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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출생, 서울대학교 졸업, 경제학자이며 23대 서울대 총장,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러시아 극동국립대학교 명예 국제교육학박사, 대한민국 40대 국무총리.

 

정운찬 총리의 이력이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충청권의 유력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이 지역에서 두터운 신망을 얻어 왔다. 하지만, 총리가 된 지금은 지역민들의 소금세례와 계란 투척 대상이 됐다.

 

세종시와 관련해 '방탄 총리'를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 총리는 국무총리후보자 시절부터 "세종시는 원안대로 하는 게 좀 어려울 것 같다"며 수정안에 불을 지피더니 급기야 9부2처2청을 옮기는 원안을 전면 백지화하고 기업과 대학이 들어서는 국제과학비지니스벨트로 둔갑시켰다.

 

설마 했던 세종시 수정안이 정 총리의 입을 통해 발표되자 충청민들은 허탈과 분노, 배신감을 거칠게 토해냈다. "백년대계 국가정책이며, 이명박 대통령조차 몇 번이고 약속한 원안추진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 버리면 누가 정부를 신뢰 하겠냐?"며 강한 불신도 드러냈다.

 

세종시 원안 반대는 이명박 정권과 서울의 부자, 조중동 등 보수언론, 이에 부화뇌동하는 수구집단이 주축이다. 이들의 반대는 당연하다. 정부부처가 이전하면 자신의 건물이나 땅값이 하락하고 입지가 좁아짐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덜릴 수도 있었던 이들의 곳간을 정부가 지켜준 꼴이다.

 

정 총리는 정권의 간택에 보은이라도 하듯 지난 17일 대전·충남 여성단체 간담회에서 "행정부처가 오면 나라가 거덜날지도 모른다"는 충성 발언을 했지만 너무 앞서간 나머지 여당에서조차 비난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

 

그는 지난 23일 청주문화방송에서 열린 '충북언론인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세종시 수정안에 따른 충북 발전의 후속 대책은 없다"면서 "충북을 위한 특별한 발전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충북도민들의 반발을 의식한 총리실 관계자의 요청으로 토론회가 끝난 직후 방송사와 토론자들에게 해당 부분을 재녹화하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사회자와 토론자 5명 전원이 재녹화를 거부하자 해당 질문자와 정 총리만 남은 상태에서 답변을 수정해 재녹화했다.

 

이 결과 "새로운 발전 계획은 없다"는 답변은 "세종시 수정안은 큰 틀로 보면 되고 국회통과 후 구체적으로 추진되면 충북발전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말로 뒤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날 그는 "전국 6곳에 지정된 경제 자유구역도 제 역할을 못해 재평가하는 실정"이라며 "재평가 뒤에 검토해 볼 수는 있지만 지금은 시기상조"라고 잘라 말해 충북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의료·건강·교육 복합형 '오송 메디컬 그린시티' 건설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6조5천억 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그동안 정부와 교감을 통해 진행됐으며, 이 지역이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지 않고는 어떤 효과도 기대할 수 없고 입주 기업은 결국 세종시로 흡수될 수밖에 없다.

 

세종시 수정 보따리를 들고 세일즈에 나선 정 총리의 행보가 애처로운 지경이다. 지금의 정 총리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로 불거진 촛불문화제 당시 국민과 청와대에 사이에 놓였던 '명박산성'과 흡사하다.

 

그의 머릿속엔 '세종시란 큰 산을 넘으면 집권여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를 굳힐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생각처럼 유력 대권주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명한 국민들이 그의 손을 들어줄지는 의문이다.

 

세종시는 정 총리 생각처럼 자족기능을 갖춘 도시 하나를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다.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토 균형 발전'이란 대명제를 담고 있다. 지역민들의 의견이 무시되고 급조된 수정안을 받으라고 강요하는 정 총리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존경을 거두고 있다.

 

충청지역에선 "권력욕에 눈이 멀어 학자의 양심을 저버렸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한번 무너져 내리면 회복이 어려운 '명예'와 '양심'을 지키는 첫 걸음은 '총리' 굴레를 벗는 용기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정 총리가 곱씹어 주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충북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운찬, #세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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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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