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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외국 거리를 걷다가 한국식당을 만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간만에 입맛에 맞는 우리 음식을 먹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우리 음식문화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고맙기도 합니다. 요즘 '음식 한류'가 불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한국식당은 세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요? 오마이뉴스 해외통신원들이 새해를 맞아 전세계의 한국식당들을 집중 탐구해봤습니다. 일반 시민기자 여러분들도 자신들이 겪은 한국식당의 추억이나 제안이 담긴 글을 올려주시면 적극 배치하겠습니다. [편집자말]
파리 시내 5구에 위치한 한국식당 '춤추는 후라이팬(La Poele qui danse)'
 파리 시내 5구에 위치한 한국식당 '춤추는 후라이팬(La Poele qui danse)'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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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단체여행 관광지에서 빼놓을 수 없고 개인적으로 유럽에 출장을 와도 시간과 경제사정만 허락하면 반드시 둘러보고 가는 도시 파리. 프랑스 파리에는 대략 1만2천여 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중 유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70-80%에 달한다.

파리에 한국식당이 처음 생긴 것은 40여 년 전. 1972년에 이미 5개의 한국식당이 개설되어 프랑스 현지인들에게 한국의 맛을 선보이고 있다. 세계 최고의 미식국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프랑스인들은 새로운 맛을 즐겨 찾는다. 이들은 아무 사전 준비 없이도 미지의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맛보는 모험을 즐기는데, 파리에 즐비하게 놓여있는 세계 각국의 레스토랑이 성업을 이루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당연히 이들은 한국식당에도 거침없이 들어온다. 그 안에서 어떤 음식이 나올지, 어떤 서비스를 받을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모험을 감행한다. 이렇게 한국 음식을 전혀 모르는 손님들에게 메뉴판의 음식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수고를 덜기 위해 일부 식당에서는 음식 사진첩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시각적인 효과가 5분 설명보다 더 확실한 결과를 낳는다.

<무한도전> 팀이 한국음식 홍보를 위해 <뉴욕타임스>에 실은 비빔밥 광고.
 <무한도전> 팀이 한국음식 홍보를 위해 <뉴욕타임스>에 실은 비빔밥 광고.
한국 식당은 그 동안의 경험으로 프랑스인이 좋아하는 음식의 선별이 가능한데, '비빔밥' 식당 주인이며 한불요식업협회 회장인 권영철씨에 의하면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4대 음식은 '비빔밥, 불고기, 갈비, 잡채'이다.
특히 비빔밥과 불고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2대 음식으로 파리에 있는 한국 식당 중에서 이 두 음식을 하지 않는 식당은 거의 없을 정도다. 프랑스인들은 주문한 음식에 같이 따라나오는 반찬을 마치 덤으로 얻은 것처럼 환영하는데 이는 주문된 음식 한 가지만 나오는 프랑스 식당에 익숙해있기 때문이다.

현재 파리의 한국 식당은 100여 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까다로운 프랑스인들의 구미에 맞는 한국요리를 찾아내는 것에서부터 한국 문화를 거의 모르던 이들에게 긍정적인 한국의 이미지를 심어주기까지 그동안 한국 식당주들이 일선에서 벌인 경쟁은 매우 치열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이 아시아 식당권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한국음식 문화의 개별성을 홍보하기엔 처음부터 무리가 있었다. 

중국, 일본, 태국 음식이 아시아 음식을 대표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에게 잘 알려진 아시아 음식은 중국, 일본, 태국 순이다. 동양 최대의 미식국가로 알려진 중국 음식의 명성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프랑스 식당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프랑스인을 끌어들이고 있었던 중국 식당은 6년 전에 비위생적인 부엌과 식품 창고가 언론에 보도된 이후 많은 고객을 잃게 되었다.

이후 이들은 스시를 주로 하는 일본식당이나 일본 바를 열고 저가 정책으로 프랑스 고객 확보 작전에 나섰고 이들이 어설프게 만든 일본음식에 등을 돌리는 이들이 속속들이 생겨났다. 프랑스인 입장에서는 어느 식당이 진짜 일본 식당이고 어느 식당이 중국인이 하는 어설픈 일본식당인지 구별하기 힘든 상황에서 일본 식당업계가 전체적으로 직격탄을 맞고 무너진 것이다.

프랑스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된 한국 식당의 상차림(안동 찜닭).
 프랑스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된 한국 식당의 상차림(안동 찜닭).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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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본 식당업계는 다시 일어났다. 워낙 두터운 층의 고객을 확보하는데 성공한 일본 식당의 비결은 타겟 마케팅에 있었다. 일본 식당은 초기에 스시 하나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타겟 마켓팅에 성공해 지금은 스시를 모르는 프랑스인들이 없을 정도이고 스시를 전문으로 팔고 배달해주는 체인점도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태이다.

날고기를 먹지 않는 서양인들에게 스시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 일본인들의 역량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스시에 맛을 들인 프랑스인들이 이후 새로운 일본 음식을 찾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고 마끼, 찌라시 등이 호황을 입게 된다. 결국 미끼 하나로 고객 유치에 성공한다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라는 것이 권 회장의 의견이다.

프랑스에 굳건하게 자리를 잡은 일본 식당은 <미쉐린 가이드>의 스타 하나를 얻는 데 성공했고 (미쉐린 타이어에서는 국내 유명식당 리스트 책자를 해마다 발표하는데, 스타 하나 이상 얻으면 굉장한 영광이고 최고의 영광은 스타 3개를 얻는 것이다), 일본 음식의 맛을 알게 된 프랑스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일부 프랑스 식당에서는 일본 음식의 맛이 첨가된 퓨전 음식을 선보이기도 한다.

