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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 4일 낮12시]

 

문화예술위, 김정헌 위원장 '왕따 작전' 돌입

 

"위원장으로서 권한 인정 못하겠습니다."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화예술위) 위원장은 4일 아침 공식적으로 위의 말을 통보 받았다. 문화예술위가 김 위원장의 복직은 인정하되, 권한 인정은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이틀 동안의 휴가를 마치고 4일 서울 혜화동 문화예술위로 출근한 김 위원장은 오전 9시께 윤정국 문화예술위 사무처장과 면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윤 사무처장은 "문화예술위는 8일 예술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의결할 때까지 업무 보고 등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면담을 마치고 나온 김 위원장은 "결재권도 주지 않고, 업무 보고도 안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결국 나를 고립무원의 방에 홀로 남겨두는 '왕따 작전'을 시작한 한 것 같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문화예술위 바로 앞 아르코미술관 3층에 마련된 김 위원장의 방에는 책상과 테이블, 그리고 책장만이 있다. 책상에는 컴퓨터 한 대가 놓여 있다.

 

김 위원장은 컴퓨터를 켜며 "결국 나 혼자 인터넷이나 하고 바둑이나 두고 퇴근하라는 것 같다"며 "왕따 시켜도 계속 나는 흔들림 없이 출근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조급해 하거나 화를 내지도 않았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 여유있게 이런 말도 했다.

 

"주변 지인들과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복직했다고 축하 인사를 온다는데, 이거 큰일이야. 난 지금 법인카드도 못 받아 다 내 돈으로 밥 사야 하는데 어쩌지? 차량도 아직은 못 주겠다고 하는데, 법인카드는 줘야 하는 거 아냐? '업무추진비'가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허허허, 이거 참."

 

업무 지시도 안통하고 결재권도 없는 문화예술위원장. 여기에 차량과 비서, 그리고 법인카드도 없는 상황. 복직된 김 위원장에게 주어진 건 결국 급히 마련한 작은 방과 인터넷이 연결되는 컴퓨터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예술위원들은 오는 8일 김 위원장의 권한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릴까?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2008년 9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임명된 예술위원들은 '대리 성명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이미 지난 1일 김 위원장의 용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런 상황을 아는 김 위원장은 "내가 해임당할 때 '해임 환영' 성명서까지 발표한 사람들인데, 내 권한을 인정하겠느냐"며 "큰 기대는 안 하고, 상황을 좀 지켜봐야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향후 대책 등을 백승헌 변호사 등과 논의해 마련할 방침이다. 그는 지금 '나홀로 근무'를 이어가고 있다.

 

[ 1신 : 3일 오후 6시 40분]

 

"3일자 <조선일보> 보도 못 보셨어요? 복직이 됐다고 권한까지 회복된 건 아니라네요. 어쨌든 김정헌 위원장이 요구한 업무보고는 당분간 못합니다. 차량과 비서도 아직 준비 할 수 없고요."

 

박상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책기획실장은 3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이렇게 밝혔다. 김정헌 위원장이 복직은 했지만, '위원장 권한' 인정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은 업무지시가 통하지 않는 '식물 위원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1년여 만에 출근해 "각 부서는 업무 추진 내용을 보고 하고, 지금까지 문화체육관광부(문광부)와 주고받은 공문들과 각종 회의록을 4일까지 제출하라"고 사무처에 지시를 내렸다.

 

또 김 위원장은 "법적으로 위원장 지위를 회복했으니 차량과 비서도 준비하고, 전자결재시스템도 내 컴퓨터에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지는 업무지시를 불이행 하면 그에 맞는 책임을 지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화예술위 "당분간 김 위원장 업무 지시 이행 못 해"

 

하지만 위의 박 정책기획실장의 말대로 문화예술위 사무처는 김 위원장의 업무지시를 한동안 이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정책기획실장은 "오는 8일 전체 예술위원회가 소집됐는데, 사무처는 여기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술위원들에게 '위원장 권한' 인정 여부를 심의·의결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르면 위원회는 문화예술진흥기금의 관리·운용 등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사업 등을 논의할 수 있다. 또한 위원 3인 이상이 요구하는 사항을 심의·의결 할 수 있다.

 

만약 예술위원들이 김 위원장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거나 제한을 두려 한다면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을 제외하고 총 10명으로 구성돼 있는 현 예술위원들은 2008년 9월 유인촌 장관이 임명한 이들로서, 사실상 김 위원장을 지지해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예술위원들은 지난 1일 성명서를 통해 "예술계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인 김 전 위원장이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은 스스로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며 사실상 김 위원장의 용퇴를 촉구한 적도 있다.

 

2009년 2월 임명된 오광수 위원장 역시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언행은) 상식에서 벗어나고 양식이 없는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예술위 일에 더 심각하게 개입하면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취임한 오광수 위원장 "예술위 일에 개입 말라"

 

결국 오광수 위원장과 사무처, 그리고 예술위원들은 '김정헌 왕따' 작업에 돌입한 셈이다.

 

정상용 대한변협 사무총장은 최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김 전 위원장이 복직된 것은 틀림없지만 위원장으로서 직무까지 살아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변호를 맡고 있는 백승헌 변호사는 "지위는 회복됐지만 권한은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는 납득할 수 없다"며 "'해임효력 정지'는 결국 해임은 없었던 것으로 한다는 뜻이지 단순히 봉급 받을 권리 회복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어쨌든 '한 지붕 두 위원장' 체제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한 문화예술위 직원들은 "문광부 등 윗선에서 빨리 '교통정리'를 해줬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문광부는 현 상황에 대해 계속 무시와 수수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장섭 문광부 대변인은 1일 "해임처분 취소판결과 효력정지 결정 등에 대해 이미 항고를 했다"며 "법원의 다음 판결 때까진 위원장 2명 체제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책없는 문광부 "위원장 2명 체제 지켜볼 수밖에"

 

유인촌 장관 역시 "그렇게도(위원장 2명 체제) 한 번 해보고… 재밌지 않겠어?"라며 이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등 특별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김정헌 위원장 쪽은 "저쪽(문광부)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우리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고, 계속 법대로 출근해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결국 이번 일의 해법 열쇠는 상위 기관인 문광부 쪽이 쥐고 있다. 하지만 문광부가 '교통정리'에 나서지 않거나 미루고 있어 '한 지붕 두 위원장' 체제의 문화예술위는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태그:#김정헌, #유인촌, #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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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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