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연밥 따는 저 처자야 내 품 안에 잠들어 다오"

 

이 정도면 은밀한 밀어다. 어느 세월에 농사를 짓는 머슴 녀석이 장가라도 갈 수 있으리오. 그러니 농사를 짓다말고 이런 사설이라도 불러제껴 허전한 마음을 달래보려고 했을 것이다.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줄게 내 품안에 잠들어다오

 

여기서 공갈못이라고 하는 것은 공검지를 말한다. 공검지는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에 있던 저수지를 말한다. 고려 명종 25년인 1195년 상주사록(尙州史錄) 최정빈이 예로부터 있었던 제방을 그대로 수축했다고 전해진다. 공검지의 길이와 860보이며, 저수지의 둘레가 1만 6,647자(약 5km)나 되는 큰 저수지였다고 <상산지>에 적고 있다. 속설에는 '저승에 가도 공갈못을 구경하지 못한 사람은 이승으로 되돌려 보낸다'고 할 정도로 유명했던 못이다.

 

<함창읍지>에는 이 못의 서반에는 몇 리에 걸쳐 연꽃이 피어 있어, 마치 중국의 전당호를 방불케 하는 풍취를 지녔다고 적고 있다. 공갈못에 물이차면 그 깊이가 다섯 길이나 되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짐작할 만하다.

 

이 공검지를 공갈못이라고 부르는 내력이 있다. 홍귀달의 <공검지기(恭儉池記)>에 의하면, 공검지라는 이름은 공검이라는 사람이 제방을 쌓은 데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공검지를 쌓을 때, 둑이 자꾸만 무너져 내렸단다. 그래서  '공갈'이라는 아이를 넣고 둑을 쌓았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둑이 무너지지를 않아 그때부터 '공갈못'이라고 했다는 다소 허황된 매아설화가 전해진다.

 

우리소리의 은밀함은 단연 수준급

 

이렇게 공갈못이란 소리의 사설이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공갈못이란 저수지가 농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공갈못에 연꽃이 많이 핀다는 것과, 은밀한 사설 때문이다.

 

머슴녀석의 은근한 소리, 그런데 이런 말에 그 처자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처자는 바로 대응을 한다. 그 대응이 또한 일품이다.

 

잠들기는 어렵지 않으나

연밥 따기가 늦어지네.

연밥따기 늦어져도

잠자주기는 어렵지 않네

 

이정도면 극치를 넘나들고 있다. 머슴 녀석을 이리저리 떠보는 수단이 여간이 아니다. 이와 유사한 소리는 얼마든지 있다. 이런 은밀한 소리를 하는 것은, 모두가 힘든 노동에서, 조금이라도 힘을 덜기 위해서다.

 

저기 가는 저 할머니 딸이나 있거든 날 사위삼소

사위야 때 묵은 손님이나 내 딸이 어려서 못 삼겠네

아이고 어머니 그 말씀 마오 참새는 작아도 알을 낳고

제비는 작아도 강남을 가구요 굴새는 작아도 굴을 파오

 

이정도면 누가 따를 것인가? 농사 소리를 하면서도 이렇게 은밀함이 있었다. 그저 세월이 지나는 것이 무료한 것도 아니다. 뼈 빠지게 고생을 해도, 이놈저놈에게 다 뺏기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그러니 소리라도 이렇게 해보아야 답답한 속이 풀릴 것이다. 이런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예전에는 양반이라고 빼앗아 가고, 지금은 일 년 내내 어렵게 지은 농사를 수매가를 낮춰 고통을 당하게 한다. 힘들게 밭농사를 지으면 중간 상인들만 배를 불린다.

 

지금은 치유의 소리를 다시 찾을 때

 

그런 마음에 상처를 모두 치유하던 소리다. 그래서 우리 소리는 그 안에 무한한 힘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이런 소리까지 잃어 버렸다. 하기에 더 깊은 상처가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기 가는 저 아가씨 냉수나 한 그릇 떠다나 주오

언제 보았던 님이라고 냉수를 한 그릇 떠달라오

처음 보면 초면이요 다음 보면 구면일세

초면구면 다 제쳐놓고 냉수나 한 그릇 떠다나 주오

 

 

상처가 깊으면 모든 것이 다 하기가 싫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점차 농토를 밭으로 만들어 도지를 준다고 한다. 인삼 재배를 하는 사람들에게 도지를 주면, 농사를 지을 때처럼 속을 썩일 일도 없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아픈 상처만 안고 살아가야 하는 농민들. 예전의 정겨운 소리를 다시 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소리의 소재가 되는 여유를 다시 찾기만 바랄뿐이다.

 

엊그제 1월 20일이 대한이다. 이제 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된다는 입춘이 2월 4일이다. 입춘이 되면 농사를 지을 준비들을 해야 한다. 올 해는 모든 농사를 짓는 분들이 제발 이렇게 마음 아픈 일이 사라지고, 정겨운 소리 한마디쯤 부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


태그:#농사소리, #비유, #상주 함창, #공갈못, #노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