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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암은 공항과도 가까운 데다 이름난 곳이라 관광객들이 끝없이 드나드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용연과 지척이라 단체로 온 관광객들 대부분이 걸어서 두 곳을 둘러보는 모양이었다.

용두암 가는 언덕에서 내려다 본 모습. 제방의 아래 끝쪽의 구조물 안에
'엉물'이 있다.
▲ 서한두기 용두암 가는 언덕에서 내려다 본 모습. 제방의 아래 끝쪽의 구조물 안에 '엉물'이 있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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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에서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다보면 길은 언덕을 타고 오르는데, 다 올랐을 즈음 시야가 시원하게 트이는 걸 경험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넓고 푸른 제주의 바다가 반겨주는데, 이 언덕에서 바라보는 용연 쪽 풍경도 멋드러진다. 물론 지금은 매립되어 넓어지고, 길어지고, 높아진 탑동의 선들이 이 맛을 떨어뜨리긴 하지만 여전히 볼 만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용연을 품은 한두기를 바라보다가 다시 언덕을 따라 난 길을 걸으면 용두암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몇 발짝 더 가면 용두암이라는 표석과 한 마리 말이 맞이하는데, 이 말이 요새는 통 보이질 않아 걱정이 된다.

말에 태워 사진을 찍어주고 그 값으로 사는 할아버지도 역시 자리에 없다. 한 번은 말은 없고, 할아버지만 계시길래 어디갔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쉬하러 갔어."

아무튼 사람 많고, 바람많은 용두암 언덕에서 하릴없이 서 있고, 앉아있는 건 말에게나 사람에게나 고역일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내려가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살을 에일 듯 불어왔기 때문이다. 휴지통을 감싸고 있던 비닐 봉지가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려는지 계속 요동치고 있었다.

병풍같은 바위가 바람막이 구실을 하고 있다.
▲ 관광객들 병풍같은 바위가 바람막이 구실을 하고 있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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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 용두암이 보인다. 오랜만에 기념 사진을 찍으러 다가갔지만, 멀리 탑동에 솟은 건물이 또 말썽이다. 권투 중계가 끝난 현장에서 열심히 말하는 캐스터와 해설자 뒤에 선 꼬맹이들이 눈에 더 들어오는 꼴로 건물은 용두암보다 더 눈에 띄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쪼그려 앉아 사진을 찍었다. 바람은 파도를 더욱 솟구치게 부추겼다. 그 덕에 용두암은 하늘로 날아오를 기세로 꿈틀대는 듯 보였다. 용두암의 우둘투둘한 선들에 파도의 역동성이 더해져 이루어내는 멋진 풍경이었던 것이다.

쪼그려 앉아 촬영해야 뒤쪽 건물들을 없앨 수 있다.
▲ 용두암 쪼그려 앉아 촬영해야 뒤쪽 건물들을 없앨 수 있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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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진을 보다 보면 도롱이(비올 때 걸치는 일종의 비옷)를 입은 노인이 용두암 앞에 앉아 낚시를 하는 모습도 보게 된다. 말하자면 오늘날 관광용 전시물인 용두암은 제주 사람들에게 낚시하기 좋은 곳이며 용처럼 생긴 '용머리'라는 이름을 지닌, 수많은 기암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초등학교 다닐 적에 벗과 더불어 대나무에 낚싯줄 매고, 보말(고둥 일종)을 돌로 쳐 그 속을 미끼로 삼아 생애 첫 낚시를 했던 곳도 이 곳이었다. 잡아서 환호했다가 미끄덩 미끄러져 물 속으로 퐁 떨어져 유유히 사라진 시커먼 보들락(보들래기)이 지금도 미워 죽을 노릇이다.

몇몇 옛 사람의 글은 용두암의 평평한 부분에 앉아 풍광도 내려다보고, 잠녀(해녀)에게 몇 푼 얹어 주고 갓 잡은 전복을 얻어 술안주로 삼기도 했다고 전한다.(<취병담>,현행복 저,각)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이 부근 바다에는 물질하는 해녀가 있고, 옛 이야기처럼 사람들에게 갓 잡은 해산물을 현장에서 팔고 있다.

