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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중앙선 용문행 전철은 휴일이면 등산객들로 붐빈다
▲ 중앙선 전철 안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중앙선 용문행 전철은 휴일이면 등산객들로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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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이른 아침, 왕십리역에서 올라탄 용문행 전철에는 등산화를 신고 등산배낭을 맨 사람들이 가득했다. 다음 역인 청량리역에서 또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전철에 몸을 실었고, 회기역쯤 가서는 전철 안이 대부분 등산복 차림의 등산객들로 채워졌다. 이 많은 등산객들이 전철을 타고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궁금증은 전철 출입문 위쪽에 붙어있는 노선 안내도를 살펴보면 풀린다. 종래 국수역까지만 운행하던 중앙선 전철이 국수-용문 19.7㎞ 구간을 추가로 개통하여, 2009년 12월 23일부터 용문역까지 연장 운행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기존 팔당역의 예봉산, 운길산역의 운길산을 찾던 등산객들에 더하여, 원덕역의 추읍산, 용문역의 용문산을 찾는 등산객들까지 전철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용산-용문 간 전철이 개통되면서 기와지붕 및 용마루가 있는 전통 한식구조로 역사를 신축하였다
▲ 용문역 최근 용산-용문 간 전철이 개통되면서 기와지붕 및 용마루가 있는 전통 한식구조로 역사를 신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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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역에서 중앙선 전철을 탄 등산객 장철규씨(56, 약수동)는 "중앙선 덕분에 경기도 남양주와 양평에 있는 산을 편리하게 찾아갈 수 있어서 참 좋다. 그동안 예봉산과 운길산에 자주 가다가 이번에 용문역이 개통되어 처음으로 전철을 타고 용문산에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용문산이 있는 용문역까지는 용산에서 출발할 경우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고, 왕십리역에서는 약 1시간 15분이 걸리며, 한 시간에 두 대 꼴로 열차가 다닌다. 중앙선을 이용해 용문산에 두 번째로 간다는 등산객 최혜숙씨(42, 잠원동)는 전철 산행의 장점으로 "요금이 저렴한데다 접근성이 뛰어나고, 시간이 정확하여 산행 계획을 세우는 데 좋다"는 점을 들었다.

중앙선 종착역인 용문역에 도착한 뒤, 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용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이곳에서 30분마다 한 대씩 있는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를 달리면 용문산입구에 도착한다. 용문산은 국립공원이 아닌 국민관광지로 입장료 2000원(청소년 1400원/ 어린이 1000원)을 내야 한다.

두 기둥에 용이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붙어있다
▲ 용문사 일주문 두 기둥에 용이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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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들어서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용문사 일주문이 기다리고 있다. 마치 속세와 깨달음의 세계를 구분하듯 안과 밖의 분위기가 다르다. 일주문을 지나 하얀 눈이 살포시 쌓여있는 완만한 경사의 길을 약 15분 정도 오르면, 수령 천년이 넘는 거대한 은행나무로 유명한 용문사가 나타난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로, 경내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30호 은행나무는 수령 1100년, 높이 41m, 둘레 11m로 동양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로 알려져 있다.

겨울이라 잎이 모두 졌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위용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 용문사 은행나무 겨울이라 잎이 모두 졌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위용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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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를 뒤로 하고 등산길 안내 표지판을 따라 용문사 옆길로 접어들면 본격적으로 용문산 산행이 시작된다. 용문산은 해발 1157m로 경기도에서 화악산(1468m), 명지산(1267m)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웅장하면서도 빼어난 산세와 정상에서 뻗어내린 수많은 암릉들, 그리고 골이 깊고 수량이 풍부한 아름다운 계곡으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여, 예로부터 '경기의 금강'이라 불려왔다.

용문사를 들머리로 하여 용문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마당바위 쪽으로 방향을 잡아 계곡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원사 쪽으로 방향을 잡아 능선길로 올라가는 것이다. 용문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5분쯤 가면 바로 그 갈림길이 나온다.

능선길은 하산할 때 이용하기로 하고, 계곡길로 방향을 잡아 마당바위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계곡길로 들어서자마자 크고 작은 암석들과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 그리고 곳곳에 보이는 작은 폭포와 소(沼)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용문산은 산세가 비교적 험하고 가파른 데다가 바위가 많아서 초보자들이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험준한 바위산이 가진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산이 높은 만큼 계곡 역시 깊고 수려하다는 점이다. 맑고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을 보면서 산을 오르면 마음의 때가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다.

계곡을 따라 크고 작은 기암괴석과 폭포, 소(沼)가 즐비하다
▲ 용문산 계곡 계곡을 따라 크고 작은 기암괴석과 폭포, 소(沼)가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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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깨끗한 용문산 계곡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채 1시간쯤 올라가면 거대한 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높이가 2m, 둘레가 20m에 이르는 이 바위는 마당처럼 평평하고 널찍하여 마당바위라 불린다. 성인 20~30명이 올라가 앉을 수 있을 만큼 넓어서, 단체 등산객들의 자리잡기 경쟁이 치열하다.