'비빔밥' 식당 주인이며 한불요식업회장인 권영철씨.
 '비빔밥' 식당 주인이며 한불요식업회장인 권영철씨.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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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대성당과 퐁 네프 다리 사이의 강변에 위치한 레스토랑 제 키친 걀르리의 주방장 윌리암 르되이는 파리의 유명 주방장 기 사브와의 제자로 몇 년 전에 자신의 식당을 열었는데 일본과 베트남 음식풍이 겻들인 퓨전음식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 식당은 개업한지 몇 년 안되는 2년 전에 '미쉐린 스타' 하나를 얻는 등  빠른 성공을 거두고 있는데 동서양의 성공적인 음식 배합에 그 성공의 비결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소르본느 대학 근처에 있는 르 프레 베르라는 프랑스 식당도 일본 음식 맛이 첨가된 퓨전음식을 매일 내놓고 있다. 주방장인 필립 들라쿠르셀은 20년부터 1년에 4번 일본을 드나드는 일본애호가이다. 2년 전부터 도쿄에도 파리와 같은 이름의 프랑스 식당을 개업 운영하고 있다. 기자도 이 식당을 2-3번 가보았는데 프랑스 음식에 된장이나 팥, 고구마 등이 가미된 독특한 음식을 맛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 주방장은 '르 구 뒤 자퐁(일본의 맛)'이란 책도 발간한 적도 있다.

중-일 사이에서 이제 자리잡고 있는 한국 식당

이렇게 강력한 경쟁국 식당과 높은 물가, 비싼 인건비 등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한국 식당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한국 식당주들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이제 프랑스인들에게 서서히 그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주목할 사항은 10년 전부터 불어닥친 한국영화의 붐으로 한국식당을 찾는 프랑스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한국영화에는 식사 장면이 꽤 많이 나오는데 이것이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식당을 찾아보고 싶게 만들고 있다. 또 점차 확장되고 있는 한국문학의 번역 출판도 여기에 기여하고 있고 태권도를 배우는 프랑스인들도 많이 한국 식당을 찾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한국문화의 어느 한 방면을 접하게 된 프랑스인들이 점차 관심을 확장해 한국 음식까지 찾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볼 수 있다. 

한 프랑스 영화잡지에서는 파리의 '보보'(브루조아-보엠의 약자, 새로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도시인을 지칭하는 말로 정치성향은 대부분 좌파에 가깝다)가 되기위한 조건으로 '한국영화를 보러 가고 한국 식당에 가는 것'이라고 적을 만큼 프랑스 내에서 한국영화와 한국식당이 차지하는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파리 5구에 위치한 프랑스-일본 퓨전 식당 '르 프레 베르'
 파리 5구에 위치한 프랑스-일본 퓨전 식당 '르 프레 베르'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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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치는 한국 정부... "우린 이미 다 알고 있는데"

한국 정부도 최근에 한국 음식의 세계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작년 12월 초 파리에서 요식업자들을 상대로 '한식세계화 교육'을 개최한 바 있다. 8일에서 11일까지 4일에 걸쳐 이론과 실습과정을 거친 이 교육은 LA , 뉴욕, 도쿄, 베이징 등에 이어 마지막으로 파리에서 이루어졌는데 거창한 외부 광고에 비해 실질적인 내용이 부실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주 대상인 요식업자들은 업무관계로 바쁜 시간이라 많이 참석을 못했고 오히려 한국 일반 주부들에게 한국 음식을 가르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현재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중의 하나인 <한림>의 이철종씨는 정부의 겉치레 행사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현지에서 수 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현지인에게 맞는 음식 개발이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정부가 한식 세계화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민들이 어렵게 낸 혈세로 파리까지 와서 요식업자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으로 한식 세계화를 부르짖는 현실이 안타깝다."

겉으로 보여지는 겉치레 행사 보다는 그 동안 세계 각지의 요식업자들의 경험사례를 참고해서 한식의 세계화에 더욱 박차를 기할 수 있는 실용적인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많은 요식업자들의 의견이다.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요리의 인지도가 이제 어느 정도 심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는 많다. 그 중의 하나로 한불요식업협회 회장 권영철씨는 한국 식당을 상징하는 아이덴티티의 부재를 든다. 일본식당 같은 경우는 식당 앞에 한지로 된 등을 달아 멀리서도 일본 식당임을 알아볼 수 있는데 한국식당은 아직 그런 아이덴티티가 없다는 것.

정부에서 요새 국가 심벌을 만들어 국책사업으로 한다고 하니 이런 것을 국가적 차원에서 담당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대신 디저트가 약한 한국 요리의 디저트 개발은 각국인의 입맛에 맞게 현지 요식인들이 해결해나가야 할 사항으로 보이는데 현재 파리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얹은 호떡이 디저트로 가장 각광받고 있다.

이렇게 정부와 민간이 서로 협력하여 노력한다면 한국 음식의 본격적인 세계화도 가능할 것이고 한국 식당도 언젠가는 프랑스 미쉐린 스타 3개가 나올 날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100여개에 해당하는 한국 식당 중에서 2009년 '미쉐린 가이드'에 기재된 식당은 4개이다. 한국식당을 찾아볼 수 없었던 몇 년 전에 비해서는 양호한 성적이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태그:#한국음식, #프랑스,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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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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