이것이 용두암을 바라보고 난 뒤에 곧바로 계단을 되돌아오면 안 되는 이유이다. 용두암을 바라보고 사진 찍는 곳의 바로 뒤로 돌아가면 이들이 앙증맞은 목욕탕 의자를 여럿 깔아 놓고 앉아 있다.

이 곳 해녀, 부녀회에서 함께 판매한다
▲ 전복 소라 드세요 이 곳 해녀, 부녀회에서 함께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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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한 소리를 뒤로 하고 서쪽으로 낸 길을 걸으면 또 계단이 있어 이제는 해안도로로 접어들게 된다. 이 해안도로는 1980년대 중반에 만들어졌다. 제주도 최초인 셈인데, 통상 '제주시 해안도로','용담 해안도로'라 부른다. 용두암에서 시작한 길이 서쪽 도두와 이호해수욕장 옆까지 이어지는 길은 제주도 바닷가 풍경을 짐작하게 하는 일종의 전초전 격인 길이다.

내리막 길을 따라 내려오면 아파트가 길 왼쪽에 놓여 있고 오른쪽 바닷가 언덕에 벤치가 놓여 있다. 이 곳에 '말머리소금빌레'라는 표석이 세워졌는데 무슨 뜻인지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말머리'는 용두암을 '용머리'라 하는 것처럼 말머리 모양을 한 기암괴석을 말한다. 또 '소금빌레'는 소금을 만드는 너럭바위 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빌레'는 방석처럼 평평한 지형을 생각하면 된다.

간단히 보면, 이 너럭바위 위에 약간의 장치를 하고 바다에서 물을 길어다 놓아 증발시켜 소금을 얻었던 곳이다. 이런 '돌염전'은 보다 서쪽에 위치한 애월읍 구엄리가 유명했는데, 소금만드는 사람을 뜻하는 '염쟁이', '엄쟁이'를 말밑으로 삼은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바다에서 물을 길어다 놓아 소금을 생산했다는 곳이다
▲ 말머리 소금빌레 바다에서 물을 길어다 놓아 소금을 생산했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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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머리 소금빌레'는 여기 있는데 정작 말머리는 보다 더 걸어가야 만날 수 있었다. 그조차도 모가지가 댕겅 달아난 몸체만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는 해안도로 짓는 공사를 할 적에 부수어 버렸기 때문이다. 액땜했다고 쳐야 할 지도 모른다. 이렇게 많은 횟집, 해수목욕탕, 카페 따위들이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만든 이 길이 없으면 존재 가치가 없을 터이니 말이다.

바다로 길게 뻗은 꼬리와 높은 몸체만 볼 수 있다.
▲ 말머리 바다로 길게 뻗은 꼬리와 높은 몸체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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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 정확히 말하면 이 길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람들이 찔리고 긁히며 다녀 두툼해졌을 발이 밟았던 자국이 사라진 갯바위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부서진 '말머리'는 그 곁에 있다는 '말머리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말머리물'도 부서져 잔해만 확인할 수 있었다.

한때는 사람들이 마시고, 씻고 했을 것이다
▲ 말머리물 한때는 사람들이 마시고, 씻고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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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해안 곳곳에 있는 '00물'이라는 형식의 이름들은 용천수, 곧 짜지 않은 '단물'을 말한다. 지하로 흘러든 물들이 자연적인 정화장치로 걸러져 '맑고 깨끗한' 물이 되어 제주사람들을 살아있게 만든 것이다. 이제는 유적이나 다름없이 되어버린 이 '물'들은 또다른 테마관광상품으로 탈바꿈할 태세인지라 더욱 씁쓸하다.

