔적을 보려 둘러 보았으나 세월 탓인지, 안좋은 눈썰미 때문인지 가려내기 어려워 이제 그만 발길을 돌렸다.

어업인들의 안전과 풍어를 빈다.
▲ 해신당 어업인들의 안전과 풍어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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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모습으로 배들이 정박해 있다.
▲ 다끄내 포구 풍경 왼쪽 모습으로 배들이 정박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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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안개가 슬슬 밀려오기 시작하던 것이 어느새 영화 제목처럼 '안개 속 풍경'이 되었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기세로 입을 벌린 안개는 좀 전까지 보이던 것들을 희뿌연 장막으로 덮어 버린 것이다. 세상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덧붙이는 글 | 2010년 2월 9일 여행.



태그:#제주도, #다끄내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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