서울의 한 산악회 회원인 윤경필씨(50, 면목동)는 "이곳에 자리를 잡기 위해 전팀이 떠날 때까지 40여 분을 기다렸다. 수십 명 회원들이 함께 모여 앉을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마당바위가 항상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단체 등산객들의 쉬어가는 장소로 항상 인기가 높다
▲ 마당바위 단체 등산객들의 쉬어가는 장소로 항상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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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바위를 지나 얼마 안 가서 계곡길이 끝나고 능선길로 이어지는데 경사가 가파르고 눈이 쌓여 있어서 반드시 아이젠을 착용하고 조심해서 올라가야 한다. 30여 분을 치고 올라가면 상원사 쪽에서 올라오는 능선길과 만나는 능선길 삼거리에 닿는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거나 간식을 챙겨 먹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용문사에서부터 2/3 정도를 올라온 지점,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암릉구간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시원한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해소하고 용문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약 1km.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경사가 가팔라서 걸음은 더디다. 한참을 오르고 또 올라도 정상과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정상까지 오르는 암릉구간에는 곳곳에 계단과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어서 위험하진 않지만, 가파르고 험한 길이 끝도 없이 계속되므로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용문산 정상 부근, 마지막 급경사 지대를 오르는 계단
 용문산 정상 부근, 마지막 급경사 지대를 오르는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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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높고 험한 산이라도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이라고 했던가.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한 계단 한 계단, 한 걸음 한 걸음에만 집중하면서 묵묵하게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을 약 200m남겨둔 지점에 다다랐다. 여기에서 숨이 턱에 차오를 정도로 가파른 마지막 계단을 올라가면 드디어 용문산 정상 '가섭봉'에 이른다.

힘겹게 오른 만큼 정상에서 느끼는 감격은 대단하다. 용문산 정상 '가섭봉'은 경기도에서 세 번째로 높고 양평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만큼, 사방으로 시야가 시원하게 트여서 주변의 중원산, 유명산, 중미산, 봉미산 등은 물론, 날씨가 맑은 날에는 동쪽으로 멀리 원주의 치악산과 서쪽으로 서울의 북한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용문산 정상에서 바라본 설경
 용문산 정상에서 바라본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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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힘차게 뻗어내려간 산줄기들마다 하얗게 눈이 쌓여있는 장쾌한 설경은 가슴 깊숙한 곳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등산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못 되었다는 초보 등산객 이지영씨(36, 구리)는 "마지막 암릉구간을 올라오는데 너무 힘들어서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풀릴 지경이었지만, 정상에 선 순간 그 모든 것이 말끔히 잊혀질 만큼 멋진 풍광"이라고 말했다.

눈 아래로 펼쳐지는 멋진 설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따끈한 어묵과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겨울 산행에서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쉴 경우 급격한 체온저하로 더 힘들어질 수 있으므로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하산할 때는 올라왔던 계곡길이 아닌 상원사 쪽 능선길로 방향을 잡아 내려왔다. 능선길은 계곡길과는 또다른 매력을 발산하는데, 특히 나뭇가지마다 한가득 피어난 눈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빛이 났다. 겨울철 아름다운 설경으로 유명한 지리산이나 덕유산, 한라산 등의 눈꽃 못지 않은 절경으로 많은 등산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아름다운 용문산 눈꽃
 아름다운 용문산 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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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눈꽃으로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용문산의 나무들
 아름다운 눈꽃으로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용문산의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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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황홀한 눈꽃에 취해 능선길을 따라 행복하게 걷기를 1시간 30분여, 상원사 방향과 용문사 방향이 갈리는 절고개삼거리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용문사 방향으로 30분을 더 내려오니 처음 출발했던 용문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정상까지 오르는 데에는 3시간 30분, 내려오는 데에는 2시간 15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어느덧 늦은 오후가 되어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다. 산행을 시작할 때 들어갔던 용문사 일주문으로 다시 걸어나오면서, 다리는 풀리고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더욱 깨끗하고 명료해짐을 느낀다. 처음에는 정상만을 목표로 올라갔는데 산행을 마치고 나니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열심히 땀 흘리며 그저 묵묵히 산을 오르는 과정 그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을 용문산이 깨닫게 해준 것이 아닐까.

그렇게 충만해진 마음으로 용문산입구에서 용문터미널행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여 다시 용문역에서 서울행 전철에 몸을 실었다. 전철 개통으로 경기의 금강이라 불리는 용문산이 더욱 가까워졌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용문산의 거친 바위에 올라 차가운 막걸리 한 잔 벌컥 들이키고 삶의 고달픔을 훌훌 털어내는 위안을 받기를 바라본다.


태그:#용문산, #양평, #중앙선 전철, #용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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