상품화한다는 것은 그 고유의 의미는 사라지고 겉모습도 바뀌어 변질될 뿐인 것을 많은 답사와 여행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부서진 이곳도 아마 조만간 '복원' 과정을 거치고 이른바 '새단장'할 것이다. '복원'과 '새단장'은 반댓말에 가까운 것인데 어찌 잘 조화시킬 건지 걱정이 된다.

말머리물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벤치에서 만난 노년의 신사는 여러 가지를 지적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를 옮기면 '이렇게 줄줄이 늘어선 파이프들이 영 맘에 안 든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대책도 내놓으셨는데, 여러 선들을 한꺼번에 묶어 한 곳에 모은 다음에 모인 선이 하나되어 나오게 하면 그나마 나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바닷물을 끌어오는 파이프들이 곳곳에 보인다.
▲ 바다로 가는 파이프 바닷물을 끌어오는 파이프들이 곳곳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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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길죽한 형상의 기암괴석들은 이제 보이지 않고 평평한 지대가 파도와 씨름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너머엔 왠지 슬픈 '다끄내 포구'가 있다. 이 곳의 이름은 넓다는 뜻의 '넙개', '넓개'이다.

평평한 '빌레'이다.
▲ 넙개 평평한 '빌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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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들어서면 아늑하기 그지 없어 오랫 동안 머물게 된다.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하고, 거닐기도 하고, 쪼그려 앉아 생물들이 꼼지락거리거나 숨죽여 있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느라 시간을 잊는다.

물은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한다. 바다는 이 엄숙한 자연현상의 법칙을 따르고 생명은 그 법칙에 맞추어 옷을 갈아 입어 오늘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조간대'라 불렀다. '조간대'는 다양한 생명이 깃들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넙개'에는 '검은큰따개비, 조무래기따개비, 거북손, 진주담치, 총알고둥, 풀색꽃말미잘,군부 일종' 따위의 많은 종류의 생물과 해조류가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곳 바다는 살만한 곳인 모양이다.

손가락과 비교하니 꽤나 작은 생물이다.
▲ 조무래기따개비 손가락과 비교하니 꽤나 작은 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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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개는 그냥 평평하여 밋밋하기만 한 곳은 아니다. 곳곳에 크지않은 돌들이 봉긋봉긋하게 솟아 있다. 이 안에 들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도착한 것 같은 묘한 느낌도 드는 것이었다. 그 돌들 가운데 몇몇에는 타들어간 촛농이 달리의 그림처럼 늘어져 붙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무속인들이 그 손님과 함께 와 빈 다음 남기고 간 흔적이다. 넙개 바닥엔 사탕들, 떡, 고기 잔해들이 널려 있는 것도 보곤 하는데 보기에 따라서는 흉물스럽기도 하다. 흩뿌려대는 행위를 통해 신을 모시고 잘 되길 기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고시레' 하며 자연에 음식 일부를 바치는 것처럼 말이다. 또 씨를 뿌리는 행위나 천주교 신부가 성수를 뿌리는 행위와도 겹쳐진다.

이런 음식 잔해는 바다의 청소부인 갯강구와 갈매기의 '잡식성' 체질로 해결이 가능할 법한데, 초의 경우는 성분이 바다살이에 해가 되는지 나로선 아직 모르겠다. 그보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낚싯줄과 미늘이 달린 낚싯바늘, 즐기고 난 맥주캔 따위가 더 위태로운 풍경이 아닐까 싶다.

몇 분을 간격으로 비행기들이 머리 위를 지나며 굉음을 떨어뜨린다. 그때마다 옹기종기 갯바위에 서 있던 갈매기들이 후드덕 날아올랐다가 내려서기를 반복했다. 적응이 쉽지 않은 소리인 것은 사람이나 새들이나 마찬가지인 게다.

잰 걸음으로 마지막 계단을 올라 진짜 길을 걷는다. 포구로 갈 것이다. 왠지 슬픈 '다끄내 포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2월 1일부터 10일사이에 여러 번 다닌 길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태그:#제주도, #용두암, #말머리, #넙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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